아들에게 여친이 생겼다, 일본 여친이

by 포그니

'깨똑.' 휴대폰이 울렸다. '가뜩이나 일하느라 바쁜데 뭐야.' 봤더니 아내에게 왔다. 무슨 일이 있나. 얼른 열어봤다. "아들이 불쑥 커밍아웃. 지 여친 있대. 일본인!" 다음엔 이모티콘이 왔다. "크핡핡핡핡" "까랄랄라"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 헛웃음이 나왔다. '한국 유학생도 아니고 일본인 여친? 이게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 아내는 아들을 '음흉한 놈'이라고 했다. 사귀는 여자 없다고 엄마한테 얘기하고서 몰래 만나고 다녔으니 배신감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아들과는 언제나 교감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터이니 그럴만하다.

아들은 지금 일본에 유학 중이다. 국내 명문 사립대의 지방 캠퍼스에 다니는 것이 싫다며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지잡대' '분교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너무도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왜 안 그렇겠나. 아빠가 그 학교에 다닐 때도 분교는 쳐다보지 않았다. '너희와 우리는 달라.' 나이가 먹고 보니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차이일까 싶지만 그때는 그렇게 여겼다. 그게 싫었는지 부모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신이 알아서 일본어 공부를 하고 현지 대학을 알아봤다. 미국 대학도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부모들이 말렸다. 유학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허덕대고 있는데 정말 미국에 갔다면 아마 우리 집은 벌써 사라지고 부부는 셋방살이를 전전했을 것이다. 아들은 일본 몇 개 대학을 골라 우리에게 시험을 보겠다고 통보하고 얼마 안 가 사립 명문대 중 한 곳에서 떡 하니 합격통지서를 받아왔다. 부모가 놀랄 정도의 추진력이었다. '초중고에 다닐 때 좀 그러지' 하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지만 끝내 내뱉진 못했다. 그래도 자기 스스로 이 정도 해낸 게 어딘가. 그랬던 아들이 이제는 여친도 일본으로 선택했다.

사실 징후는 얼마 전부터 있었다. 나름 용돈을 쪼개 비싸게 주고 산 마술 지팡이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가 하면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니는 일도 잦아졌다. 친구하고 같이 놀았다고 하는데 누구와 같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물론 묻지도 않았다. 아무 이름이나 대고 같이 있었다고 우기면 몇 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우리 부부가 무슨 수로 알아낼 수 있을까. 괜한 시간 낭비고 에너지 소비다. 한데 시간이 지나고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하니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모든 게 분명해졌다.

아들이 다시 보였다. 사실 제대로 여친을 사귈 수 있을까 걱정 아닌 걱정도 해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부질없는 우려였다. 어리숙해 보이고 한참 동생 같은 동기들에게 '바보 형'으로나 불리는 대학생이 연애라는 것을 한다는 게 신기했다. 이왕 만났으니 좋은 인연으로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문제는 사귀는 여친이 일본인이라는데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법한 감정을 가지게 하는 나라, 110년 전이기는 해도 우리에게 국권을 빼앗아가고 지금은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가까워질래야 가까워질 수 없는 이웃, 스포츠 경기만 하면 우리 국민들이 죽을 듯이 달려드는 국가, 바로 그 나라의 여성이 내 아들의 여자 친구다. 젊은이들이 만든 '독도는 우리 땅' 플래시몹'을 들으면 괜히 따라 하고 싶고 '홀로 아리랑'을 들으면 괜스레 울적해지는 아저씨에게 일본은 결코 친해질 수 없는 존재다. '일본인'과 '일본 정권'은 다르다고 말했던 게 다 위선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자식이 좋다면 그가 사랑하는 여성도 아들처럼 대할 수 있다고 떠든 나 자신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아내는 남편보다 더 하다. 배 아파 낳은 자신의 분신을 일본에 놓고 돌아올 때부터 일본에 생때같은 피붙이를 빼앗겼다며 일본이 싫다고 했던 어미였다. 가뜩이나 일본이 미운데 여친도 일본인이라니 자식을 그 나라에 완전히 빼앗긴 느낌이었을 터이다. 일본은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서 더욱 멀어져 갔다.

아주 아주 만약에 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아들이 지금 만나고 있는 여친과 결혼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직은 먼 이야기라 위안을 해보기는 하지만 하지만 현실이 된다면 어쩔 것인가. 아예 직장도 일본에 잡고 거기서 눌러 산다면? 답 없는 질문들이 마음속 심연에서 스물스물 끊임없이 올라온다.

엄마는 아들에게 일단 선을 그었다. "너는 무조건 한국으로 들어와야 한다. 여친이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건 OK. 하지만 여친 때문에 일본에 눌러앉아 있는 건 반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알고 아내도 안다. 사랑과 관련된 문제에 관한 한 인력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우리도 그랬다. 양가 부모 모두가 우리가 사귀고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다. 결국 둘 다 집을 뛰쳐나와 단칸방을 마련했다. 시간은 결국 우리 편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역시 없었다. 아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부모가 좋아하고 싫어하고 할 게 없는 여친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아들과 7살 차이고 도쿄 남쪽 어느 현 출신이라는 것 밖에 없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흔히 하는 호구 조사(부모가 누구시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 형제자매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도 못한다. 어떻게 생겼는지, 성격이 어떤 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둘이 만나면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어둠이 가득한 동굴 속에서 아들이 던진 한마디의 말을 빛 삼아 출구를 찾는 낙오자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 단지 '일본'이라는 한 단어가 부부를 맹인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과연 우리가 안대를 벗고 밝은 눈으로 두 청춘남녀가 나누는 사랑의 밀도와 질감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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