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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맹 Jun 15. 2021

나홀로 프로젝트, 장애 아이 학교 보내기

첫 번째 미션,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배치 신청 서류 제출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원서를 넣었다.

때 되면 알아서 집으로 오는 게 초등 입학 통지서인데, 원서를 넣었다니 무슨 유명 사립학교라도 가는 것 같다.

정확하게 말하면 "특수교육대상자 진단 평가 및 초등 입학 배치 의뢰서"를 제출했다.


아이를 특수학교나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서 교육받을 수 있게 하려면 6월에 미리 대상자 지정 신청을 하고 9월쯤 심사를 받아서 11월 이전에 학교 배치 결정을 받아놔야 한다.

특수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특수학급 또한 수요에 비해 공급이 극히 적기 때문에 경쟁을 뚫고 들어가려면 - 그 경쟁에서 이긴 자는 과연 위너인가, 루저인가. 씁쓸하다. ㅋ - 대개 복지카드를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장애 진단서를 연금공단에 보내고 복지카드가 나오기까지 보통 한 달 이상이 소요되고, 그 전에 장애 진단을 받기까지는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상담하는 과정을 거치는 데에 대기가 긴 대학병원의 경우 길게는 반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나이만 먹으면 입학 한두 달 전에 통지서 받아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에 가면 되는 일을,

이미 1년 전부터 여기저기 전화하고 알아보면서 숱한 날 잠 못 들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서 준비하는 거다,

나 같은 죄인은.

죄인이라고 명명하지 않으면 납득하기가 어렵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보내는 이 힘들고 까다로운 일들을 감수해내야 하는 이유를.


누구도 입학 1년 전부터 준비가 필요한 일이라고 먼저 알려주지 않는다.

엄마가 미리미리 알아서 하는 거다.

장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라면 의당 그 정도 정성과 노력은 있어야 하는 거다.

좀 치사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는 않는다.

어쩌겠나, 내 자식 일은 내가 미리미리 챙겨야지.


미리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문의해 알고 있던 것보다 이르게 5월 중순 공지가 떴다.

특수학교 배치에서 탈락될 경우 입학 유예를 고려하고 있던 터라 가능 여부와 절차를 따로 알아보고, 서류 양식을 다운로드하여 담임교사가 작성해야 하는 부분까지 미리 초안을 만들어 두고, 어디에 가서 누구를 찾아 제출하면 되는지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쳤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또한 서류 들고 여기 가라 저기 가라 하는 것 참 싫다.

게다가 여름이니 나는 그 과정을 최대한 한 번에 깔끔하게 마치기 위해 사전 준비를 꼼꼼하게 했다.

하지만 그게 나만 잘한다고 될 일인가 어디.

우리 동네 학교 특수교육 담당 교사와 어린이집의 아이 반 담임교사의 서류 토스가 있었고,

짜증은 났지만 교육청 개입으로 금방 해결은 됐다.

학교에 서류 내러 가느라 아이 치료까지 빼야 한다는 게 싫었지만 오라는 시간에 맞춰서 갔고, 서류를 잘 준비해 오셔서 보충할 게 없겠다는 특수반 담당 교사의 스타일을 알기 위해 30분 정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아직 심사 시작도 안 했는데 기운이 쭉 빠졌다.


그러는 동안 장애통합반 담당인 어린이집의 아이 담임교사는 교육지원청에서 보내온 공문을 전달해줬을 뿐, 학교 지원을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어볼 만도 하건만 어떤 것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작성해야 하는 페이지를 대부분 채웠지만 월권인 것 같아 통합 의견란은 비우고 서류와 한글파일을 함께 넘겼더니, 의견란을 그대로 비운 채 서명만 들어간 서류가 되돌아왔다.

추가 첨부서류인 담임교사(보호자) 의견서를 혹시 써주실 수 있느냐 물었더니 그게 뭐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그냥 내가 열심히 써서 서명만 받았다.


인생이란 그런 거지.

남의 일은 남의 일이지 내 일은 아닌 거지.

아, 그런데 이거 남의 일만은 아닌 거 같은데... 자기 일인 거 맞는데.

얘기했더니 남편은 웃었다.

그 선생님 뭐가 쓰여 있는 줄도 모르고 서명 잘하는 거 보니 어디 가서 사기당하기 십상이겠다고.

역시 남편은 남의 편이다.

이 상황에도 마누라보다는 선생님 걱정이네. ㅋ


오늘도 곰이 엄마는 혼자서 열심히 잘하고 있다.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혼자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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