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효녀
딱 366일째 단유를 했다. 그날 아침 마지막일지도 모른 채 수유를 했다. 난 사실 수유를 좀 더 할 생각이었다. 곧 복직을 하기 때문에 분리불안에 대한 아이의 스트레스 등을 고려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며칠을 울리면서 단유 하는 게 두려웠다.하지만 단유에 대한 생각은 10개월부터 있었다. 밤수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알아챘는지. 단유가 두려웠던 엄마를 대신해 아기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단유를 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우리 아기는 어떻게 스스로 단유를 할 수 있었을까.
10개월 정도부터 수유 횟수는 2~3회로 굳혀졌다. 그러다 서서히 2회로 줄였다. 새벽수와 막수. 새벽 5시에 수유를 하고 다시 잠들었으며, 자기 전에 수유를 했다. 단 젖 물고 잠이 드는 일은 없었다.
항상 자러 들어간 침대에서 수유를 하고 그 뒤 빠르면 20분 늦으면 1~2시간 정도 놀다가 잠들었다. 난 신생아 때부터 항상 수유 쿠션에서 수유를 했다. 수유 쿠션을 두르면 하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웃으며 걸어오던 딸아이가 눈에 선하다. 혼자 놀때도 수유쿠션을 가지고 놀았다. 누군가에게 물려 받은 예쁘지도 않은 수유 쿠션이지만. 꽤 편하게 사용했다.
11개월에는 새벽 5시경에 하는 수유가 지긋지긋해 곰돌이 단유를 하려고 시도? 정도를 했었다. 벽에 곰돌이를 그려주고 아이에게 맘마는 불쌍한 곰돌이가 가져갈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것도 마지막이 두려워 무려 디데이 한 달 전부터 이야기를 했다.
곰돌이 단유를 시도하는 한달 사이사이에는 멸균우유도 먹여보고, 킨더밀쉬도 먹여봤다. 하지만 모두 거부. 목표한 날 5일을 남겨두고 그냥 계속 모유수유를 하기로 결정했다. (잉?)디데이가 가까워질수록 단유 하는 게 두려웠고, 울며 젖 달라고 보채는 딸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 그냥 더 먹이자.'라고 마음을 먹으니 편안해졌고, 그렇게 어설픈 곰돌이 단유는 접었다. '최소 15개월까지는 먹여야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마음 한 편에는 단유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늘 있었다. 더 먹이고 싶은 마음은 그저 아기를 울리는 단유를 미루는 마음에서 였던 것 같다.
돌이 지난 다음 날 저녁, 낮잠을 많이 못 잔 아기는 일찍부터 칭얼거렸다. 그래서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침실로 들어가 놀았다. 잠투정 없이 기절시키기 위해 수유는 나~중에 해야지 하고 다짐하고 있었다. 아기는 잠을 못 이기겠는지 내 몸을 이리저리 부비적 거리다 갑자기 잠들었다.? 응? 진짜 자?
깨워서 먹여야 하나. 오늘만 그냥 안 먹은 것인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고 슬쩍슬쩍 미소가 나왔다. 그래 이참에 단유를 하자! 5시에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 따뜻한 물과 빨대컵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수유큐션을 옷장에 넣고 숨겼다. 혹시나 보면 생각날 수 있으니! 이런 철저함.
드디어 새벽 5시. 온몸을 비틀며 울어대는 딸. 바로 안았다. 그래도 계속 울었다. 발버둥을 치며 울었다. 거실로 나와 안고 좀 돌아다니니 진정이 되어, 준비한 따뜻한 물을 주니 꿀떡꿀떡 받아먹었다. 그리고는 잠이 들 것 같은데 계속 잠이 못 드는 것 같았다. 6시 정도까지 못 자길래 요거트를 주었다. 요거트를 먹고 물도 먹더니 막 내 몸에 파고들며 눈을 부비적 부비적. 허 바로 침실로 들어가 재웠다. 이후 8시까지 더 잠!
단유.. 1일 차ㅋㅋㅋ이렇게 얼떨결에 단유 1일 차가 되었고, 2일 차 저녁에는 잠들기 전에 오트밀을 줬다. 이유식 거부가 심하고, 양이 적어 거버 오트밀 가루를 이유식이나 요거트에 섞여서 먹이고 있었다. 킨더밀쉬나 멸균 우유 등 대체 우유를 거부하는 상황이라 배가 고프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줬는데 잘 먹었다. 그리고는 침실에서 놀다가 또 잠들었다. 그렇게 단유 2일 차가 지나갔다. 아침저녁으로만 하던 수유라 젖이 차거나 아프지 않았을 것 같았는데, 서서히 젖이 차오르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물론 젖이 처음 돌 때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확실히 단유로 굳혀야 할 것 같아. 단유 마사지를 예약했다.
단유 마사지는 처음 받았던 젖몸살 마사지 보다는 덜 아팠다. 마사지를 받으려거 허멀건 가슴을 드러내고 누워 있으니 하니 한 번은 차가운 모유, 따뜻한 모유가 번갈아가며 하늘로 솟았다. 신기했다. 쪼그라든 내 가슴 안에 많이도 들어가 있었구나.. 고인 모유는 색이 좀 탁했고 차가웠다. 마음이 후련하고도 헛헛했다. 그렇게 모유수유에 집작하던 내 지난 날이 떠올라 민망하기도 하고, 기차에서 식당에서 등 아슬아슬했던 수유 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나만의 기억이겠지만. 아이의 뇌리 저편에 그 따뜻함은 남아 있길 바란다.
단유 3일 차 저녁에는 사다둔 킨더밀쉬에 오트밀을 타서 주고 재웠다.아기는 이따금 저녁에는 수유가 하고 싶은지 내 옷을 부여잡고 울기도 했지만, 서서히 달랬다. 수유쿠션은 안 보이는 곳에 치웠고, 아기 앞에서 절대 맘마, 수유, 젖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가슴을 보면 생각이 나서 울어버릴까 걱정해 평소와 달리 문을 닫고 샤워를 했다. 문 앞에서 문을 쾅쾅 두드리며 울어버리는 딸 때문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문을 열었는데 평소랑 똑같이 웃길래. 나도 그냥 가슴을 내놓고? 샤워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길고도 짧았던 1년간의 모유수유가 끝났다. 시원한 화이트 와인을 이제 맘 편히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갠스레 웃음이 났다. 커피도 하루에 막 3잔은 먹어야지. 고마운 내 딸. 난 정말 복 받았다. 전설로만 내려오는 단유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이야. 아 그리고 원래 밥을 잘 안 먹어서 그런지 단유 하고 나서 밥을 많이 먹지는 않는데 물은 엄청 먹는 것 같다. 평소에는 몇 모금 마시지던 않았는데. 그만큼 내 젖이 물젖?ㅋㅋㅋㅋㅋㅋㅋ? 칼로리는 없고 수분만 가득했나 보다. ㅋㅋㅋㅋ 그래도 모유수유가 끝났다. 정말 끝. 단유 하고 나면 우울해진다는데.. 산후 우울증은 없었으나 단유 우울증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때마다 틈틈이 찍어둔 수유 영상 보며 마음을 달래야지. 이 세상 엄마들의 가슴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