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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워킹맘 May 10. 2020

그걸 꼭 오늘 해야 해?

마흔다섯, 이제야 글을 쓰는 나는 작가입니다.

평화로운 토요일 저녁, 자동차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걸 꼭 오늘 해야 해?"


낮에 한 남편의 말이 귓가를 맴돌아 멍하게 운전대를 잡고 있다가 서둘러 시동을 켰다. 헤드라이트를 켜니 부슬부슬 내리는 빗방울 한 올 한 올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회사로 가는 월롱산 뒷길은 오늘따라 왜 이리 구불구불한지, 모퉁이를 돌 때마다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오랜만의 야간 운전은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회사 앞에 주차를 하니 정확히 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켰다. 아이디카드를 목에 걸고 핸드폰으로 '코로나 일일 자가 진단'을 하며 회사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 예상했던 12층 사무실엔 2명의 남사원이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나를 흘끔 쳐다보는 그들을 지나 검토실에 도착했다. 걸려있는 샘플 4개를 확인하고 'ctrl+U' 버튼을 눌러  1) 잔상 패턴을 걸었다. 잔상 패턴이 잘 걸린 것을 확인하고 검토실을 나오기까지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열심히 장표를 만들고 있는 그들을 지나 불 꺼진 사무실을 뒤로하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주1) 잔상 이란? LCD 패널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하나의 평가 tool임. 모자이크 패턴을 패널에 장기간 구동하여 평가하는 시험 방법으로 고객사에 따라 잔상 시험 기준이 달라 '잔상 패턴'을 인가하는 시간이 다양함.  




"여보, 나 잠깐 회사 좀 갔다 와도 될까?"

"지금? 회사에? 무슨 일인데?"

"아니, 잔상을 걸어야 해서."

"그걸 꼭 오늘 해야 해?"

"48시간 잔상이라. 월요일에 걸면 수요일에 확인하는 거라 이틀을 날려 먹거든."

"다른 사람은 없어? 그걸 꼭 다연 엄마가 해야 해?"

"기숙사 사는 후배가 있긴 한데, 어버이날도 있고 집에 갔겠지. 그냥 내가 하는 게 편해서."

"(에휴~) 지금은 좀 그렇지, 있다가 저녁에 다녀오세요." 


그날 점심, 아이들과 함께 심학산 등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회사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마지못해 회사에 다녀오라고 했다. 우리는 사내 커플로 만나 결혼을 했는데, 나는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분명 19년 장기근속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남편이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 일을 꼭 토요일 저녁에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월요일에 그룹장님에게 보고해야 할 사항도 아니었고, 지금 당장 의사 결정을 위해 필요한 결과도 아니었다. 월요일에 출근서 해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이번 결과가 가장 궁금한 건 바로 나였다. 토요일에 잠깐 출근해서 패턴을 걸면 월요일에 확인할 수 있는데, 주말 이틀을 날리는 것이 아까웠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일하다 보니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두뇌가 풀가동을 한다. 이렇게 단련된 나의 뇌는 토요일에 회사에 가라고 나를 조정하고 있었다. 심학산을 오르면서도 '아~ 회사 잠깐 다녀오면 좋으련만'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사소한 일이지만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기어이 하고 마는 성격이다. 사실 나도 내가 이런 성격인지 몰랐다가 어느 날 동생의 이 한마디에 뜨끔한 적이 있었다.  


"언니는 좋겠어. 언니는 언니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결국 다 해내잖아."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동생이 이 말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동생의 이 말은 맞는 말이 되어간다. 그런데 동생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걱정이 참 많다. '잘못되면 어쩌지? 사람들이 나의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지? 망신당하면 어쩌지?' 남의 눈치를 살피고 완벽하지 못할까 봐, 망칠까 봐 불안에 떤다. 망설이다 타이밍을 놓쳐서 후회한 적도 많다. '조금만 더 공부하고 시작해야지. 아직은 준비가 덜 됐는데. 난 아직 부족하니까'  어떤 일을 할 때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생각들이다. 이런 걱정들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쉽지 않. "나, 이번에 oo을 좀 해보려고" 이 말을 내뱉기까지 나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며 나름 공부하고 준비를 한다. 나의 입과 행동으로 표출되는 일들은 이런 나의 내면의 벽을 뚫고 나오는 것들이다.   


이런 내가 마흔다섯이 되어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19년을 한 직장을 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또 다른 자아가 목소리를 내었는지 모를 일이다. 글을 쓰고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한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글쓰기에 관련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것도 변함이 없다. 망설이다 타이밍을 놓칠까 불안해하면서 출간기획서도 작성해 보고 있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나를 자꾸 움츠리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내면의 벽을 뚫고 나온 나의 꿈이기에 예전의 내가 그러했듯이 나는 이것을 해낼 것이라 믿는다.  


"그걸 꼭 오늘 해야 돼?"  누군가 묻는다면,


"응, 지금 해야겠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바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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