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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워킹맘 Apr 08. 2020

욜로의 허세? 입사 19년 차 워킹맘이 욜로된 사연

어제 브런치에 올린 글이 다음 포털과 브런치 홈 노출되면서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셨습니다. 라이킷을 눌러주신 독자님들 그리고 따뜻한 댓글 남겨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 포털에 글이 노출된 경험이 있는 작가님들은 잘 아실 겁니다. 댓글 내용이 항상 따뜻하지 않다는 것을요.


아침에 일어나 항상 그렇듯이 브런치 알람을 확인하는데 댓글 하나를 읽고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댓글의 주된 내용은 '상무가 된 그 선배가 진짜 회사원이고 나 같은 직장인 때문에 대한 민국이 이모양이다. 나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욜로의 허세다.'라는 논조의 내용이었습니다. 댓글을 캡처하지 못하고 삭제한 것이 후회가 되네요.  


어제 제가 올린 글을 먼저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https://brunch.co.kr/@jinny1919/76


아침 출근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욜로'라는 단어는 나와는 멀다고 생각했는데 욜로, 그것도 '욜로의 허세'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멍해지더군요. '82년생 김지영' 영화 포스터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아이 유모차와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그 포스터요. 누군가는 그 장면을 보고 팔자 좋은 전업맘, 또는 맘충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던지다는 이야기에 '설마'했는데 제가 그 김지영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어제 저의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 보았습니다. 오해할 소지를 남겼는지 내용의 비약은 없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과 상황에 따라 글의 주제, 글이 표현하려는 내용이 달리 전달될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제가 후속 글 쓰게 된 이유는 저와 비슷한 처지의 직장인 그리고 워킹맘의 현실을 정확히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질하게 비칠까 봐 지난 글에 자세히 쓰지 않았던 내용을 담아 보겠습니다.


저는 회사를 700일이 아니라 7000일을 다니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숫자 '0'의 개수를 잘 헤아려 주시고 희미해진 기억의 끈을 붙잡고 써 내려가는 오늘의 글이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Fact-1 

맞습니다. 저는 요즘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는 욜로족입니다. 요즘을 강조한 건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내 인생 최악의 암흑기는 둘째가 태어난 후부터 3살이 되기까지 약 3의 기간입니다. 아이를 넣고 3개월 만에 복직한 회사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되었고 실패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반복되는 야근에 몸도 마음도 지칠 때였습니다. TDR로 8~9명 같이 일하는 상황에서 밤늦도록 일하는 후배를 두고 일찍 퇴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퇴근해서 자정이 넘어 수없이 남편과 싸우기도 반복했지요. "이럴러면 퇴사해. 우리 둘 중에 한 명은 집에 일찍 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남편의 말에 이를 악물었고, 모두가 잠든 시간 옆에 잠들어 있는 아이의 숨결을 느끼며 혼자 많이도 울었습니다. 옛날 생각을 하니 왜 그렇게까지 참았나 억울해지기도 하네요. 회사일이 힘들어도 참았던 동료에 대한 의리, 이제 곧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 지금 손들면 죽을 때 후회할 것 같다는 복합적 이유였습니다. 다행히 프로젝트는 성공해서 CEO 포상도 받았었지요. 그때 시부모님께서 옆에서 아이들을 돌봐주지 않았으며 저는 분명 퇴사를 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새벽 6시 40분 첫 출근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7시 30분에 도착했고 남들보다 1시간 먼저 업무를 시작합니다. 예전에 자차로 남편과 같이 출근할 때는 7시에 회사에 올 때도 있었지요. 저는 1일 1식을 합니다. (아침은 고등학교 때부터 안 먹었으니 제쳐두고) 암흑기 때 바쁜 업무를 빨리 끝마치려고 점심을 먹지 않던 버릇이 10년을 넘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제 점심밥도 잘 안 넘어갑니다. 덕분에 다이어트도 되고 좋은데 친정엄마는 난리를 치시지요. 코로나로 점심에 도시락이 지급되어서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기도 합니다. 코로나 덕을 보는 것도 있군요. 저는 항상 회사 노트북을 가지고 퇴근합니다. 미쳐해야 할 업무를 하지 못했다면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아니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집에서 업무를 봅니다. 지난주 일이네요. 갑자기 잡힌 고객 CC에 영어로 발표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전날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영어 스크립트를 쓰고 달달 외웠습니다. 고객 CC가 끝나고 '어쩌면 영어를 그렇게 잘하냐고' 칭찬을 받았습니다만, 그냥 웃었습니다. 저의 이런 일상이 욜로처럼 느껴지시나요? 저는 회사에서 뒤처진다는 소리도 듣기 싫고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빨리 달려가고 싶은 평범한 직장인이자 엄마일 뿐입니다. 7000일 시간을 달려오며 제가 선택한 것은 1시간 먼저 일하고 점심을 스킵하며 정시 퇴근을 하는 것입니다.



Fact-2.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은 퇴근하면 회사 생각을 하지 않는 욜로입니다. 공황장애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 심호흡을 크게 해야 하고 내일 회사에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날이 있었습니다. 입사하고 4년 정도 되었을 때 처음 찾아왔던 것 같네요. 그때 저의 돌파구는 (돈을 쓸 시간이 없어) 남아도는 월급으로 책을 사는 일이었습니다. 어릴 때 책을 살 형편이 못되어 위인전 한 질과 백과사전이 닳도록 읽은 기억이 있어서인지 책을 내 맘대로 살 때 쾌감이 느껴졌습니다. 사서 읽기도 하고 몇 권 더 사서 선배들한테 책 선물도 하고 그랬습니다. 3~4주에 걸쳐 아주 똑같은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꿈에서 토를 하는데 자다가 벌떡 일어나 침대에 내가 토를 했나 더듬거릴 정도로 리얼하고 끔찍하게 토를 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지요. 회사 걱정이 많아질 때면 지금도 가끔 토하는 꿈을 꿉니다.


사람마다 기질의 차이가 있을 테지만, 작은 일에 신경 쓰고 퇴근해서도 내일 업무를 걱정하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낳고 엄마가 되면 신경 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집에서까지 엄마의 힘든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는 회사 생각을 하지 않는 연습을 했고 이제는 현관 앞에서는 회사를 털고 활짝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안아 줍니다. 다만 평일에 휴가 내서 대낮 거리를 활보할 때면 계속 핸드폰을 확인하고 문자가 왔나 카톡이 왔나 자주 확인합니다. 회사에 있어야 할 평일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아직 더 연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평화로움이면 저는 지금 충분히 행복합니다.


Fact-3.

저는 빠르게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잽싸게 손을 드는 욜로입니다. 직장인에게 '일을 참 잘한다'는 평가 기준은 무엇이 있을까요. 승진이 빠른 사람? 고과를 잘 받는 사람? 동료들에게 평이 좋은 사람? 무수한 기준이 있을 텐데, 직장 내공이 어느 정도 쌓이 저에게도 이 질문은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팀장 또는 상무로 승진한다는 것은 물론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팀장이 되지 못했다고 상무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 만으로는 진급할 수 없습니다. 윗사람의 눈에 뜨여야 하고 그 사람 이야기가 나왔을 때 누군가 몇 명 맞장구를 쳐줘야 합니다. "어.. 그  친구는 좀.."이라는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면 게임 끝입니다. 맞장구 쳐주는 1~2명의 사람을 만들기가 적어도 저는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진급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현실은 여사원의 승진 속도나 확률 측면에서 아직 열악합니다. 이상하게도 내 목소리를 내어 의견을 피력하면 '자기주장이 너무 세다'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수긍하고 조율해 나가면 '내 의견이 없는 사람' 취급 받는 경우를 저는 자주 목격했습니다. 오랜 고민과 좌절 그리고 체념이 이어오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 두 가지 갈래길에서 갈팡질팡 하지 말자입니다. 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최선을 다해서 하자'는 심플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포기할 것은 빠르게 포기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저에게 기회를 주거나 선택권을 주면 해보겠다고 표현합니다. 작년 말 회사 조직 이동이 있어 새로운 사업부로 전배를 온 지 넉 달 되었는데 사업부장님께 대면보고를 2번이나 했습니다. 보고를 직접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는 '무조건 해야죠~'하고 대답합니다. 빠르게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그 누구보다 집중해서 일하려고 합니다. 이게 욜로라면 어쩔 수 없겠네요.    


글을 쓰다 보니 '욜로의 허세'까지는 아니지만 '욜로의 자랑'이 된 건 아닌지 슬며시 걱정이 됩니다. 팀장이 못될 걸 알면서도 저는 리더십이나 자기 계발에 관련된 책은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브런치에 올린 글도 있었군요. (글 다시 보기 : 팀장이 못 될걸 알면서도 리더십 책을 못 파는 이유)

이제 저는 팀장이 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의 회사 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즐겁습니다.

 





덤덤히 쓰려고 했는데 몇몇 옛날 장면이 떠올라 괜히 눈물이 나올 뻔했네요. 점심시간에 부랴 부랴 쓰느라 저의 글이 거칠어도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래, 일하는 워킹맘 짠하다'는 댓글이 달릴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만. 맞아요. 저 짠하게 일하고 있어요. 이게 저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회사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도움되는 일이 없으니까요. 이런 이야기도 글로 전할 수 있는 브런치는 제가 사랑하는 공간입니다.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이곳이 정말 좋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린 글에 응원의 한 마디가 달리면 더할 나위 없지요. 하나의 글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글 하나에 인생을 담아내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나 버라이어티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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