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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워킹맘 Apr 06. 2020

"내가 상무 될 동안 너는 뭐했니?"

6993일 출근 중

"내가 상무 될 동안 너는 뭐했냐?"

"어머, 무슨 말씀.. 내가 선배보다 더 오래 회사 다닐걸요?"


오랜만에 선배가 사주는 짜장면을 먹다가 눈 앞에 있는 노란 단무지를 던질 뻔했다. 아니다 농담이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약 1초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냥 웃어넘겼다. 그는 A동 6층 사무실 나의 첫 출근을 기억하는 몇 사람 중 한 명이고, 검사기 레시피를 가르쳐주며 스막복을 입고 라인에서 함께 굴렀던 선배이기도 하다. 밤 12시에 퇴근하고 수 없이 소주잔을 부딪히며 '너는 여자가 아니라 엔지니어야'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러준 선배이기도 하다. 키도 몸도 작은 첫 여자 후배가 안쓰러웠는지 그의 가르침 덕에 나는 6993일째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 스스럼없이 던진 그의 말에 꿈쩍하지 않을 만큼 나의 내공은 만만치 않다. '좀 더 멋진 말로 대답해줄걸'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회사에서 승진은 입사순이 아니다. 나는 이 자연스러운 진리를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기업 여사원, 결혼 여부를 떠나 유리 천장을 깨기란 쉽지 않다. 어쩌다 보니 내 인생 절반의 시간을 다니고 있는 이 회사에서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쉽게 받아넘긴 그의 질문이 아직까지 내 마음 한편을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꽤나 심오한 질문이다. '결혼을 했음. 나름대로 노후 준비를 하고 있음. 예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씩씩하게 회사를 잘 다니고 브런치 작가도 됐음..' 정리되지 않은 문장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 피식 웃음이 나다.

'뭐야. 그냥 회사 다닌 거지 뭐. 내가 회사에서 어디까지 진급했는지, 어떤 중요한 일을 했는지 뭐가 중요해?'    




OO-Days 6993

7일 후면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지 7000일이 된다. 남편과 만난 100일도 챙기지 않던 내가 회사 입사한 기념일까지 헤아렸을 리 만무하다. 회사 메인 화면에 항상 떠 있던 날짜가 하루에 하나씩 늘어나 이제 7000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뿐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바 없던 날 연속이지만 '7000'이 숫자는 내 마음을 조금 들뜨게 했다. 회사에서는 눈치채는 사람이 없을 테니, 스스로 자축하며 브런치에 멋진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7000일에 올릴 주제는 더 고민해보기로 하고, D-7일 기념 '나의 선배가 상무가 될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나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나는 퇴근할 때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상무는커녕 팀장도 아닌 주제에 나는 퇴근할 때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수고하세요~"를 쿨하게 남기고 책상에 앉아 있는 팀장과 파트리더를 뒤로 하고 유유히 걸어 나온다. 어찌 보면 이 여유는 상무가 되는 스킬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 초보 워킹맘 시절엔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불안했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한테 빨리 퇴근한다고 약속이라도 한 날이면 그 초조함은 더다. 팀장님이 잔뜩 인상이라도 쓰고 있는 날이면 내가 맡은 때문에 그런가? 괜히 혼자 마음 졸이기도 했다. 이런 괜한 생각들은 나만의 상상에 그칠 확률이 높음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지레짐작 겁먹지 않아야 한다. 내가 맡은 일을 다 끝냈으면 퇴근하는 것이 정상이며 '정상의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뿐이다.


칼퇴근을 위해서는 퇴근해서 팀장이 나를 찾지 않게 하는 몇 가지 스킬은 필요하다. 상사의 요청이나 질문에는 바로바로 회신을 하고 시일이 걸리는 은 언제까지 보고 하겠다는 일정 관리를 하여 주기적으로 보고하면 끝이다. 오늘 나의 칼퇴근은 훗날 회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혹시 상무나 임원까지 저 높은 곳을 꿈꾸고 있다면 10% 정도 영향이 있을까 말까 하지만.



나는 현관 앞에서 회사 털어내는 기술을 가진 직장인이 되었다. 이 기술을 터득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평온한 주말, 아이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다가도 인상을 쓰며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남편의 표정만 봐도 '회사 메일을 보고 있군' 바로 알 수 있다. 팀장인 남편은 집에서 회사의 끈을 놓지 못하는 불쌍한 직장인이다. 내가 팀장 혹은 상무가 아님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는 순간이다. 팀장이 아니라도 퇴근해서 회사일이 머릿속에 맴돌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일요일 저녁 되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죽을 맛이 된다. 월요병의 원흉'집에서 회사 생각하기'는 직장인에게 끔찍한 재앙이다. 정말 견디기 어려웠던 순간을 지나며 '퇴근하면 무조건 회사 생각을 하지 말자' 의식적인 노력을 거듭하였다. 무의식적으로 일 걱정을 하는 나를 발견하면 머리를 힘껏 흔들어 회사 생각을 떨쳐다. 이러한 과정은 연습이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퇴근과 동시에 회사를 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에이, 그게 연습한다고 되겠어?' 생각하지 말고 바로 실행을 해보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1~2년 정도 연습하면 어느새 집 현관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나는 포기할 것은 빠르게 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재빠르게 손을 드는 직장인이 되었다. '포기'란 배추를 셀 때뿐 아니라 직장인이라면 빠르게 터득해야 하는 기술이다. 담당 내에 1년에 1~2명 뽑는 학위 파견도 나는 빠르게 포기했다. 내가 파트원일 때에는 연차가 높은 선배 순으로 가더니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지금은 나이 제한이 생겨 나는 신청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깝지만 나이 제한에 걸려 다른 사람을 학위 파견에 보내게 됐다'는 말은 궁색한 변명으로 들려온다. 나는 진작에 포기한 학위 파견이다. 애 둘 딸린 워킹맘에게 회사에서 주는 기회는 흔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대신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에는 빠르게 손을 들었다. 회사의 연구소가 서울로 이동하는 큰 이사가 있던 2년 전 겨울의 일이다. 나는 이동 업무를 맡는 담당의 대표를 맡게 되었다. 약 3주간에 걸쳐 설비와 사무용품이 이동하는 데 담당별 대표들이 모여 저마다 역할을 정하는 자리였다. 설비가 이동하는 길목에서 안전을 관리 감독하는 일을 뽑을 때 아무도 지원하지 않길래 나는 재빨리 손을 들었다. 추운 곳에 4~5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일을 사람들은 꺼려했지만 이 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 있나 었다. 3주의 시간은 이동이 빨라져 2주 정도로 줄었고 추운 날씨에 얼굴이 얼었던 것 말고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이 일은 생각지도 못하게 꽤 많은 금액의 인센티브를 받는 기회를 안겨 주었다. 추운 날씨에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와 몇 번 마추친 CPO님(생산최고책임자)이 인센티브를 주신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센티브는 금액을 떠나 내가 맡은 일이 크건 작건 나의 기준에서 해낸다는 나의 신념을 확고히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선배가 상무가 될 동안 나는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지금 회사 생활이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 정도 직장인이라면 상무보다 훌륭하지 않을까? 상무가 아니면 어때, 팀장이 아니면 어때, 나는 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


"선배~ 나 부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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