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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워킹맘 May 15. 2019

워킹맘 엔드게임, 내 소득의 절반이 사라졌다.

어벤져스 스포 없음

Monday, 월요일

“여보~, 이번 주 토요일에 강의 들으러 가요. 지난번에 얘기했었던 거 법인 강의. 알고 있지?”

“나한테 언제 얘기했었나? 그거 지난번에도 들은 거 아니었어?”

“지난번 들은 건 다른 강의였지. 내가 이번 주 간다고 한 거 기억 안 나?”


아침 출근길, 오랜만에 졸린 눈을 비비며 현관까지 따라 나왔는데, 이번 주 법인 수업이 있는 걸 또 까먹은 남편이다. 늘 이렇다. 한 번 이야기하면 기억을 잘 못하는 남편. 맨날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날 보는 저 눈빛 뭐야~ 메멘토도 아니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우리 가족을 위해 부동산 투자 공부를 딱 1년만 할 테니  지원해 달라고 했었다. 본인도 OK 했으면서, 이제는 어디 강의만 간다고 하면 저렇게 기억을 못 하는 척을 한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강의료 얼마냐고 꼬박꼬박 물어본다. 아니, 내가 무슨 비싼 명품을 산 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 미래를 위해 공부에 투자한다는 데 이리 눈치를 주나? 치사하다.

 

Tuesday, 화요일

동생한테 곗돈이 3개월 밀렸다고 카톡이 왔다. '아~ 맞다!'
결혼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 독립을 하면서 매달 5만 원씩 따로 저축을 해왔었다. 별도로 드리는 용돈도 있었지만 친정집 행사나 비상사태(?) 지원금으로 사용해 왔다. 매년 엄마, 아빠 생신 식사 비용으로 고장 난 세탁기 교체 비용 등으로 요긴하게 써오던 터라 동생의 카톡에 뜨끔해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자동 이체로 빠져나가는 항목을 정리하다가 3개월 전에 곗돈 자동 이체를 해제한 것을 잊고 있었다. 빠듯한 생활비로 어쩔 수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었고, 동생한테 말한다는 걸 차일피일 미루다 깜빡해버렸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지?' 카톡 화면이 뚫어져라 몇 분간을 쳐다만 봤다.


Wednesday, 수요일
둘째 반모임을 다녀왔다. 평일 낮 반모임을 다녀오다니 회사 다닐 때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다. 커피빈에 모여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다른 엄마들은 친한 그룹끼리 서로 언니 동생 하며 이야기를 하는데 난 계속 부처님 웃음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곧 적응이 되겠지.


요즘 토커스 영어 학원이 대세인가 보다. 다른 곳보다 10만 원 정도 더 비싼데  위주로 가르쳐 주어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진짜 아이들이 좋아할까? 우리 애들은 영어 학원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부정적인 생각도 잠시 팔랑귀인 나는 이 학원을 보내면 아이들이 좋아하고 영어도 덜 잘할 거라는 생각에 빠졌다. 앗! 비용이 문제다.

맞벌이 할 때 몸은 힘들었지만 아이들 학원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면 돈 문제를 크게 신경 쓰지 않다. 이제는 주판을 튕겨 가성비 고려 최적의 학원을 뽑아야 하고, 하나를 새로 보내려면 다른 하나를 빼야 하는 총량 불의 법칙을 꼭 지켜야 한다.


Thursday, 목요일

"어머님, 어디세요? 집에 오니 아무도 안 계셔서 어디 나가셨어요?"

"어, 나 독산동에 와 있다."

"... 아, 그러세요?


시댁이 오래된 다가주 주택을 가지고 있는데, 며칠째 어머님은 여기를 다녀오시는 눈치다. 지금 시댁은 같은 아파트 단지 옆 동에 살고 계신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오롯이 손주 둘을 봐주시기 위해 서울에서 파주로 이사를 오셨고, 감사하게도 10년을 넘게 잘 봐주시고 계신다. 워킹맘일 때, 아이들도 돌봐 주시고 생활비 겸 넉넉히 용돈을 드렸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아이들을 케어하게 되니 드리던 돈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독산동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두 분께서 이야기하시는 것을 얼핏 들었다. 별다른 소득이 없으시다 보니 관리비도 부담되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으신 눈치여서 마음이 편치 않다. 손주들 보는 낙으로 사셨던 두 분인데, 떨어지면 얼마나 눈에 밟힐 것이며, 아이들도 할아버 할머니 손길을 그리워할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용돈을 조금 더 드려야 하나?' 워킹맘 생활이 끝나니 새로운 고민들이 계속 더 생겨나고 있다.   


Friday, 금요일

드디어 사단이 나고 말았다. 칼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과 분위기 좋게 치맥 하며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 대판 싸우고 말았다. 우리 집 현금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다, 뜬금없이 통장 잔고를 묻길래 마이너스 천오백만 원이라고 이야기했다.

"뭐?, 돈이 다 어디로 갔냐고?"

다달이 두 집 대출받은 거 이자 내고, 아이들 학원비에 각종 공과금 내고 남은 돈으로 식비 아껴가며 겨우 겨우 생활하고 있는데. 월요일부터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해 버렸다.
 


워킹맘을 그만두니 우리 집 소득의 절반이 사라져 버렸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타노스의 핑거스냅으로 생명체 절반이 사라져 버린 후, 황폐해진 세상 풍경처럼 마음이 황폐해지는 요즘이다. 내가 번 돈이 아니라, 남의 편이 벌어온 돈으로 뭔가를 사는 게 이렇게 눈치가 보이는 것이었나? 소득의 절반이 사라질 때 생기는 고민이 이 정도일 줄 았았다면 그만두지 않았을 텐데.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워킹맘 엔드게임은 박진감 넘치는 액션 히어로 영화가 아닌 새드엔딩이 되버렸다.  


'다시 회사를 다녀?' 잠시 갈등을 해본다.

타임머신을 타고 인피니티 스톤을 찾으러 가는 어벤저스만큼 스펙터클 하지는 않겠지만, 재취직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부동산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동생이랑 곗돈 5만 원씩 모으고

시댁이 옆 동에 사시며 아이들 봐주시는 건

나의 리얼 모습이다. 나머지 상황은 워킹맘을 그만두었을 때 일어날 법한 것을 상상하며 소설을 써보았다.


여동생이 결혼하고 조카가 2살 될 때까지 일하다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둔 적이 있. 당시 옷 하나를 사더라도 왜 그렇게 남편 눈치가 보이는지 모르겠다면서 하소연을 했었다. 내가 정말 일을 그만두었을 때, 다섯 가지 에피소드 중 적어도 두세 가지는 일어나지 않을까? 월급쟁이 지 19년이 넘기에 돈 쓰는데 자유로움이 있지만 외벌이를 하게 되면 이러한 자유로움은 어느 정도 포기를 해야 할 것다. 소설 한 편 쓰고 보니 회사 그만 두면 안 되겠다.

그래서 오늘도 사표 쓰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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