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술 후 2주 동안 뭘 하면 좋을까
커튼을 젖히고 이제 나가셔도 된다는 간호사의 말에 선잠에서 깼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시술실에서 나가니 남편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아픈 거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시술을 할 때마다 남편은 같은 표정이다. 나중에 출산할 때는 무슨 표정을 지으려고 벌써부터 저러나 싶다. 그래도 왠지 든든한 마음이 들어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아직 시술을 기다리고 있는 부부들을 뒤로한 채 함께 병원 로비로 올라갔다.
수납을 하고 약국에서 2주 치 질정을 받아 집으로 향했다. 시술 직후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배 통증이 심해져 집에 도착했을 때는 그저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남편은 늦은 출근을 하고 나는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 가위에 눌릴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딱 떴더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물리적으로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피곤함을 온몸에 두른 채 어슬렁어슬렁 거실로 나왔다.
자. 이제 뭘 해야 하지.
분명 두 번의 경험이 있었는데, 시술 직후 뭘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평온하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게 될 리가 있나. 배가 묵직하고 아파서 일단 소파에 앉았다. 늘상 끼고 사는 시바견 모양의 애착 인형 식빵이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뱅갈 고무나무를 쳐다봤다. 작년 두 번째 시술을 했을 때, 멀리 양재동 화훼공판장까지 가서 데려온 녀석인데 용케도 아직 잘 자라고 있다. 뱅갈 고무나무라서 이름은 호랭이. 최근 분갈이도 해주었다. 처음엔 키우는 방법을 잘 몰라 여러 번 위기가 있었고, 사실은 지금도 웃자라 삐쩍 마른 사춘기 소년 같은 모습이다. 그래도 내 눈에는 장하고 귀여울 따름이다.
식물멍을 한참 때리다 보니 문득 배가 고팠다. 어느새 점심시간을 훌쩍 지난 시간. 엄마가 보내준 추어탕에 미리 해 두었던 잡곡밥을 먹기로 했다. 유독 음식에 예민해지는 시기다 보니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자주 검색했었다. 가능하면 고단백을 먹고 두유, 포도즙, 아보카도를 챙겨 먹으면 좋다는 말도 많았다. 하지만 결론은 술, 담배 빼고 먹고 싶은 것을 건강하게 먹으면 된다는 거였다. 여러 의견 중, 모 산부인과 의사의 '임신했다고 생각하고 먹으면 된다'라는 말이 가장 와 닿았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다시 졸음이 몰려왔다. 배 통증은 여전했지만 두통이나 울렁거림은 없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있자니 문득 남들은 어떤 증상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때, 번개처럼 작년의 일들이 스쳐갔다. 시술이 끝나고 내가 했던 일. 바로 인터넷 폭풍 검색. 사람들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증상을 난임 카페에서 볼 수 있다. 하루가 일 년 같다는, 롤러코스터처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2주의 기다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미 여러 번 봐서 알고 있지만, 2020 ver. 은 또 달랐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시술을 하고 어쩌면 더 늘어난 것도 같고 증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앞으로 2주간 나는 매일 아침 기초체온을 재고, 질정을 넣고, 건강한 요리를 만들고, 영양제를 먹고, 인공 n일차로 인터넷 검색을 할 것이다. 일상은 일상대로 충실하겠지만, 시술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무관심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가끔은 이런 일에 무심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치만 예민하게 태어난 걸 뭐 별 수 있나. 대신 뭐든 억지로 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동안 무리해서 잘 된 일이 없었으니,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지낼 생각이다. 붙잡고 싶어도 저절로 흘러가는 것이 시간이니까.
마의 시술 후 2주가 시작됐다. 두렵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