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엄마가 되고 싶었어
지금은 쉽지가 않지만
30대 초 결혼 후 남편과 둘이 지내다 40대에 아이를 낳았다. 난임 병원에 다니며 글쓰기 세상을 만났고 그럼 나는 글 쓰는 엄마가 되어야지 다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글은 일상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글을 뜻한다. 문학이나 돈 되는 글을 목표로 한 건 아니었다. 결국 엄마가 되긴 했지만 글 쓰는 엄마는 글쎄... 온전히 내 이야기만 쓸 때는 부담이 없었는데,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적으려니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마치 영화 대사처럼 잃을 것이 생긴 기분이다. 맘대로 생각하고 써 내려갔다가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8개월 가까이 아기의 언어를 쓰다 보니 슬슬 어른의 말도 어려워진다. 공개하지 않는 글을 쓸 때마저 망설인다. 아이가 생기면 체력이 모자라 자주 글을 쓰지 못해도, 매일매일 반짝이는 에피소드가 쏟아질 거라 기대 했는데. 착각이었다. 경험을 에피소드로 바꾸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내 생각만 정리하면 되던 때와 다르다. 육아가 이렇게 무거운 감정을 짊어지게 하는 건 줄 몰랐다. 환희만큼 커다란 걱정의 쓰나미, 하품이 날 정도로 지루하면서도 순간순간 느껴지는 격한 감정들. 아이를 낳으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은 옳았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바뀌는지 몰랐을 뿐이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엄마도 옆에서 크고 있다. 더 늘지 않아도 되는 엄마 몸무게까지.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씻기는 일'만' 하는데도 매일 밤 녹초가 된다. 발달에 맞춘 놀이를 검색하다 잠이 들고, 아이의 울음소리로 아침을 맞는다. 머릿속이 온통 아이로 가득 찼는데도 늘 부족함을 느낀다. 병원에 갈 때마다 밀려오는 죄책감은 덤이다. 세상이 환해졌다 깜깜해졌다 한다. 문득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싶다가도 병원에 다닐 시간이 없는 현실에 생각을 접는다. 그 와중에 적는 메모들은 어쩐지 힘이 없다. 에너지를 육아에 다 쓰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계속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둘 수는 없다. 잠시라도 온전한 내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말로 '자유부인'이 되는 시간. 육아하는 친구들이 늘 했던 말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이 있음에도 그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지금 남편은 거실에서 아기를 보고 있다. 문 너머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자꾸만 나가서 달래야 하나 싶어 엉덩이가 들썩인다. 그래도 모른 척 글을 쓰고 있다.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 사실 잘 모르겠다. 글 쓰는 게 즐겁고 읽히는 게 신났는데. 지금 같은 부담감을 안고 글 쓰는 엄마가 될 수 있을는지.
하소연을 참 길게도 썼다. 간간히 적은 메모 속 아이의 귀여운 순간들을 잘 정리해 글로 만들려면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어쩌면 육아를 너무 어렵게 대하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혹은 무겁게. 육아는 장기 전이라던데, 적어도 태금이와 함께 살아갈 날들을 불안과 무기력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다.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유부인의 시간을 신나게 즐기고 그 힘을 원동력 삼아 다시 태금이를 돌볼 수 있게 애써보겠다. 둘이 보낸 30대도 즐거웠지만, 셋이 보낼 40대도 기대가 크다. 걱정보다 희망을 품고 살려면 좀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 글 쓰는 엄마 되기. 쉽지는 않지만 다시 한번 힘내서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