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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몫 Dec 21. 2020

크리스마스와 와인

이날만큼 맛있는 와인이 생각나는 날이 또 있을까요?

영화 등 매체에서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만찬 테이블을 보며 군침 흘리신 적이 있으신가요? 식탐이 많고 안 먹어본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저는 만찬 테이블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보낸 첫 해, 가장 인상적인 식사도 크리스마스 만찬이었어요.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답게 크리스마스 때 상당한 양의 음식과 디저트를 준비하고, 어울리는 술을 곁들여 즐깁니다. 그러다 보니 식사 시간이 2~3시간은 훌쩍 넘어가지요. 이번 글에서는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크리스마스에 전형적으로 먹는 음식들과 와인을 매칭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이 순서대로 즐기지 않으셔도 상관없고, 평소에 좋아하시는 스타일의 음식과 와인 궁합이 맞는지 살펴보시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거 같아요.


가장 먼저, 주의하실 점부터 알려드릴게요. 혹시 올드 빈티지 와인이 있으시다면 굳이 크리스마스 만찬에 곁들이지 않으시는 것을 권합니다. 와인을 따 보니 맛이 변했거나 보관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이 경우에는 괜히 입맛만 버리거든요. 잘 숙성된 올드 빈티지는 사실 안주 없이도 충분히 맛있는 와인이니, 굳이 크리스마스 만찬에 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에피타이저로 많이 먹는 생굴. 이미지 출처: https://www.cuisineaz.com/

만찬을 시작하는 와인으로는, 버블이나 우아한 분위기의 화이트 와인이 좋을 거 같아요. 프랑스에서는 크리스마스 애피타이저로 보통 생굴, 훈제연어나 관자요리, 패스트리에 감싸 크림소스를 곁들인 해물요리나 버섯 등을 많이 먹는데, 블랑 드 블랑 샴페인이나 크레망을 흔히 추천합니다. 혹시 버블이 싫다거나 샴페인은 나중에 마시는 게 좋으신 분들은, 해물이나 생선요리를 전채로 먹는 만큼 미네랄 아로마가 좀 있는 샤블리나 리슬링, 루아르의 화이트 와인도 좋을 거 같아요. 몇 해 전에는 독일 리슬링 와인으로 만찬을 시작한 적이 있었는데 좋은 매칭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생굴에는 샤블리를 많이 드시지만, 꽃향기와 열대과일 및 백도 아로마가 매력적인 픽풀(Picpoul)로 만든 화이트도 꽤 잘 어울립니다.


푸아그라. 이미지 출처: https://www.cuisineaz.com/

푸아그라를 소스로 만든 음식이나 닭고기 등의 가금류 음식과는 오크통에서 숙성한 화이트 와인이 매칭하기 좋습니다. 부르고뉴의 샤도네이나, 보르도 그라브 지방의 화이트가 오일리한 편이라서 궁합이 좋아요.

푸아그라를 메인으로 드시는 경우에는, 단맛이 있는 와인이 어울립니다. 귀부 와인인 몽바지악이나 소텐느 등과 푸아그라를 함께 드시면 푸아그라 특유의 쓴맛을 잡아주고, 부드러운 맛을 한층 더 끌어올려줍니다.


파테(Pâté)나 테린을 먹을 때는 부르고뉴 화이트나 프로방스 로제 와인이랑 드셔 보세요. 양념에 쓰인 허브의 향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보졸레 와인과도 잘 어울려요.


메인으로 나오는 요리와의 궁합을 알아볼까요?

밤을 곁들여 구워낸 칠면조 요리

사진에서 보실 수 있는 밤으로 속을 채워 구워내는 칠면조 요리는 크로즈 에르미타쥬의 화이트나 알자스의 피노누아, 쥐라의 화이트 와인과 궁합이 좋아요. 칠면조나 닭고기 등의 가금류를 구워낸 요리는 아무래도 고기가 건조하고 육즙이 적을 수밖에 없는데, 너무 탄닌이 강한 와인들과는 매칭이 좋지 않습니다. 제가 언급한 아뻴라시옹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드시던 와인 중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마시기 좋은 와인과 곁들여보세요. 칠면조 구이가 아니라 크림소스를 곁들인 요리라면, 부르고뉴 샤도네이나 유질감이 좀 있는 콩드리유와도 잘 어울립니다. 같은 칠면조라도 레드와인 소스를 좀 끼얹은 요리라면 조금 더 바디감이 있는 카베르네 소비뇽과도 괜찮습니다.


오리 가슴살 구이입니다. (이미지 출처: cuisine actuelle)

소고기, 돼지고기나 양고기 등의 육류를 메인으로 드신다면 메독 지방 와인이나 생 조제프, 바케라스, 반돌의 레드 와인을 추천합니다. 오리 가슴살 구이(Magret de Canard)는 보르도 와인과 찰떡궁합입니다. 생떼밀리옹, 꼬뜨 드 블라이 드 보르도, 메독 및 생 에스테프의 파워풀한 레드와 잘 어울려요.


크리스마스 치즈 플레이트 (이미지 출처: www.marieclaire.fr)

특별한 날이니만큼 치즈도 정성껏 준비하죠. 평소에 좋아하던 치즈나 특별한 날 먹고 싶은 치즈를 골라서 3-4가지 정도 세팅하시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양젖 치즈(tomme de brebis)를 좋아해서 가능한 꼭 넣어요. 양젖 치즈는 목 넘김이 좋은 부드러운 레드와 잘 어울려서, 메인 요리에 이어 같이 곁들여 먹으면 좋습니다. 마침 바디감이 강한 레드를 메인에 곁들였다면, 메인 식사가 끝나고 칸탈 치즈나 미몰레뜨와 같이 드셔 보세요. 메인 요리를 드실 때는 레드를 마셨다가, 치즈 플레이트에서는 와인을 바꾸는 경우도 흔합니다.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의 경우에는 쉐브르나 꽁떼, 사보아 지방의 생 마르서랭 치즈와 궁합이 좋고, 드라이하면서도 바디감도 강한 화이트를 드실 때는 스트라스부르의 먼스터 치즈나 몽 도르가 잘 어울려요.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곁들인다면 브리 치즈나 숙성이 오래되지 않은 까망베르를 추천합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부쉬 드 노엘. (이미지 출처: frenchly)

식사의 마무리인 디저트는 으레 부쉬 드 노엘로 합니다. 통나무 모양을 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다들 이름만은 들어보셨을 거 같아요. 부쉬는 프랑스어로 통나무 장작이라는 뜻으로, 부쉬 드 노엘이라는 케이크는 세계 2차 대전 이후에 한 베이커리에서 선보인 후 화제가 되어 점차 전 지역에서 먹는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만찬 후에 진짜 통나무 장작을 태우던 중세 시절의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땔감 하나 없이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기리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만찬 후에 통나무 장작을 태우며 한 해 동안 수고한 나 자신을 위로해주고 새해에는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소원을 빌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태운 장작은 이듬해 부활절 일주일 전까지 고이 간직해야 마녀와 악귀로부터 신변을 보호할 수 있고 온갖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었대요. 이 부쉬 드 노엘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한국 등 아시아에서는 아무래도 초콜릿이 들어간 부쉬 드 노엘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과일이나 헤이즐넛 크림을 베이스로 만드는 부쉬 드 노엘도 많습니다. 먼저 열대과일이나 베리류 과일로 만든 부쉬 드 노엘은 스파클링 와인이나 게뷔르츠트라미너와 드시면 좋습니다. 상큼함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느낌이에요. 헤이즐넛이나 아몬드 크림이 들어간 것은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혹은 달달한 와인과 매치하기 좋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보셨을, 진한 초콜릿이 들어간 부쉬 드 노엘은 바케라스, 케란, 라스토나 생떼밀리옹 등 상대적으로 바디감이 있는 레드와 잘 어울려요.




크리스마스엔 치킨이지! 하신다면,

https://brunch.co.kr/@andreakimgu1k/57




레퍼런스:

https://www.thewinesociety.com/

https://www.cnews.fr/racines/2014-12-22/pourquoi-mange-t-de-la-buche-au-repas-de-noel-696798#:~:text=Cette%20coutume%20devait%20%C3%A0%20la,pour%20l'ann%C3%A9e%20%C3%A0%20venir.

https://www.sommelier-vins.com/2020/12/vin-et-huitres/

https://www.lepoint.fr/vin/accords-mets-vins-le-pate-en-croute-et-le-rose-de-provence-30-03-2018-2206793_581.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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