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내가 글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는 글의 길이와 내용이었다. 짧은 글은 내용에 깊이가 없을 것이라 여기며 항상 두꺼운 책만 읽었다. 하지만 두꺼운 책은 전문서일 때가 많았고, 그래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읽는 중간에 포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독해력이나 지식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실망했다. 그러면 조금 쉬운 책을 읽으면 좋았을 것을,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운다고 요즘 많이 팔리는 "자기 계발서"류를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나 하는 생각을 보란 듯이 책으로 내는 행위가 영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 글"에 대한 집착과 "전문성" 짙은 내용에 대한 집착은 박사 과정을 밟고 온갖 논문을 쓰면서 더욱 강해졌다. 두꺼운 논문이 훌륭한 논문이라 여겼던 것이다. 물론 그 생각은 수차례의 논문 지도를 통해 보기 좋게 깨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숱한 경험을 하며 느낀 점이 있다. 글의 완성도는 길이에 절대 비례하지 않으며, 좋은 글은 꼭 전문적일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거기서 글을 거창하게 쓸 필요는 전혀 없다는 점도 깨닫고 말았다.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는 서로 이어져 있다고 하던가, 그래서 좋은 글의 기준이 바뀌며 작문의 기준도 바뀐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을 겪은 느낌이다.
긴 글과 전문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될 수 있음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오늘 본 파란 하늘, 오늘 뉴스를 보고 느낀 점, 오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점,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이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될 수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100개의 글이 있으면 100개의 다른 생각이 있으며 각각에는 다른 울림이 깃들어 있다. 짧고 간결하고 무덤덤한 글임에도 장미 가시처럼 강렬하게 가슴에 박히는 문장도 있다. 내가 알게 모르게 무시했던 짧은 글과 비전문적인 서적의 내용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훌륭했다. 긴 글과 전문성의 집착에서 벗어난 나는 자기 계발서를 5권이나 정독했다. 사실 이것조차 나에겐 크나큰 모험이었다. 그리고 나는 편협을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집착은 봄바람에 녹는 눈처럼 사르르 사라져 갔다. 모험은 보상이 뒤따른다고 하는데, 나에겐 이러한 집착에서 벗어난 것 자체가 큰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분량이나 내용에 얽매이면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그러면 나의 감정과 지식을 활용할 길도 없어진다. 감정과 지식은 누군가와 나눔으로써 발전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내 안에만 잠든 것들을 고이 감싸기만 하다간 정체되며 악취를 풍기게 된다. 그리고 그 지식이나 감정, 생각이 설령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내가 가볍게 여기는 무언가가 다른 사람이 보기엔 장미 가시처럼 강렬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내 안에서만 숙성시켜 봐야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분량, 내용, 더 나아가 형식에 얽매이지 말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써보자. 그러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발전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