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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n 29. 2024

여행의 낭만이 사라진 오사카

간사이 소도시 여행 (1) 


오사카에 처음 왔던 것은 2013년쯤이었다. 벌써 11년 전이다. 그때도 네이버에 '오사카 여행'을 검색하면 글리코 상이 있는 도톤보리가 가장 유명한 곳이었고, 난바, 우메다, 오사카성은 꼭 들르는 관광지였다. 마찬가지로 오사카 여행을 올 때 꼭 함께 추천하는 곳이 교토, 고베, 나라였다. '교토 여행'을 검색하면 그때도 청수사와 더불어 산넨자카, 니넨자카 거리가 가장 유명한 장소였다. 


그때도 관광지에 가면 사람은 꽤나 많았다. 당연히 주말이나 공휴일에 방문하면 사람이 훨씬 많았고 그때만 하더라도 서울에서는 명동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많은 외국인 관광 인파를 본 적이 없었기에, 우리보다 앞서가는 관광 선진국으로서 일본을 신기하게 바라보고는 했다. 그렇지만 비교적 한적한 시간대라는 것이 있었다. 특히 주말이 아닌 평일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그럭저럭 다닐 만했다. 적당히 관광객도 있으면서 적당히 현지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즉, 적당히 현지인들도 있었고 현지 문화도 있으면서 동시에 여행을 온 이방인으로서 현지 분위기를 느끼는 낭만이 있었다.


그러나 11년이 지난 지금의 오사카는 조금 달랐다. 특히 도톤보리. 도톤보리의 글리코 상 앞은 항상 사람이 붐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히는 내가 방문했던 가장 늦은 시간은 새벽 1시, 가장 이른 시간은 아침 8시였는데 그 늦은 시간과 이른 시간에도 사람이 많았다. 그러니 주말의 피크 타임에는 오죽하겠는가. 한 번은 토요일 저녁 도톤보리에 갔더니 정말이지 약간은 무섭기까지 했다. 공황장애를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나조차도 그 붐비는 인파 속에서 불안감을 느꼈으니 말이다. 글리코 상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도톤보리의 에비스 다리는 과연 안전한 건지 걱정도 되었다. 이렇게 많은 인파가 동시에 이 다리 위에 있어도 괜찮은 건지, 이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구경하는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과연 일본에서 와서 일본인들의 삶을 체험하는 것이 맞나 싶은 지극히 관광지스러운 것들을, 수많은 관광객들은 맛보고 체험하고 있었다. 치즈케이크가 유명하다고 하면 앞에 줄을 있고, 탕후루가 유명하다고 하면 앞에 줄을 있다. 일본인들은 전혀 쓰지 않을 같은 잡동사니들을 모아둔 기념품 샵은 늘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난바에 가면 막 스무 명 이상씩 줄을 선 가게들을 엄청나게 많이 볼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한 명도 들르지 않을 그 가게를 외국인 관광객들은 그저 블로그에서 맛있다는 홍보만을 보고서 방문한다. 그러고서는 "일본 음식이 어떻네, 오사카 음식이 맛있네 어떻네"를 논한다. 이건 마치 한국에서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4개 국어로 번역된 메뉴판이 있는 한 삼계탕 집에 잔뜩 와 있는 외국인들이, "여기가 한국에서 엄청 유명한 삼계탕 집인가 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정작 한국인들은 그곳에 아무도 가지 않는데 말이다.


한국의 명동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낀 적이 있다. 명동에 가면 일명 '먹자골목'라고 하는, 간단한 포장마차가 쭉 늘어서 있는 거리가 있다. 그곳에서는 각종 소시지니, 회오리감자니, 삼겹살 꼬치니 하는, 한국인들은 잘 먹지 않는 음식들을 잔뜩 팔고 있다. 어묵이나 붕어빵, 떡볶이 같이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도 가끔 팔지만 가격은 우리가 먹는 그 가격은 결코 아니고 맛도 묘하게 다르다. 그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진짜 한국인들은 저런 거 잘 안 먹는데... 한국에 진짜 맛있고 흥미로운 음식들 많은데. 여행 와서 저런 것들만 먹고 마시고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저런 음식을 먹는 나라로 기억하겠구나." 그리고 느낌을 정확히 오사카에서도 똑같이 느꼈다.


여행의 본질은 현지스러운 것을 체험한다는 것에 있다. 사람마다 여행의 취향이 다른 것인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면 할 말은 없겠지만, 여행지에 와서는 최대한 관광지스러운 곳을 피하자는 것의 그동안의 내 나름의 주관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행의 모습은 지극히 관광지 중심의, 그리고 보이는 것 중심의 여행이 되고 있었다. 물론 시간의 한계와 여러 가지 물리적 제약으로 인해 유명한 곳 위주로만 다녀야 하는 상황들이 존재함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여행은 너무나 정형화되고 다양성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시에 이러한 생각이 몰려들면서 처음으로 오사카 한 달 살기에 대해 약간의 회의감이 느껴졌다. 나름 즐겁게 보내려고 큰 마음먹고 온 오사카였고 새로운 경험들을 하루하루 쌓아가고 있었는데, 내가 지내고 있는 이 생활도 지극히 일부 맛보기에 불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일본인들의 생활을 경험하고 싶고, 조금 더 일본인들이 먹는 것을 먹고 싶고, 조금 더 일본인들이 가는 곳을 가고 싶었는데,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 진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현실이 깨달아지는 듯했다. 내가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고 있는 이것들을 가지고 과연 내가 책을 쓸 수 있을까. 아니, 책을 쓸 자격은 있는 것일까 하는 걱정이 앞서 왔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오사카 한 달 살기를 잘하는 것일까. 비록 한 달이지만 이렇게나 알차게 보내고 왔다고 할 정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민이 깊어졌고 생각보다 답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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