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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l 01. 2024

복잡한 관광지는 더 이상 싫어요 - 일일 버스투어

간사이 소도시 여행 (2)


한 도시 또는 지역에 관광객이 너무 심각하게 몰려드는 현상을 '오버 투어리즘'이라고 한다. 이러한 오버 투어리즘은 현지인들의 생활에도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여행을 기대하고 간 관광객에게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현지스러움을 보고자 간 여행에 사람 구경만 실컷 하다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버 투어리즘 현상은 비단 오사카뿐만이 아니었다.



한 달의 오사카 생활의 절반 정도가 넘어가는 4월 말쯤이었다. 오사카에서 이미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하루 정도는 오사카 교외 지역에 버스투어를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는 교토, 나라, 고베 위주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다양하게 조합한 일일 버스투어 상품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 내가 가보지 않은 관광지를 중심으로 된 상품을 하나 골랐다. 나라의 사슴공원과 도다이지, 교토 인근 이온몰에서의 점심 식사, 교토의 후시미 이나리 신사(여우신사), 은각사와 철학의 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넨자카와 청수사를 보는 코스였다. 하루 안에 다섯 개의 장소를 다니는 코스니, 꽤나 빠듯한 일정이었다. 그렇게 아침 일찍 도톤보리에 가서 버스를 타고 나라에 갔다.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



첫 번째 간 곳은 나라의 '사슴공원'과 그곳에 함께 있는 '도다이지', 즉 '동대사(東大寺)'라는 절이었다. 이미 주차장부터 대형버스를 비롯한 차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마침 4월 말은 일본 학생들의 수학여행 기간이라고 했다. 일본의 학생들은 전부 여기에 다 와있는 듯, 교복을 입은 수많은 학생들이 보였다. 관광객들도 정말 많았다. 일본 국내 관광객도 많았고, 나와 같이 해외에서 온 단체 관광객도 정말 많았다. 관광지스러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 상황이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교복을 입고 여행 온 일본의 학생들을 바라보는 일은 또 반가운 일이었다.



"오사카보다는 그래도 사람이 적겠지"라고 생각하고 갔던 나라의 사슴공원과 도다이지는, 아침 10시의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가본 그 어떤 관광지보다도 가장 사람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슴공원 자체도 수백 수천 마리의 사슴이 있는 것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도다이지라는 절은 세계 최대 목조 건물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 있는 불상들은 또 얼마나 큰지, 그 유명세만으로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몰리겠다 싶었다. '나라'는 교토 이전에 일본 최초의 수도이기도 했던 곳이다. 마치 수학여행 시즌에 우리나라 경주에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파가 몰리듯, 나라가 그랬다. 버스투어의 첫 번째 코스였지만, 수많은 인파로 인해 이미 나는 여기서부터 급격히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이온몰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방문한 다음 코스는 '여우신사'로 더 잘 알려진 교토의 '후시미 이나리 신사'다. 여우신사라고 하면 여우를 모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나리 신을 모시는 사자가 여우인 관계로 신사 곳곳에 여우 동상이 많아서 붙여진 별칭이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나온 붉은 기둥의 '도리이'로 유명하기도 한 곳이다. 이 도리이는 매년 수많은 일본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새로 지어지는데, 그 후원금이 너무나도 많아서 이곳은 관광객들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후시미 이나리 근처 주차장에 내리자 역시나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신사까지 올라가는 좁은 길목은 이미 이동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심지어 골목 양쪽에는 '야타이'라고 하는 여러 포장마차가 있어 훨씬 복잡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지, 버스투어 중 이곳에서 허락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도리이가 줄지어 있는 곳에 얼른 가서 기념사진만을 하나 남기고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신사 곳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고 합장을 하며 손을 맞추어 박수 소리를 내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대부분 익숙한 듯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생활 속 깊이 자리 잡은 일본인들의 미신 문화를 눈앞에서 목도한 것.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짧은 후시미 이나리 신사 방문을 마치고 다음으로 간 곳은 은각사와 그 바로 앞에 있는 철학의 길이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를 방문하고 나서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 나는 여기서부터 굳이 모든 관광지에 따라 들어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도다이지와 후시미 이나리 신사에서 엄청난 인파를 만나며 지쳐버려서 더 이상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여우신사를 제외하고는 관광지에 입장할 때마다 매번 입장료를 내야 하는 것도 아까웠다. 실제 구경 시간은 20~30분도 채 되지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버스투어 일행들이 가이드 분을 따라 은각사로 가는 동안 나는 약 40분 뒤의 소집 장소만 확인받고는 철학의 길로 발길을 옮겼다. 은각사로 올라가는 길은 역시나 수많은 인파로 복잡했지만 상대적으로 철학의 길은 훨씬 한산했다.



'철학의 길'은 일본의 유명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사색을 즐겼던 길이라고 해서 유명해진, 은각사 주변의 약 2km 정도 되는 길이다. 좁은 하천을 따라 나름 우거진 나무들이 숲길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에게 주어진 약 30분의 여유로운 산책을 즐겼다. 철학의 길 중간중간에는 예쁜 테라스식 카페들이 곳곳에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러한 카페에는 꼭 서양인들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는 것. 카페뿐만 아니라 철학의 길 자체에 서양인들의 비중이 훨씬 많았다. 결코 이분법적으로 단순히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그리고 100% 다 그런 것은 절대 아니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여행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동양인들은 주로 유명한 데를 몰려다니고 인증샷을 찍는 것이 여행의 주(主)라면, 서양인들은 오히려 사람들이 없고 한적한 곳을 더 즐기는 것 같다. 여유롭게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요새 말로 소위 그 '바이브(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듯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서양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한적한 정보를 찾아서는 자전거도 빌려 타고, 이렇게 좋은 카페에 앉아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인지였다. 나를 비롯한 많은 동양인 관광객들은 무언가에 쫓겨 다니듯 그저 구경 다니기 바쁜데,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고 있는 서양인들을 보며 나의 여행 스타일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마지막 코스는 '기요미즈데라'라고 불리는 '청수사(淸水寺)', 그리고 청수사로 올라가는 산넨자카와 니넨자카였다. 이번 버스투어의 하이라이트이자, 교토 여행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청수사에는 몇 차례 와본 적이 있지만 전부 대중교통을 통해서만 왔지, 버스로 온 적은 없었다. 버스로 방문하는 청수사는 주차장에 들어가는 길부터 험난했다. 좁디좁은 길에 전봇대까지 갓길을 가로막고 있어 쌍방 일차선 도로이지만 차가 한 대씩밖에 지나갈 수 없었다. 전봇대가 길을 막고 있는 그러한 상황이 한 번도 아니고 세네 차례는 되었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거리를 약 30분 정도 버스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겨우 주차장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청수사로 올라가는 산넨자카 골목에서 나는 다시 한번 크게 놀랐다. 산넨자카를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2016년만 하더라도 그때도 사람도 많고 북적였지만 나름 그래도 산넨자카만의 그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결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아기자기한 맛을 느끼기는커녕 사람들에 밀려 아예 일보 전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이러다 무슨 사고가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거리만의 예쁜 느낌, 그리고 일본의 전통스러운 상가 거리에서 느껴지는 그러한 낭만이 완전히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마도 다들 이런 줄 모르고 이곳에 온 것이겠지. 사람 구경밖에 할 것 없는 이러한 여행을 우리는 대체 왜 하는 것일까. 이렇게나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곳에서, 전혀 일본스럽지 않은 관광 상품들을 구입하고 먹는 이러한 것들이 과연 여행일까 싶었다. 현지인들은 아무도 없는, 현지인들의 삶은 전혀 보이지 않는 이러한 길거리를 우리는 대체 왜 걷는 것일까. 이게 과연 여행인 것일까. 적어도 나는 다시는 이곳에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에는 들어가지 못한 청수사는 한 번은 들어가 봐야지 않겠냐는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며 힘겹게 산넨자카 언덕을 올랐다.



청수사 앞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굳이 사람이 바글거리는 이 절에 들어가야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여행을 오기도 했지만 취재하러 오기도 하지 않았는가. 이 복잡함을 직접 느끼고 사진에 담고 취재하는 것 또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여행으로 왔다면 저번처럼 또 들어가지 않았겠지만 여행 작가로 온 이상 들어가서 현장을 살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청수사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은 딱 두 곳이었다. 청수사 본당, 그리고 그 청수사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건물. 경치가 가장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다들 그곳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셀카를 찍고 서로를 찍어주기 바빠 보였다. 나는 내 사진을 찍기보다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낯선 곳에 와서 새로운 것을 보는 게 즐거운 일이겠지.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곳에 오래 있기는 힘들었다. 너무나도 많은 인파에 거의 넋이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청수사 건물을 지나서는 산속의 숲길이 이어졌다. 오히려 이 숲길을 걸으며 잠시 넋이 나갈 것 같던 내 정신을 붙잡았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보다는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확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전에 갔던 철학의 길도 그랬고 여기 청수사 뒤편의 숲길도 그랬다. 나조차도 이런 내가 다소 낯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의 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많은 곳을 정말로 좋아했다. 일부로 주말이면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에 나가고, 여행을 가서도 꼭 사람들이 많은 거리는 한 번은 다녀와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곳에 가는 것이 힘들었다. 대신 한적한 곳이 좋고 혼자 이런저런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좋아졌다.



이번 '한 달의 오사카'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조금 더 확실해졌다. 지난 3주간 열심히 오사카 곳곳을 탐험하며 새로운 것들을 충분히 경험하고 다녔기에 이제는 오사카 밖으로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기존 오사카 하면 떠오르는 '교토', '나라', '고베'는 더 이상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남들이 잘 가보지 못한 교외 지역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일본 소도시 여행을 마음먹게 된 것이다.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박함과 여유로움을 소도시에 가서 느끼고 싶었다. 오사카 여행을 오는 사람들에게 교토, 나라, 고베만 가지 말라고, 다른 좋은 곳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한 번씩은 다녀와서 그 느낌을 알려줘야겠다고 결심했다.


하루 5개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일 버스투어는 여러 가지로 나에게 남긴 것이 많았다. 관광지 그 자체로는 나에게는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 많고 복잡한 관광지를 둘러보면서 느낀 이 날의 감정은 여행에 대한 내 생각을 많이 바꿔 놓았다. 물론 세상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여행이 존재하고 각자의 취향이 제각기 다른 것이겠지만, 적어도 내 취향의 여행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고해질 수 있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주요 유명 여행지만 찍고 다니는 여행 스타일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도, 관광지에 가서 그것들을 충분히 여유 있게 둘러볼 여유도 없이 금세 주차장으로 다시 모여야 하는 빠듯한 여행 일정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게 된 일이었다. 대신 나는 한가롭게 산책을 하고, 그렇게 걷다가 또 들어가고 싶은 가게에 갑자기 들어가고, 경치가 좋은 곳에는 무턱대로 벤치에 앉아 풍경을 즐기고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여행 기간 동안 우리는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해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보여주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지 한 곳이라도 더 가야 한다는 강박처럼, 인생에 하나라도 더 이루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라는 강박에 매여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여행사의 가이드처럼 인생의 가이드가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사는 것이 꽤 괜찮게 잘 사는 것이라는 가이드 말이다. 그러나 때로는 가이드가 제시한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해 보는 것이 내 삶을 훨씬 풍요롭게 한다. 사람들이 많은 은각사를 가지 않고 철학의 길을 만났을 때 만났던 여유처럼, 너무나도 복잡한 청수사 뒤에는 여유로운 숲길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연히 앉은 벤치에서 느낀 여유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 삶 역시 이것저것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곳곳에서 우연히 만나는 인생의 여유 지점들을 충분히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침부터 좋았던 날씨는 감사하게도 하루종일 좋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도톤보리에 돌아왔을 때 도톤보리 강 위로 너무나도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6만 원의 일일 버스투어를 타고 하루종일 보았던 그 어떤 관광지보다도, 아침과 저녁에 본 도톤보리 강의 풍경이 가장 아름다웠다. 어쩌면 진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 찬란한 노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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