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동생이 변에서 피가 보인다고 했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었고 대부분들 가지고 있는 치질이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때까지 그 어떤 암에 대한 관심도, 정보도 없었던 내가 동생의 증상을 듣고서 암을 직감한 것은 왜였을까? 불행히도 직감은 틀리지 않았고 임신으로 인해서 단순 변비있줄 알았던 탓인지 암의 발견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장암 4기. 임신으로 인한 단순 변비인 줄 알았던 암은 아이와 함께 동생의 몸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동생은 아이를 출산하고 백일 만에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 급하게 암수술을 했고, 젖을 얼마 먹이지도 못하고 항암을 시작했다. 돌은커녕 6개월이 지나지도 않은 핏덩이를 두고 서울 병원을 오가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2주, 혹은 3주에 한번 항암을 하러 병원에 가는 길은 희망을 가지고 올라가서 고통과 통증을 가지고 내려오는 패턴으로 굳어졌다. 항암은 횟수가 늘어갈수록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어다. 30대 중반의 젊었던 동생은 초반에는 잘 견디는 듯했고, 회복시간도 빨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시간도 길어 졌고 어느 시기가 되어서는 다 회복하지도 못하고 다음사이클 항암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통증이 있는 기간에는 시댁에서 맡아주셨고, 동생이 회복되고 나서는 동생이 데리고 와서 키웠다.
그 힘든 몸을 가지고도 동생은 아이를 끔찍이도 챙겼다. 주말마다 놀러를 다녔고 예쁜 옷들을 입혔다. 어디든 아이와 함께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항암기간에 제부와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했다. 마음 둘 곳 없었던 동생은 그 마음을 아이에게 다 쏟았던 것이다.
뜨거웠던 , 40도가 넘던 그해 여름에 동생은 제부와 싸우고 혼자 항암을 가러 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그때서야 사이가 나빠져 있었음을 알았다. 더 이상 그 집에 있지 말고 우리 집에서 항암 하며 지내면 안 되겠냐고 다그쳤지만 동생은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아이 때문에. 아이는 동생에게 자신이 가진 전부였다.
동생은 스스로도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혼자의 힘으로 어딘가를 갈 수 있을 체력이 다되어 간다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아이를 데리고 부산의 호텔로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결혼하기 전에도 혼자서 그렇게 여행 다니기를 좋아했던 동생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떠난 그날의 여행이 삶의 마지막의 여행이 되었다.
나이가 젊었던 만큼 병은 빠르게 악화되었고, 암세포는 동생을 집어삼켰다. 얼마 안돼서 동생은 간성 혼수가 왔고, 병원에 입원한 지 3일 만에 혼수상태에 접어들었다. 나는 매일 병원에 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 내가 병원에 가서 의식이 없는 앙상하고 차가운 동생의 손을 붙잡고 미안했다고, 그곳에서는 행복하라고 작별인사를 한 지 4시간 후 동생은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둔 채 떠났다.
내가 이사한 시골은 마당에서 동생의 잠은 곳이 있는 산이 보이는 곳이다. 운명이란 참으로 짓궂게도 동생이 잠들어 있는 곳을 아이 아침마다 등원해 주는 길을 지나도록 만들었다. 나는 동생의 1주기 이후 단 한 번도 동생이 잠든 곳에 가지 못했다. 2주년이 되어서야 이제는 진짜 세상에 없음을 실감했고, 나는 손목을 그었다. 나 역시도 암이었지만 나는 살아남았고 동생은 떠나야만 했다는 것이 내겐 살아남은 것 자체가 죄책감을 갖게 만들었다. 동생이 살아남았어야 했다. 사람들을 더 잘 챙기고, 사람들을 나보다 더 사랑할 줄 아는 동생이 살아남았어야 했다.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던 동생이 살아남았어야 했다. 내가 아니라.
내가 가는 곳 모든 곳이 동생과 함께 했던 장소이다. 같이 햄버거를 먹고 같이 커피를 마시고 가끔 싸우기도 했으며, 산책을 하고 아이 둘과 함께 거닐었던. 그 모든 곳에 나만 있고 동생은 없다. 어쩌면 나는 이 장소들을 계속 다녀야 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동생을 한쪽으로 밀쳐놓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생에 대한 글을 쓰기까지, 생각을 하기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한참을 울며 썼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을 정도는 된 것 같다. 동생 생각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지만 생각 자체를 피하거나 애써 지우려 하지 않는다.
라라랜드라는 영화를 좋아해서 시작할 때쯤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면 끝날 때쯤 취하게 된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인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사람들이 많이 하는 실수이지만 곁에 있을 때 우리는 소중함을 망각한다. 영원히 곁에 있을 것처럼. 세상에 영원한 건 없고, 곁에 있을 때 소중함을 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그리고는 후회한다. 있을 때 잘할걸. 그것만큼 미련한 후회도 없지만, 인간은 역시나 망각의 동물. 같은 패턴을 되풀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