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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Aug 30. 2023

The shape of love.

사랑의 형태



    남편이 입원한 병원은 면회조차 금지된 간호통합 병동이다. 나는, 아이와 함께 2주간을 시골집에서 지내고 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아이가 등원한 동안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 씻기고 먹이고 재운다. 남편이 없던 첫 주말은 아이와 함께 꽃구경을 다녀왔다. 그리고는 다시 평일 일상을 보내고 있다.



   수술은 잘되었고, 남편은 회복기를 거치고 있다. 30년 동안 담배를 피웠기에 수술직후부터 시작된 강제금연에 몹시 예민해져 있었다. 금단증상으로 잠을 잘 자지 못했고 안절부절못해했다. 병원에 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마음이 편할 듯싶었지만 이상하게 뭔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편의 몸 걱정이 아니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


   

  일요일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다. 사람이 별로 없었고, 걷기 시작한 남편을 병원의 정원에서 만났다.



    이런저런 얘긴를 하다가 다투기 시작했고 급기야  우리는 심하게 싸웠다. 일 년 중 한두 번, 극하게 화내는 날이 오늘이었다. 나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고 수술하고 이틀밖에 안 지난  남편에게 나의 분노를 쏟아냈다. 당신을 최우선으로 하고 살아왔는데, 얼마나 더 나를 뒷전으로 하고 당신에게 배려해야 하냐고. 내가 힘들고 외롭고 한 것들은 안 보이냐고. 어째서 당신은 당신만을 생각하냐고. 그렇게 분노를 쏟아내고 아이를 데리고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내 삶은 무엇 있을까? 나는 남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늘 고민했고, 내가 힘들고 아픔에도 남편을 우선순위로 두며 살았던 지난 십오 년. 내가 나의 남편에게 원한 건 딱 하나.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남편이 나에게 말로 나를 때렸을 때에도, 시댁에서도 나를 어처구니없고 모질게 대했을 때에도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사랑만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나는 신부님께서 찾아갔다. 마음이 차갑게 식었노라고. 배려를 너무도 당연하게 되어버린 남편에게 더 이상 사랑받기를 포기하게 되었노라고. 이제는  그 어떤 애정도 사랑도 갈구하지 않게 되었노라고.


  신부님은 내 글을 처음부터 계속 읽고 계셨는데, 그때 신부님은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 꼭 내가 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일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 성공하지만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다고. 내가 원하는 것을 쏟는다고 상대방이 그걸 원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비효율 적이라고. 내가 쏟아부으면 부을수록 나의 에너지는 바닥이 난다고. 그런 생각이 드셨다고 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걱정이 되셨다고 했다.



  그리고 신부님은, 다른 사람에게는 잘하지 않는 이야기 라면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유년시절 애정결핍을 남편에게서 찾으려 했던 그, 차게 식었던 사랑이라는 형태에 대해서. 각자가 원하는 사랑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니 타인에게서 찾기 힘들다고. 그러니 자신 안에서 그 사랑의 형태를 느슨히 할 필요가 있다고. 남편이 내게 사랑을 주었으나 내가 원하는 사랑의 형태가 달라서 못 받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조율이 필요하다고.




 덧붙여 나에게 더 이상 에너지가 빠져나갈 구멍을 막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셨다. 더 이상 일을 하듯 인간관계를 하지 말라고도. 내가 문제를 해결하듯 일을 하듯 내가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인간관계를 하지 말라는 조언을 주셨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가만히 두기를 권하셨다. 인관관계에서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고. 그리고는 건강회복을 최우선으로 두고 에너지를 채우라고 해졌다. 지금의 내가  잘못 먹고, 잘 못 자고 하는 상태에 대해서 걱정하시며. 몸이 최고의 컨디션이 되었을 때도 마음이 차게 식었다면 그건 정말 그런 거라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된다고.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랑의 형태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왜 나는 남편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 없었을까? 그가 주었던 사랑에 형태가 나와 맞지 않아서 나의 마음에 닿지 않았던 것일까? 그래서 늘 목마름을 느꼈고,  좀 더 잘하면 그가 더 나를 사랑하겠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닌, 서로의 형태를 몰랐기 때문인 걸까? 결혼생활 15년. 연애기간까지 합하면 거의 20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우린 서로가 원하는 사랑의 형태를 모르는 걸까? 내가 그에게 준 사랑의 형태는 그에게 맞지 않았던 걸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끔 내가 먼저 하는 포옹이 전부였을 뿐. 그 어떠한 사랑의 표현도 느껴본 적이 없다. 적어도 5년 이상은.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의 기억을 끄집어내는데
너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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