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어른들의 칭찬이 듣기 좋았다. 고만고만한, 비슷한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특별해지고 싶었다. 모든 친구들도 같은 마음이었겠지만, 나는 그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머리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재수가 없다며 뒤로가기를 누를 수도 있겠지만,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같이 떠들어도 나는 시험을 볼 때마다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래서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선생님들은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구분했다. 나는 그들에게 '모범생'으로 불렸다. 단지 공부를 잘하고,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이다. 초중고 학생은 단지 순수함만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나이인데, 그 앞날이 유망한 아이들을 성적으로 구분한다는 게 말이다. 뭐, 덕분에 나는 학교에서만큼은 '특별한' 아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활도 오래가지 않았다. 성적만으로 특별함을 인정받는 시기는 딱, 고등학교 때까지였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외모, 성적, 그리고 집안까지 갖추어야 했다. 인천의 촌구석에서 나고 자란 나에 비하면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처음으로 나온 서울, 그리고 사회에서 배운 것은 패배감이었다. 나보다 잘난, 특별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그 패배감. 완벽을 추구하던 나는 그 사실을 체득한 순간 모든 것에서 손을 놓았다. 학교도 결강하기 일쑤였으며 수업시간에 일어나 카페를 간다든지, 교수님께 눈에 띌 수 있는 행동들을 행했다.
이렇게 나는, 문제아가 됨으로써 특별해지는 방법을 택했다. 뒤늦게 찾아온 반항기였다.
늦은 반항기의 여운은 길었다. 대학교에서의 반항의 결과는 처참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학점은 바닥이었고 교수님과의 사이는 멀어질 대로 멀어져 있었다. 본인이 저지른 일이니 주워 담아야 하는 게 맞다지만 주워 담을 용기도 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공무원'을 할 거니까 대학생활을 중요하지 않다며 나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결국 공무원이 된 필자는 누구보다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4년차까지는 내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어떻게든 남들 눈에 띄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출퇴근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주식 공부도 하고, 그 시간 내에 운동도 하려 했다. 회사일만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에 이것저것 모든 취미를 건드리며 완벽을 추구하려 하니 얼마나 삶이 각박했겠는가.
결국 그 완벽을 위해 했던 전투적인 노력들은 나를 무너뜨렸다. 건강도, 정신도 온전한 것이 없었다. 30살이 된 현재의 나는 10대의 내가 되고 싶던 나였나. 그닥 그런 것 같지 않다. 결국 내가 했던 모든 노력들은, 그저 놓여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허우적댔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소소한 노력들조차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이유? 당연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른 채, 평범한 나를 떨쳐내려 했었으니까 말이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남들에게 특별하게 비쳐서 뭐가 달라질까? 저 사람들은 한순간 감탄하고 나에 대한 감상을 끝낼 텐데. 그 사람들의 감탄을 위해 내가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5년차가 되니, 난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인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은 30살이 되어 그런 걸까. 남들에게 특별하다고 인정받는 삶보다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내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