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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Sep 12. 2024

<Cowboy Bebop>


오리지널 25화의 이 장면에서 페이는 스파이크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린다. 결국, 다음 시퀀스에서 그 말을 해버리는데, 그건 스파이크를 비극적 운명으로 끌고 가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카우보이 비밥>은 스파이크의 운명에 관한 작품이라, 페이가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결말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페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망설이는 장면으로 끝을 맺으면 어땠을까라고 종종 생각한다. 최소한 그녀가 후회하진 않을 테니까.


오래전에 일렁이었던 파도가 지금 한꺼번에 밀려온 것 같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결정했던 일들은 전부 실패로 끝나버렸고, 고민의 시간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전부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대개 그렇듯이, 이런 일들은 온갖 불행과 안 좋은 일들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그건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게 만든다. 그러자 잊고 싶은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게다가 이곳은 과거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딜 가나 바보 같은 내가 서 있고 기억하기 싫은 일들과 흔적들로 가득하다. 다들 그런 거라고 말하지만 그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가져보라고 이야기하는데 어쩌다 이렇게 가식적인 인간이 되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고 단지 내가 잘못했을 뿐이다. 반복된 잘못을 피하기 위해 적고 기록했던 습관은 후회를 각인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언젠가 이 모습을 후회할 날이 오겠지. 후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역시 (하고 싶은 또는 그 무엇이든)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스파이크도 과거에 갇힌 인물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는 시간의 반복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있을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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