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바이브 그 자체 북창동 '송옥'
나는 사실 입맛이 예민한 편이 아니다. 아무거나 다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고, 우스개 소리로 '한 달 내내 똑같은 메뉴만 먹어도 살 수 있다' 이야기할 정도로 입맛에 둔감하다. 그러다 보니 음식의 '맛' 자체보다는 누구랑 먹었는지, 어떤 상황에서 먹었는지,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와 같은 것들로 맛있었던 음식을 떠올리고, 맛집을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OOO 5대 짬뽕, OOO 3대 빵집, OO골목 맛집 순위' 같은 세간의 이야기들을 섬세한 입맛으로 평가할 재량이 없다. 그저 그 가게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어서, 그 음식을 먹었던 날씨가 너무 기억에 남아서, 같이 식사했던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내 마음대로 순위가 정해질 뿐이다.
광화문~시청 주변으로는 유명한 '서울 3대 메밀국수' 집들이 있다. 광화문 <미진>, 시청 <유림면>, 북창동 <송옥>. 모두 여름이면 늘 대기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로 오랫동안 인기가 많은 집들인데, 첫 회사가 그 주변이라 세 곳 모두 자주 찾았던 맛집들이다. '그중에서 어느 집이 제일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수많은 맛집 블로거들의 리뷰들이 있지만, 나에게는 북창동 <송옥>이 최고의 메밀국숫집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선배들을 따라 처음 찾아왔던 이 집을 그 뒤로도 여러 번 왔었다. 이 집 메밀국수가 너무 먹고 싶었던 날에는 혼자서 찾아가기도 했었다. 특히 주전자로 내어주시던 시원한 육수가 너무 맛있었는데, 육수를 계속 리필해 먹을 정도로 다른 곳이랑 다른 진한 맛의 육수가 이 집의 매력이었다. 뿐만 아니라 가게의 분위기도 너무 좋아했다. 이 동네 오래된 식당들이 다 그렇듯, 매우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조그마한 2층이 나오는데, 'Goldstar' 마크가 붙어 있는 오래된 에어컨 옆에서, 좁은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메밀국수를 먹던 장면은 마치 부모님 세대의 기억처럼 내 머릿속에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거기에 손글씨로 쓰인 메뉴판과 오래된 집기들, 전기히터들, 어느 것 하나 강북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사실 유명세에 비해 이처럼 엄청 작은 집이었기에, 여름날 점심시간에는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거의 먹기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다른 계절에 더 자주 찾아갔던 맛집이었다.
'내가 생각보다 <송옥>의 오래된 분위기를 정말 좋아하는구나'라고 느꼈던 건, 언젠가 신사역 가로수길 초입에 들어선 2호점을 찾았을 때였다. 분명 음식 맛 자체도 본점이랑 차이가 났지만,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2호점은 내가 알던 <송옥>의 느낌이 아니었다. 첫 방문에 크게 실망하고 다시 찾지 않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비슷했는지 2호점은 금방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서울 3대 메밀국수' 집들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는 곳 또한 이 집이었다. 다른 집들이 모두 새로 지어진 깔끔한 건물에 입주해 있는 반면에, <송옥>은 북창동의 거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먹자골목의 오래된 노포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집을 더 특별하게 좋아했고,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했던 것 같다. 당연히 지금의 아내와도 연애하던 시절에 두어 번 왔었는데, 함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난 달 주말에 아이의 생일을 맞아 남대문 시장 아동복 거리를 찾았다. 주차를 하고 셋이 길을 걷다가 오랜만에 <송옥>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식사 시간도 아니었고, 아직은 날이 많이 추운 계절이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메밀국수를 먹고 가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식당은, 가격과 깔끔해진 메뉴판을 제외하곤, 대부분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풍경에 예전 생각이 많이 났고, 가끔씩 혼자 메밀국수를 먹으러 오던 집을 아이와 함께 셋이 다시 찾게 되니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항상 메밀국수를 먹겠다고 찾았다가, 이 집의 우동도 맛있었다는 생각에, 주문하기 전에 늘 고민하곤 했었는데, 식구가 세 명으로 늘어나다 보니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우동과 메밀국수를 모두 시켜서 맛있게 나눠 먹는데, 와이프가 문득 한 마디를 건넸다.
"예전에는 이렇게 생긴 주전자에 육수를 가득 주셨는데, 이제 한 그릇 밖에 안 주시네?"
"맞아, 그랬었지~ 너도 기억하는구나"
이렇게 옛날이야기를 하며, 추운 날씨지만 여전히 맛있었던 메밀국수를 나눠 먹고 있자니, 이 기억 또한 무척 오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