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하는 외식의 맛
얼마 전, 엄마와 돼지갈비를 먹었다. 계속 병원을 다니시며 투병 중이시다 보니 드시는 것에 제약이 많았는데, 마침 의사 선생님이 고기를 좀 드시라 했고, 엄마도 모처럼 그러고 싶다고 하셔서 퇴원 후 가까운 곳에 있는 고깃집을 찾았다. 오랜만에 엄마와 양념돼지갈비를 숯불에 구워 먹다 보니 어렸을 적 생각이 많이 났다. "맛있는 고기를 먹으러 가자"라고 하면, 투 플러스 소고기 등심도 있고, 잘 구워진 스테이크도 있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숙성된 삼겹살도 있겠지만, 달달한 양념돼지갈비만의 매력도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잘 양념된 돼지갈비가 숯불에 구워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나는데, 나에겐 '엄마, 아빠 따라서 외식하는 날'의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그런 음식이다.
대전에서 유년시절을 보낼 때, 우리 가족에게 뭔가 축하할 일이 생기고,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인테리어가 고풍스러운 '가든'스타일의 고깃집을 찾곤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곳은 <포석정>이라는 이름의 숯불구이 전문점이었는데, 우리의 메인메뉴는 단연 양념돼지갈비였다. 개인적으로 정육점에서 냉동 삼겹살을 사 와, 집에서 후라이팬에 구워 먹는 '로스구이'도 좋아했지만, <포석정>에서 먹는 달콤한 양념돼지갈비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그야말로 외식의 맛이었다. 고깃집에는 다른 메뉴들도 많았지만 양념된 돼지갈비에 비하면 다들 너무 어른의 맛이었다. 달달한 양념 맛에 끝도 없이 계속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던 양념돼지갈비를 우리 가족은 늘 인원수 보다 많은 양을 시켜 먹곤 했고, 나 역시 밥을 몇 공기씩 비우곤 했다.
하지만, 그 달달했던 돼지갈비 양념의 맛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너무 아이들 입맛'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그 <포석정>이라는 식당도 사라졌다. 큰 불이 나서 식당이 문을 닫았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양한 소고기 부위를 숯불에 구워 먹는 맛을 알게 되고, 잘 숙성된 맛있는 생삼겹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양념돼지갈비를 자주 주문하지 않게 되었다. 한창 고깃집에 술 마시러 다니던 대학 시절에는 양념돼지갈비를 먹은 기억이 많지 않다. 오히려 누가 "돼지갈비 시킬까?" 이야기하면, "너무 달지 않아? 생고기 먹고 부족하면 나중에 시키자~"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어쩌다 먹게 되어도 그다지 인상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적당히 저렴하고, 적당히 맛있고.. 그렇게 오랫동안 '돼지갈비는 어린이 음식'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좀 멀어진 음식이 되었다.
그렇게 멀어진 양념돼지갈비를 다시 만나게 된 건, 다시 '어린이' 때문이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고 모든 식생활이 일단 아이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맞춰지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의 식생활은 많이 변했다. 어디를 가도 아이가 먹을 게 있는지, 아이 먹을 건 어떻게 챙겨야 할지가 엄마 머릿속에선 가장 우선이었다. 아이와 처음 고깃집을 다닐 때도 어떤 걸 먹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무난한 돼지갈비를 선택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중에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찾았던 고깃집은 일산에서 가까운 <송추가마골>이다. 처음에 갈비탕을 먹었을 때, 아이가 맛있게 잘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나중에 오면 구운 고기도 먹어보기로 했었다. 사실 <송추가마골>에는 '돼지갈비'라는 메뉴는 없다. '한돈명품구이'라는 메뉴가 내가 기억하는 양념돼지갈비의 맛인데, 기존에 '돼지갈비'라는 메뉴 자체가 갈비가 아닌 다른 부위이고, 식용 접착제로 갈비뼈를 붙여왔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오히려 이 식당의 표기가 더 정확한 표현이지 않나 싶다. 그렇게 오랜만에 먹게 된 양념된 '돼지갈비'는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그 맛의 절반 이상은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아이의 몫이었다.
어른들이 항상 "아이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고 이야기하셨었는데, 정말이지 아이가 맛있게 먹는 음식은 내 입맛에도 너무 맛있게 느껴졌다. 아이가 맛있게 먹으면 그 집이 우리 집 맛집인 거고, 아이가 좋아하면 그 집이 우리 집 단골집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그 맛을 즐기게 된 '양념돼지갈비'는 내 유년시절의 기억과 아이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더해져서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대표 외식 메뉴가 되었다. 특히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송추가마골>의 '한돈명품구이'는 다른 어떤 비싼 고깃집 메뉴보다 각별한 메뉴가 되었다. 다른 곳에서 고기를 먹을 때보다 아이 입에 들어가는 속도부터 다른 그 집을 여러 차례 다시 찾게 되었고, 매번 든든히 먹고 주변을 산책하는 일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여유로운 주말의 어떤 상징 같았다.
그런 각별한 기억에 이번에 엄마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셨을 때도, "그럼 돼지갈비 드시러 가실래요?"라는 말을 꺼내게 되었다. 병원 근처에 있던 <송추가마골> 지점을 찾아 '한돈명품구이'를 시켰다. "여기 아이랑 자주 와서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엄마도 좋아하실 거다" 이야기하며, 내가 어렸을 적 이야기들도 같이 나눴다. 오랜만에 돼지갈비를 드셔보신다는 엄마는 너무나 맛있게 고기를 드셨다.
"몇 년 간 먹은 고기 중에 제일 맛있다~"
이렇게 극찬을 하시면서 드셨지만, 내가 아이와 같이 먹는 양념돼지갈비가 너무 맛있었듯이, 엄마 역시 오랜만에 아들과 같이 하는 식사는 적잖이 맛보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맛있으셨으면 더 건강해지셔서 다음에 병원 올 때 또 와요"
건강하게 맛있게 드실 수만 있다면야,
얼마든지 엄마와 다시 먹고 싶었던 '양념돼지갈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