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d Jun 10. 2020

문득 발견한 '편지 쓰기'라는 글자

♪부러진 손가락- Just For Tonight

Hey you Hey you
오늘 밤만 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
사는 게 나만 힘든지 들어주세요
오늘 밤만 오늘 밤만



♪부러진 손가락- Just For Tonight


새롭게 만든 회사 메일 계정을 쓴 지 그렇게 오래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메일 용량이 꽉 찼다. 지난번 쓰던 계정은 유료로 사용해서 몇만 통의 안 읽은 메일, 그것도 스팸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업무 메일들이 그득 했었는데 이 계정에도 벌써 육천 통 정도의 이야기들이 쌓였다. 보통 이 즈음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은 얼추 나와 비슷할 것 같지만 스치듯 메일 제목만 보아도 어떤 이야기일지, 혹은 내가 눌러서 확인해야 할 내용인지 알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놓쳤다 한들, 상대방이 급하다면 보통은 확인을 요청하는 문자나 전화가 온다. 보통 대화와 관계란 아쉬운 쪽의 마음이 조급한 편이다. 






어제 새벽엔 메일을 써야 할 일이 조금 있었다. 열어봐야 할 메일도 있었고, 상투적인 언어로 꾸민 메일 답변을 해야 할 것도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메일을 쓰려다가 문득 이질감이라고 해야 하나, 어색한 기분이 들어 버튼을 보니 '편지 쓰기'라는 버튼이 있었다. 잠깐 멈칫하고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왜 이제야 이 단어를 발견했을까. 


편지(片紙)라는 단어에는 종이라는 뜻이 담겨있듯이, 으레 손으로 정성스레 전하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언젠가의 펜팔 친구에게 메일을 쓰며 '편지예요.'라고 보내니 신기하다고, 좀 더 달라 보인다는 답신을 받은 기억이 있다. 물론 내가 아닌 화면 속 메일 이야기다. 






여하튼 이 '편지'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할 때의 나는 보통 아쉬운 쪽이다. 조급한 쪽에 속한다. 아마 내 편지를 받는 누군가는 하나의 여흥과도 같을지 모르지만, 개인으로의 나는 이 편지를 빼면 딱히 소리 내어 말할 일이 없는 사람인지라, 나도 모르게 '편지함'을 열어보고, 애먼 광고 메일 제목들만 눌러본다. 그렇게 개인 메일 계정에는 안 읽은 편지가 없다.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기대 같은 것을 하지 말라며, 오늘도 허풍을 떨었으면서 그렇게나마 기대를 하고 또 실망을 한다. 그리고 체념을 하다 보면 그렇게 한 층 더 마음이 두터워지고 또 가벼워진다. 무언가를 내려놓는 것은 의외로 잃을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잃어도 괜찮은 삶이 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삶을 이겨나가는 힘을 준다. 






그렇게 오늘도 몇십 통의 업무 메일을 제목만 훑듯이 지나쳤고, 한 통의 편지가 올까 싶어 몇 번이고 틈날 때마다 두리번거렸던 하루였다. 카톡 같은 메신저일지도 모르겠다. 카톡이 한 통 왔고, 퇴근했냐는 동네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아마 그 시간에 동네에 있는 건 불가능할 거라며 웃음 표시를 여러 개 겹쳐 보냈다. 이렇듯 누군가에게 닿는 것은 나에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편지가 왔나. 오려나. 사실은 편지 같은 것 말고 하루 즈음은 소리 내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프다, 고 이렇게나마 글에 적어보았다. 소리도 없이, 주변엔 아무도 없다. 불을 꺼야지.  

작가의 이전글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