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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Jun 05. 2020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빈첸 - 허물

의심부터 하는 놈 그게 바로 나야
호의 안에 수작 찾는 놈이 바로 나야
사람 좋음 호구되는 거지
곤두세워진 날카로운
내 신경이 내 정신 되려 망쳐


♪빈첸 - 허물



얼마 전 미루고 미루던 <인간실격>을 다시 읽었다. 도무지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요조'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미룬 것 치고는 싱겁게 하루 만에 끝났다. 요조 자신도 모르게 삶의 끝으로 치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뜬금없이 그 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무책임한 모습에 분노했다. 그들은 그가 망가지는 것 따위는 사실 알 바 아니었을 테다. 말로는 걱정을 하지만, 사랑한다 표현되어 있었지만 글자 너머 그려지는 그들의 표정이 보였다. 말 그대로 알바 아니라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현실에서 많이 봐왔기에 안다. 사람은 보통 결국 자신이 중요한 것으로 태어난 존재들이다.






요조가 그런 인간네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듯이, 나는 도무지 사람을 믿기가 힘들다. 단순한 신뢰의 문제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다. 차라리 덮어놓고 믿으라면 그건 쉬운 일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인간관계라는 것들은 보통 아픈 것 투성이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은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라는 의심부터 하게 된다. 기대라도 하게 되는 날에는 큰일이다.


얼마 전에도 기대를 잠깐 했다가 지레 겁을 먹고 접었다. 저 사람은 분명 나를 아프게 할 거라며.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은 나를 아프게 했다. 역시 믿지 않기를 잘했다며 혼자 아파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그 사람은 이런 지금 내 기분 따위, 알 바가 아닐 테다.






사회생활은 어찌어찌해가고 있는데도, 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려 할 때마다 이렇게 솟아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어 요조는 이십 대에 백발성성한 노화를 맞이했듯이 나는 요즘 들어 심장이 죄이는 듯한, 아니 죄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다음 날에 대한 두려움 따위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 한편이 쿡쿡거린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병의 원인을 알 것만 같았다. 보통은 위의 마음들이 심히 차오를 때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오늘도 몇 번이고 타인에게 믿는다는 단어를 말했다. 요조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익살스럽게 살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배운 방법이다. 제법 어색하지 않게 믿는다는 말을 뱉을 수 있게 되어서 얼마 전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안부에 잘 지낸다고 답했다.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읽힐지 모르고, 사실 그 질문을 한 사람은 소설 속 주인공 주변의 누군가들처럼 나에 대해 알 바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덜 아프다. 어떤 부분이 부족한 사람의 잘 지내는 방법이다. 역시나 나는 도무지 사람을 믿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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