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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ug 10. 2020

행복하기 위해선 열심히 사세요.

♪東京事変 - 空が鳴っている

지금이라면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거야
위험한 다리라면 더욱 건너고 싶어
신이시여 부탁해요.
끝내지 말아주세요.



♪東京事変(동경사변) - 하늘이 울리고 있어


나는 지금부터 두서가 없는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뭐라도 쓰고 싶은 기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은, 요즘은 무엇을 써도 안 좋은 이야기만 나올 것 같아 글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그다지 좋은 삶을 살지도 못했기에, 글을 또 멈추었다. 비가 오면 유독 여기저기 아픈 몸뚱이라 차마 글 같은 것을 쓸 힘이 없었다는 핑계도 곁들여서. 이렇게 장마가 길었던 때가 있었나. 그래도 무엇이라끄적이고픈 마음에 주제도 없이 쓰고 있는 이야기다.


여기에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게으르게 쓰고 있지만, 또 글을 쓴다는 행위만큼 삶에서 꾸준한 것도 드물다. 내가 스스로 만든 글을 보고 스스로 가라앉기 싫어 쓰기 싫어지다가도 또 꾸역꾸역 쓰게 되는 것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 그렇다고 해서 내 글이 매력적이라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그저 '글을 쓰는 행위'에 의미를 두고 있다. 며칠 전에는 손목에 자해를 한 사람의 인증을 보았다. 꽤 오래 동안 쳐다보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비슷한 기분이면서도 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떠올렸다. 둘 다 용기가 없어하지 못했다. 내 글은 보통 그런 것들이 나온다.   






그래도 이렇게 용기를 내어 어떤 글을 써볼까 했으니,

오랜만에 희망차고 간절한 이야기를 써보자.

연초에 쓰다가 멈춘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추상적 용어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들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읽었던 몇 권의 책에도 행복과 관련된 다양한 표현이 나왔다. 누군가는 창 너머로 넘어오는 햇살의 각도에서 행복을 찾기도 했고, 누군가는 4050대의 행복을 위한 30대의 열정을 곧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했다. 이렇듯 행복은 사소하기도, 거대하기도 하다. 또,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기도 하다. 물론, 나와 같은 사람은 '없다' 고 표현하기도 한다마는, 사실은 아마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다.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다. 소망이 있다니, 그런 의미에서 나는 꽤 축복받은 삶일 테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을 바라진 않겠지. 욕심쟁이야.






그렇게 나는 행복하지 못하지만, 그만큼 바라기에 주변의 사람들보단 행복에 대한 생각을 꽤 많이 했고, 찾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겠지. 물론 기대를 하며 찾으면 안 된다. 행복은 약간 복권과 같은 것이라는, 딱 그 정도의 기대로 찾는다. 지난주와 지지난주에는 연속으로 5등 복권에 당첨되었다. 5천 원. 기대하진 않았다. 5천 원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는 것은 복권에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 저 2주 연속으로 5등 당첨되었어요! 엄청 신기하죠!" 정도의 기쁨이라도 누릴 수 있다.


이런 것처럼 행복이라는 것을 찾고, 얻기 위해서는 어찌 되었든 열심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아마 누구나 한 번 즈음은 들어 봤을 이야기다. 'ㅇㅇ하려면 열심히 해야 해'와 동의어다. 학교에서 1등을 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 직장에서 1등을 하려면 일을 열심히 해야 해. ( 이건 아닐 수도 있다. 다른 것을 열심히 해도 될 수 있지. ) 당장에 행복을 찾기 위해서도 내 주위를 살피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행복은 보기보다 꼭꼭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도 행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난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고, 당연히 열심히 산 이유도 행복하기 위해서다. 다만, 열심히 살아도 행복이 무엇인지 모를 뿐이지. 형체가 없는 것에 형체를 부여하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썼다. 좋은 옷과 신발을 걸치면 행복일까 싶었던 때에는 쉴 새 없이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했고, 멋진 무대에 올라서면 행복일까 싶을 땐 내가 가진 모든 밤을 바치고, 지문이 지워져라 손을 놀렸다. 연애를 하면 행복할까 싶을 땐, 나름 헤어지지 않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어쩌면 이 건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름이라고 표현했고, 결국엔 형체 없이 사라졌으니까.


사실 이 정도의 노력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싶지만 나는 복권 5천 원 정도의 행복만 발견한다 해도 뛸 듯이 기뻐할 준비가 되어있다. 적어도 주변에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사는데.'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3등 복권 정도는 기대해도 될 법한데 말이다. 그래도, 저런 소리를 듣는 것을 보면 적어도 행복을 찾는 데 게으르진 않았던 것 같다.






이런 내가 지난주에는 수도 없이, 지금 이렇게 해야 저렇게 되고, 이렇게 해야 그렇게 된다 따위의 미래 행복론을 펼쳤다. 이렇게 밖에는 행복을 찾는 법을 알지 못하고, 지금은 나도 행복하지 않으니, 타인에게도 미래 시점의 행복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유독, 지난주는 내 앞에서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마다 자신은 그런 행복은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 당장 행복하고 싶다던가, 행복 같은 것은 없어도 괜찮다던가. 꼭 그렇게 해야만 행복하냐고 나에게 반문을 해왔다. 사실 그 어느 것에도 대답은 해 줄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행복하지 않고, 내일의 내가 행복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내 행복을 찾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속으로만 짜증을 뱉었다. 그럼 나는 어찌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몇 년간 이렇게 하면 행복한지 까지는 모르겠지만 먹고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더랬다. 아마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과 내 이야기를 들은 타인들의 감정은 같을 것이다.


욕지거리를 뱉었다.

씨발... 씨발!!







잠 못 이루는 시간, 소리 내어 깔깔 웃는 사람들의 토크쇼를 새벽 내내 틀어놓았다. 인터넷 방송 같은 것이라 채팅창에는 연신 'ㅋㅋㅋㅋㅋ' 같은 채팅이 도배가 되었다. 다들 재미있나 보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을까 싶어 몇 시간 동안 보았지만 결국 방송이 종료될 때까지 웃지 못해서 조금은 아쉬웠다. 행복과 웃음은 꽤 붙어있는 단어라고 하던데, 새벽 시간에 웃고 떠든 인터넷 방송인들과 시청자들은 행복했을까. 하필, 불쾌했던 기억과 문장을 기억이 떠올라, 웃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주변은 고요해 욕 못하고 애먼 베개만 퍽퍽 쳐대며 누웠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끝에 드리는 기도에는 이런 내용이 담긴다. 오늘도 타인과 저의 삶에 나쁜 마음을 먹었음을 용서하여 주세요. 약한 마음을 용서해 주세요. 내일은 약한 마음을 지켜주세요. 조금 더 좋은 마음으로 하루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고는 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다. 매일 기도를 반복하는 것은 불행했기 때문일 테다. 아마도 행복하기 위해서일 테다. 희망차게 시작한 글이 불행하게 끝난 것을 보니, 오늘도 찾기에 실패한 것 같다. 또 저 기도를 드릴 것이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주에는 비가 또 종일 온단다. 비가 그치고 생각해보자고 혼자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지기 위해
얼마큼 가속해왔는지 몰라
신이시여 부탁해요.
포기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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