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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Oct 06. 2020

이야기를 처음부터 읽어주신 분에게 전하는 이야기

♪스텔라 장 - 나의 태양

오늘의 흐린 날씨가
내일까지 개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태양은
어딘가 밝게 빛나고 있어



♪스텔라 장 - 나의 태양



그다지 읽히지 않길 원하는 건 아니지만, 읽히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라서, 업으로 익혔던 기교 같은 것은 빼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면 지금과 같은 글이 생겨나곤 한다. 이제 첫 줄이니 생겨날 것이다, 가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사실 이런 디지털 공간에서 내용과는 관계없이 읽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고 그 기교를 업으로 할 때는 만든 공간에 하루 만 명 정도의 숫자를 낭낭하게 찍었더랬다. 여하튼, 지금의 이 곳은 지극히 전할 것도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쓰는 공간이니만큼, 읽히지 못함에 대한 초조함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그런 공간이기에 또, 눈에 띄는 읽힘은 바로 알게 된다.

 

나도 브런치에 글을 써 가시는 분들의 작품들을 소소하게 읽는다. 몇몇 분들의 글은 올라올 때를 초초하게 기다리기도 한다. 아마 모두 읽힐만한, 읽히기 위한 글을 쓰시는 분들이겠지 싶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내 글은 당신의 시간을 뺏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종종 백여 개가 넘는 글들을 감사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감사하고, 부끄럽고 그렇다.   






한 명이 실지, 여러 명이신 건지. 적어도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숫자의 분들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많은 경험은 아닌지라, 상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이성 간의 관계가 숙맥인 사람이 이성을 쳐다보는 순간 손자 이름까지 상상한다는 그런 우스갯소리처럼, 내 글들을 처음부터 읽어준 그분(혹은 그분들)에 대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현실에서 나의 삶을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바라봐주는 사람이 없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보통 이 분(들)은 새벽에 읽기 시작하시는 것 같다. 아침에 통계 창에 100이 넘는 카운트를 보자면 그런 것 같다. 처음부터 읽으시는지, 최근부터 읽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한 번에 끝까지 주파해주셨을 때도 있었고, 언젠가는 쉬었다가 점심 즈음부터 다시 읽으시고 있다는 것을 나만 볼 수 있는 숫자로 보여주시기도 했다.






오늘 새벽에도 그런 분이 계셨다.

두근두근. 생각해보면, 이런 숫자를 본다는 것 자체가 읽히기를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해서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숫자를 보는 건 본능적인 직업병이기도 하고, 내가 그냥 내성적 관종이라는 것에 대해서 굳이 숨기고 싶지 않기도 하다. 여하튼, 하나씩 읽혀지는 글과 하나씩 올라가는 숫자를 보면서 어제는 나도 처음으로 내가 써 내려간 첫 번째 글부터 읽는 시간을 가졌다. 별생각 없이 썼다고는 하지만, 그래서인지 더욱이 그런 내 글을 스스로 읽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부끄러운 행위였다.


아무래도 작가의 의도를 알고 있는 작자(오타가 아니다.)다 보니, 그때 그때의 감정이 다시금 떠올랐다. 연휴 중 읽어 내려갔던 주인 없는 편지들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기도 했다. 내 글을 읽어주신 분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연속해서 읽어 내려가는 글들 속의 나는 혼자서 뭐 이리 치열했나 싶었다. 아무래도 글과 글 사이의 공백기는 나 밖에 모를 감정이다 보니,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새벽에는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내가 바깥으로 뱉어내고 만들어낸 글들이며, 감정이니 미워하지 말자며 어찌어찌 끝까지 읽어냈다. 가장 최근에 썼던 글까지 거슬러 올라와 다시금 숫자를 확인해보니, 반절을 조금 넘는 정도를 읽다 멈춘 어떤 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아마, 그분도 끝까지 읽기엔 버거우셨던 걸까 싶어, 모를 그분께 죄송하고, 고생하셨고, 감사하다며 속으로 인사했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래도 외로운 사람이라 이런 조용한 보이지 않은 관심마저도 귀한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과 어제의 시간은 스스로 배설했던 글을 매개 삼아 굳이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들로 돌아가, 다시금 그때의 것들을 한데 뭉쳐 덩어리로 마주했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모를 누군가의 그 관심에 또 기쁘기도 했던 복잡한 감정의 시간이었다. 내가 이렇게도 조그만 것에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니다, 말을 잘못했다. 조그마하다니. 누추한 곳을 만들어 놓았으면서 귀한 방문이 조그만 무언가 일리가 없다. 그 새벽녘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준 모를 분에게 다시금 감사함을 느끼고, 전하고 싶다. 아래에 편지로 남겨야겠다 생각했다.







혹시 소중하게 내어주신 시간 동안 제 글 속에서 저의 어떤 모습을 발견하셨을까요. 순간순간 느낀 대로 써 내려간 감정 그대로의 어두운 무언가 들에 어지러우셨을까요. 비문 투성이의 제 글을 고쳐주고 싶다는 선생님의 마음이셨을까요? 아니면 의미도 모를 행복이랄지, 이런 것들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에서 연민 같은 것을 느끼셨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의미를 담아 그냥 '저'를 봐주신 걸까요. 궁금합니다. 혹시 어제, 혹은 언젠가의 그 날, 글을 읽으시다 지친 탓에 이 문장까지는 못 보실까요. 어찌 되었든,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를 표현하기에 감히 작가라 할 수는 없지마는, 글을 써 내려간 사람으로서의 욕심을 담아 하나의 부탁을 해도 될지 조심스럽습니다만, 당신의 시선으로 본 저는 어떤 사람인지 전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혹은 이런 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한 마디라도 있으실까요? 아무래도, 저도, 삶도, 무엇도 모를 것 투성이인 사람인지라, 무엇이나마 편린이라도 알고 싶을 따름입니다. 누구신지도 모를 당신에게 이런 것을 바라는 것은 참으로 염치도 없고,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부끄럼을 내세우기엔 저는 아무래도 무엇도 모를 탓으로 이 글에 대한 변명을 하여 봅니다. 당신을 모를 이 공간에서 당신에게 닿을 방법을 몰라, 막연하나마 이렇게 기록해둡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은 오랜만에 기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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