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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Oct 05. 2020

느릿느릿한 연휴에 발견한 것들

♪넉살 - make it slow

시간은 각자의 것 행복으로 가는 길도
가지각색인  것을
난 기계가 아니고 피가 흐르는 인간이기에
내가 흘러가는 곳에 고일 거야



♪넉살 - make it slow, 큰 의미는 없고 연휴 중 가장 많이 돌려들은 음악이다. 



#episode 1 

내 이야기의 곳곳에는 밤과 친한 터에 밤을 뜬 눈으로 새벽을 맞이한다는 에피소드가 알알이 박혀있다. 언제부터 밤잠을 잊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잠을 안 자도 하루를 살아갈 수 있어서 그냥 그러려거니 하는 그런 삶이다. 가끔은 심하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꽤 나쁘지 않다. 밤을 진하게 보내기 위해 어떤 생각들을 깊이 하던 때도 옛말이라, 남보다 오래 사는 기분도 들고 뭐 괜찮구먼,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시간으로 변한 지 오래다.


라고, 생각했더랬다. 불과 지난주의 화요일까지의 이야기다. 오래 쉬면 무언가의 불안감에 휩싸여서일까, 명절을 맞이하면 하루 즈음은 꼭 뭐라도 일을 꺼내어서 했었는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오일 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더랬다. 문자 그대로 숨만 쉬는 느낌으로 살겠다는 마인드. 덕분에 놀라운 경험을 했다. 






다시, 이 밤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0대에 이르기 때문에, 생의 절반 이상을 설명해야 하고, 그만큼 이유랄지 하는 것들도 시간의 길이만큼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 연휴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잠'이었다. 그것도 밤낮 가릴 것 없이 쉼 없이 잤다. 언젠가의 웹툰 원작의 유튜브 드라마처럼 삶에게 잠을 갚는 중일까라며 잠결에 떠올렸다. 오일 중 삼일은 호텔에서 혼자 있었는데, 삯을 침대 넓이만큼만 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잠을 잤다. 하루는 대충 과장해서 스무 시간 가까이 잠으로 보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또 다른 병이지 싶어 억지로 몸을 일으켜보기도 했지만 이내 드라마 한 편 정도를 못 버티고 또 잠들어버린 터에,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는 일이 있었더랬다. 내가 이렇게 잠이 많은지 정말 처음 알았다. 


우습게도 연휴 내내 이렇게 많이 잔 탓인지, 연휴의 마지막 날은 거짓말처럼 새벽 다섯 시가 되어도 잠에 들지 못했고, 지금 현재는 실상 뜬 눈으로 하루를 넘기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잠이 오진 않는다. 시차 적응이 된 모양이다.     





#episode 2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잠이 들기 전 날에는 빼곡하게 채워진, 방구석 한편에 쌓인 물건들을 '거의 모두' 내놓았다. 뭐랄까, 내게 있어 서랍은 보이지 않는 과거의 쓰레기장 같은 것이었다. 과거밖에 모르는 삶이라, 애써 외면한 공간이었는데 별 계기도 없이 버려야겠단 생각을 했다. 영수증이었을 백지도 발견하고, 유통기한이 십 년이 지난 바디 스프레이 등 정체불명의 무언가 들을 발굴해내며, 가족들에게 우와 신기하지 않아요? 엄청 더러운 것들을 감추며 살았어!라고 자랑거리도 아닌 것들로 낄낄거렸다. 사과 박스를 훌쩍 넘긴 무언가를 방 밖으로 쏟아냈다.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 성인이 되어서, 꽤 멀지 않은 언젠가 썼던 수취인 불명의 편지 더미들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이런 것들마저 안 버렸구나. 한참 지난 주인 잃은 편지들을 보면서 그때 어떤 감정으로 대상을 바라보았고, 어떤 심경으로 썼는지가 드문드문 떠올랐다. 그래서 사람들이 편지를 받으면 좋아하는구나, 감정을 전할 때는 편지를 쓰는 거구나 싶었다. 어떤 편지의 나는 수줍었고, 어떤 편지의 나는 절절했고, 어떤 편지의 나는 사랑을 듬뿍 머금었다. 그리고 참 지질하고, 어둡기도 했더랬다. 내가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의 사람이었구나 하면서 행여나 누가 볼까 북북 찢어 버렸다. 더 이상 받을 사람이 없고, 그 편지 속의 나는 도대체가 찾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언젠가, 어떻게든 내가 쓴 편지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간 편지도 북북 찢긴 채 편지가 아니게 된 무엇처럼 사라졌을까. 아니면 글자마저 희미해져 편지가 아니게 될 때까지 누군가의 어딘가에 보관될까를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신경도 쓰지 않을 서랍 속 구석 어딘가에 안녕히 있기를 바랐다. 엄청 이기적이다. 난 스스로 '나들'을 찢어버렸으면서. 타인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나마 내가 세상 속 어디 한 구석에서 어떤 형태로라도 살아있다면 지금의 무미건조한 나는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했다. 또 허튼 생각을 한 것 같아 방금의 글자를 써 내려가며 혀를 찼다. 





#episode 3 

여하튼 연휴 중의 호텔은 여느 때의 명절과는 또 다른 북적임이 느껴졌다. 우선 체크인부터 만실이니 죄송하지만 조금 기다려 달라는 요청에 실감했다.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고 잠깐 한두 시간이라도 술을 마시기 위해서 나왔던 라운지도 여지없이 웨이팅이 걸렸더랬다. 다들 여행을 못 가니 이렇게 보내는구나 싶었다. 나도 무려 군중과 섞인 듯한 동질감을 느낄 정도로 사람이 많아 어깨가 으쓱했다. 나도 무리와 어울릴 수 있구나. 생각보다 내가 특이한 건 아니었어! 스태프가 매번 라운지에 갈 때마다 안내한 자리는 벽, 정확하게는 기둥을 마주 보고 앉는 일인석이었다. 심지어 이 기둥은 거울로 되어 있어서, 친절하게도 그 수많은 사람 중 유일하게 혼자였음에도, 나를 마주 보고 앉은 형태로 혼자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해주는 배려를 받았더랬다. 꼬인 마음 없이 진심이다. 정말 혼자 방문한 수많은 시간 중, 이렇게 외롭지 않았던 시간이 없었다. 하기사, 잠으로 대부분 보내긴 했다마는. 


어제는 비가 왔었는데 거기는 어땠니? 아 저는 커튼 치고 방에만 있어서 비가 온지도 몰랐군요! 정도로 어머니와 생존 안부 인사를 나누고 나온 호텔은 어머니의 말처럼 비가 내렸던 티가 나는 흐린 날씨였다. 들어올 때만 해도 맑았는데, 거짓말처럼 흐려졌다. 세상 소식에 둔한지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청역으로 갔을 때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안내를 받았다. 병마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나. 나름의 뚜벅이 생활 중 처음 겪어보는 일이나 고개를 갸웃하며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틀어 본 뉴스에는 그 시청역 과 광화문의 사진을 걸어놓고 '민중'이라는 이름을 각자의 모습대로, 독재니 탄압이니, 민심이니 안심이니 라고 싸우고 있었다. 참 우습지, 나는 옹기종기 모였던 라운지에서 위아더월드를 느꼈는데, 바깥은 텅텅 빈 거리를 두고 각기 다른 민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그제사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래, 이게 현실이지. 하며. 서로 물고, 뜯고, 원망하고, 그런 것.  






두서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이야기들 속에서 무엇을 누군가에게 전하려는 마음도 없이 기록한 연휴 속의 나는, 그래도 꽤 사람다웠다고 생각했고, 반대로 지금을 포함한 언젠가의 나는 사람인가?라는 의문도 함께 들었다. 감히 이 시간들을 '행복'이라고 칭한다면 꽤 나쁠 것 같진 않다는 생각과, 이 반대의 시간들을 '불행'이라 칭한다면 더 이상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좋을 일만 남았으니 좋은 건가? 따위의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문장을 쓴다. 썼다.  


여하튼, 누군가에게 굳이 이 경험을 요약하여 전한다면, 한 번 즈음은 멈추어서 느린 기분으로 살아보면, 지금까지 삶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어떤 형태의 현실을 더 선명하게 맞이하기도 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각각 행복과 불행일지, 불행과 불행일지는 모를 일이지만. 행복과 행복은 좀 질투 나서 아닐 것 같다. 뭘 해도 결국은 현실이지만. 현실은 이 글 어딘가에 써놓았다. 별 차이 없는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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