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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Sep 25. 2020

그저 악에서 구하옵소서

♪쏜애플 - 수성의 하루

비뚤게 웃어보고
한참 몸서리치다
아무 대답도 없을 말들을
혼자서 주절거려
미끄러지기만 할 텐데 뭐할라고
아직 절반도 안 살았는데



♪쏜애플 - 수성의 하루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Mattew 6:13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글자를 쓰지 않은지 꽤 되었다. 글을 쓰지 않으면 평범한 하루라는 소개란에 있는 문장이 무색하게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하여 보통의 삶이 나를 찾아오진 않았다. 사실은 무어라도 쓸까 손은 움직였지만 두 문단 정도 내려갈 때면 마음도 덜컥 내려앉아 이내 글을 지웠다. 글자를 쓰지 않은, 혹은 못한 대신에 다른 사람들의 글자들을 읽었다. 보통은 스스로 명을 달리 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시상식과 그 작품들만이 그가 살았노라 말해주는, 어느 유명한 소설가의 유작을 읽었다. 이십 대에 떠난 누군가의 노래를 틀어놓은 채, 삼십 대에 떠난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마지막을 상상하는 삶과 기분은 아무래도 글로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지은이는 서른다섯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더랬지.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살았다. 아마 후세에 남길 것 없는 범인(凡人)인 덕이라 감사했다. 그것을 반복한다. 여전히 글자를 쓸 수 없었다.






언젠가 죽음이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죽음을 예찬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그 말에 온전하게 동의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작품 속, 작가의 삶 끝자락을 계속 훓다보면, 각자 다르지만 비슷한 슬픔과 고뇌를 표현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고는 한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죽기 전 날 남긴 마지막 영상을 백 번 넘게 반복하다, 그의 입꼬리 즈음에서 슬픔을 발견했던 것과 비슷한 그런 것이다.


이미 세상에 없어 타인이 아니게 되어버린 타인의 감정을 글자 속에서 발견할 때면, 그렇게 꺼낸 슬픔과 나의 그것을 맞대어본다. 이윽고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아직은 그 슬픔보단 괜찮다고 느낀다. 어쩌면 알지 못하는 '그' 두려움에 애써 나의 그것을 낮추어 재어보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타인의 '그것'에서 나의 위안을 찾는 삶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이해를 구하기도 어려운지라 그나마 글자 열해보는 수 밖엔 없다.






이렇게 타인의 무너져가는 삶과 내 삶을 비추어 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축복임을 알아간다. 감정이 살아감을 위한 연료라면 이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지금의 모습도 퍽 나쁘진 않을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한 때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에 슬퍼할 때가 있었다. 누군가에겐 무료하고 누군가에겐 축복 같은 시간에는 '그런' 마음이 덜컥 찾아올 때도 있지만 다행히 나는 겁쟁이다. 겁이 늘어나고, 겁을 먹은 만큼 생이 늘어난다. 이해를 구할 생각도, 이해를 구할 수도 없는 그런 삶이다. 이해를 시킬 수가 없으니 혼자서나 읽을 글자라도 써 내려가는 것이다.  






이런 감정과는 무관오늘도 우스꽝스럽게 마음에도 없는 말, 뱉어서는 안 될 말을 쉼 없이 밖으로 꺼낸 하루였다. 지금껏 눈으로 먹어치운 어두운 글자들과 형상들을 속에서 아무리 갈무리를 해보아도 결국 채 소화를 못 시켜 나쁜 말로 게워내 진다. 송구스러웠다. 미안하고. 그렇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정상인듯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마음과는 다르게 '정상인 같은 말'도 어설프게나마 해내야 한다. 유독 오늘은 그런 내가 슬퍼져서 조금 울 뻔하기까지 했다. 서른여섯이나 되었는데 부끄러워질까 무서워 헛헛하게 실없는 농담과 함께 웃음으로 비죽 나온 감정을 지웠다. 바깥의 날씨를 보며 가을이 온 탓이라 했다.


누구라고 이렇게 살고 싶겠는가! 언젠가는 무언가에 분노도 했지만, 이젠 이렇게 된 원인도, 원망도, 후회도 없이 그저 자책하며 무서울 때면 여지없이 타인의 '그것'을 꺼내어 읽으며 나쁜 기분을 떨쳐 내는 것에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행복이라던가, 그런 것을 사기엔 노잣돈이 없다. 그런 것을 사려고 마음을 먹어도 여지 없이 감정에 인색해진다. 그래서 그저 악에서라도 구원받기를 바라는 수 밖에는 없는 삶을 보낸다. 그래도 오늘은 도무지 떨치기 어려워 글자를 쓸 수 있었다. 그렇게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다행이라 여겼다. 아무래도 이런 삶, 하루는, 기분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생각했고, 그 어떤 이해와 공감도 받지 못할 무엇이다. 그런 글자를 나열했다.


  

무엇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
허나 차오르는 마음들
아물지 못하는 오늘을 끌어안고
모든 것은 내일의 몫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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