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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Dec 21. 2020

노잣돈이나 두둑하게 챙겨주쇼.

♪King Gnu - 千両役者

자기 좋을 대로 하는 장사
후회 따위는 귀찮을 뿐이야
풋내 나고 촌스러운 생애
그저 살아가기 위한 항체를 줘



♪King Gnu - 千両役者(천냥 배우)



글을 쓰기 앞서 고하자면, 글 앞의 제목이라는 것은 참 귀찮은 것이다. 앞으로는 그냥 습작이나 낙서 정도로 적을까 날짜 따위로 기재해둘까 고민을 했더랬다. 노잣돈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적었다. 이렇듯 올해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들은 보통 '끝', '죽음'과 관련된 것들이라, 작년보다도 글을 쓰기가 무서워졌다. 간신히 나도 모를 것에 매달려 살아가는 기분이랄까. 정말 그렇게 될까 봐. '말에는 힘이 있단다.'는 어릴 적 가르침 때문일지,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적을 때는 스스로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내 기분이 얼마나 온전하게 사람들에게 전달될까.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맞을까부터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기분만 남아, 남길 삶이 온전치 못하니 쓸 주제가 없다 떠오른 단어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기 시작했다. 행복한 날에 지금 내가 가진 기분을 그 장소에 옮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도 했고, 내가 결혼을 할지도 모르는데 몇만 원 혹은 십만 단위의 축의금이라는 이름의 돌려받지 몰할 적금을 하러 가는 이기적인 기분도 들어 그만 두기로 했다. 그래도 꼬박꼬박 진심을 담아 축하 단다는 메시지는 잊지 않는다. 기분은 돈이 들지 않는다.  


반대로 누군가의 마지막을 기리는 부의금은 평소의 갑절로 내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나의 벌이는 작년과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나와 관련 있는, 관련된 사람의 장례식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더라도 참석하려 시간을 쪼개어 낸다. 시국이 시국이어서 그럴지 모르겠지만, 요즈음의 장례식장은 한층 더 을씨년스럽다. 고인의 대한 모독의 표현은 아니다. 무언가 서글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빈 공간만큼 누군가의 울음도 한층 더 크게 울린다. 사실 그런 것들을 느낄 새도, 슬픔을 위로할 새도 없이 돌아서야 할 경우가 다반사라, 그 위로를 고인과 고인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노잣돈이라 생각하며, 몇 장을 더한다. 얼마 전에도 그러했다. 







얼마 전에는 내 꼬리표를 스스로 달아야 할 때가 있었다. 살아가는 것. 아무래도 좋을 듯싶어, 최근 주변에서 흐르던 이야기를 주워 내 꼬리표 삼았다. 굳이 성적표처럼 표현하자면 'C' 정도로. 학생 때도 받아본 성적이 아니라서 예의상 'C+' 정도의 느낌으로 달아두었다. 정말 항목 하나하나를 채우다 보니 자연스레 만들어진 평가라 스스로도 놀랐고, 평소 삶의 대한 애착만큼 나온 것 같아, 적당하다고 떠올렸고, 요즘 유행하는 테스트 같은 것을 삶을 걸고 한 것 같아 재미있기도 했다. 아무래도 좋지만, 역시 그다지 예쁜 평가는 아니라는 생각에 올해의 나는 이 정도였구나 라며 혼자 입맛을 조금 다시긴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른 사람이 나에게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뭐랄까 그 꼬리표를 보고서는 다른 것 보다 우습게도 어릴 적 아픔이 먼저 떠올랐다. 고등학생 시절, 나를 괴롭히던 녀석이 수업시간, 내 등 뒤에 '병신'이라고 볼펜으로 썼더랬다. 내 학창 시절은 많은 괴롭힘이 있었지만, 지금의 삶과 비슷하게 그 당시의 더러운 기분만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유독 이 기억만큼은 잘 지워지지 않는 볼펜만큼 선명하게 남아있다. 약자 주제에 그 괴롭힘에는 화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음 괴롭힘으로 이어졌다. 약자 따위가 감히. 그 기분을 상기시켜줄 정도의, 그런 꼬리표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른이 되어 달았다. 






다음으로는 화가 났다. 화가 나다니. 내가 살아 있긴 하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어쨌든 이 화를 어딘가에 당장 분출하고 싶었다. 이런 감정적인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약자가 할 수 있는 분출은 '내가 모든 걸 그만둘 거야!' 따위의, 나에게 화를 푸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 기분으로 하나의 글을 썼다. 지난 한 달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았는데, 그 순간은 일필휘지란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평소 두 배 분량 정도 될 나에 대한 이야기를 순식간에 풀어냈다. 그렇게 나온 글은 거칠고, 곳곳에 날카로운 칼과 뾰족한 가시가 돋쳐 있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글이 나왔다. 누구를 찌르기 좋은 글이었다. 문득, 언젠가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필력이 부족해졌다며, 좀 더 좋은 주제에 써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는데, 조언과는 다르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며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여하튼. 


그 글은 결국 상대방을 찌르지 못했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살이 같은 거 잘해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배웠다. 그래서 결국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던 분노는 그냥 눈에 밟히는 사람들에게 한 하소연과 같이 흩날렸다. 그냥 사정 볼 것 없이 찔러버렸어야 했을까. 그러지 못한 탓에 결국 이렇게 내일도 또 '병신'처럼 흐를 테다. 난 타인이 이해 못할 괴로움을 안고 갈 테고, 그런 나에게 타인은 다시금 꼬리표를 붙이고 등 뒤에 '병신'이라고 적을 테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이제는 생각하기도 귀찮아졌다. 이유야 만들려면 한가득일 테고, 이유를 찾았다한들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어느 영화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영화의 엔딩처럼 아예 태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으니, 그때부터는 이유를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살아진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을 바꿀 뾰족한 무언가를 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다시 되돌아와, 타인의 이야기에 울컥한 마음에 얼마 간의 과거를 다시 돌이켜 보니, 나는 생각보다 못 살지 않았다. 스스로 처음 꼬리표를 만들 때의 나도 모르던 그런 것들이다. 봐라. 나도 그런데, 어차피 타인은 나를 제대로 봐줄 생각이 없다. 없을 것이다. 아니, 확실히 없다. 어차피 그렇게 보이지 않을 무언가를 보이기 위해 갈구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러니까, 언젠가 나도 지금 내는 축의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같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닮았다. "어어- 와줬구나 고마워!"가 대부분 그런 사람들과의 마지막 대화이다. 아마, 내가 주저리주저리 떠들었거나, 준비했던 비장의 글을 꺼내어봤자, "어어, 그랬구나. 그래그래."라고 끝났을 이야기라는 말이다. 무엇도 돌려받을 수 없고, 이렇듯 별 것 아닌 삶이다. 혼자 화를 냈고, 그런 마음은 이렇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한 번 침잠한다. 






내일은 올해 마지막으로 예약한 병원에 간다. 지난 방문 때는 그런 말을 했더랬다. 내가 스스로 마지막을 맞이하진 않을 거라며,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를 떠나기 전에는 그럴 일이 없으니 약 같은 것은 괜찮다고. 죽을 이유를 모르듯이, 살 이유도 모르는 것뿐이라고. 선생님은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으로 미간을 지그시 누르며 참지 말고 말하는 게 어떨지 권하셨다. 하지만 정말로 그다지 말할 것이 없다 웃었다. 언제나 그렇듯 삶은 이 곳까지 오는 길에 삭혔고, 삭히고 찌꺼기 같은 감정만 남았다고. 아마 내일도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한동안은 또 혼자 참아볼 생각이다. 마지막이니까, 소망을 담아 끝이 아름다우면 다 좋은 것이라며, 내가 삶을 삭힌 만큼 만약 가는 길이 불현듯이 온다면, 만지지 못할 노잣돈이나 두둑했으면 좋겠다며, 그렇게 될 수 있게 살아보겠다며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와야겠다 다짐했다. 그 정도면 살아갈 힘은 되지 않겠냐며. 


그러고 보니, 타인의 끝에 갑절의 노잣돈을 냈던 것에는, 그들에 대한 위로보단 나의 끝에 대한 저축이자, 스스로에 대한 위로였을지도 모르겠다고, 타인의 슬픔으로 위안 삼았다는 사실에 슬프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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