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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다솜 Mar 31. 2024

무질서 속의 질서

등산을 하며 든 생각

끝날 듯 끝나지 않던 긴긴 겨울이 드디어 지나가고 봄이 왔다.

봄은 활기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계절이다.

이 계절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오랜만에 등산을 다녀왔다.


일 년 만에 등산을 하러 간 곳은 바로 관악산

사당역 입구에서부터 형형색색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산악회 사람들인 것 같다. 연령대가 있는 산악회와 젊은 산악회 사람들이 각자 무리별로 모여있다.

나에게 등산은 항상 부모님과 가는 거라, 친구랑 또는 동호회로 갈 생각은 못했는데 꽤나 많은 산악회 모임들이 있는 모습을 보니 다 같이 모여서 가는 재미가 또 있겠구나 싶었다.


아빠는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는 코스는 시끄럽고 좁다며, 아파트 뒤쪽으로 가더니 다른 곳에서 시작했다.

한적하니 자연의 소리들이 잘 들려 좋았다.

땅과 흙, 바위를 밟아가며 올라가다 보니 잡생각이 사라지고, 생각의 공간에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 감사함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채워졌다.

항상 걱정이 많은 나에게 필요했던, ‘현재’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다.

나이가 먹었는지 등산의 매력에 빠졌다.


등산의 매력

1. 정상이 있다.

정상이 있다는 건 목표가 있다는 의미인데, 목표가 있으니 어떻게든 가게 된다.

힘들면 쉬었다가, 다시 씩씩하게 걷다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높은 계단 앞에서는 앞만 보다가..

정상에 도착한 순간 ‘해냈다.’는 기분의 성취감으로 내 존재의 이유가 명확해지는 기분이 든다.


2. 나의 속도에 집중하게 되는 점.

정상을 향해 다 같이 걸어가는 과정에서 내 뒤에 있던 사람이 내가 쉬는 동안 나를 앞질러 갈 수 있고, 내 앞에 있던 사람이 물 마시는 동안 내가 먼저 올라갈 때도 있다.

산속에서는 각자 자신만의 페이스에 집중한다. 먼저 앞질러 갔다고 심술 나거나 초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짐을 나눠들며 같이 간 이들을 배려하며 페이스를 조절하는 과정도 아름답다.


3. 무질서 속의 질서.

누군가에게는 등산의 코스가, 누군가에게는 하산의 코스인, 굉장히 무질서한 순간들이 종종 있다.

올라가는 이들과 내려가는 이들이 좁은 길에서 마주쳤을 때 어느 목청 큰 아저씨가 교통정리를 해주셨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먼저 움직이고, 올라갑시다!’

다들 조금씩 옆으로 피해 자리를 마련해 주고 그 순간 질서가 생겼다.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는 산속에서의 사람들은 규율이 없어도 은은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질서를 만든다.


4. 고생한 나를 위하여

산속에서 미리 싸 온 과일, 삶은 계란, 김밥 등 각자 일용할 양식을 먹는 모습이 정겹다.

초등학교 남학생 3명이 친구들끼리 등산을 와서 김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등산이야말로 돈 없어도 즐길 수 있는 소풍이기에,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해외여행은 못 갔어도 등산을 한 추억은 대부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등산하고 내려와 먹은 음식들의 추억은 참 진하게 남아있다.

이제는 나도 커서 엄마아빠랑 내려와서 막걸리 한 잔을 진하게 마셨다.  

어렸을 땐 어른들이 건강하게 등산을 하고는 내려와서 왜 술을 먹나 이해가 안 갔는데, 막걸리 한 잔은 고생한 나를 위한 보상이다.

이걸 위해 등산 도중 힘들었던 기억은 미화되고 나는 또 등산을 오겠지.

적당한 보상은 아주 중요하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등산이기에 이런 글을 쓰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그동안 남들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던 등산과 달리 내 의지로 등산을 하고 싶었던 만큼 등산의 재미에 빠진 오늘이다.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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