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첫 회사 4(死)년차에 드디어 가슴속 사직서를 꺼냈으나..
6개월 전, 호기롭게 나의 퇴사를 응원한다는 글을 발행했다.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넘어가는 시점, 나의 생일과 입사 N주년이 있는 7월은 매해 나에게 혼돈과 방황의 시기가 된다.
여러 생각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하반기로 들어서며 올해가 반밖에 안 남은 것, 생일을 맞이하며 내 나이를 한 번 더 실감하는 것, 입사한 지 N주년으로 '첫 회사에서 계속 이렇게 다녀도 되는가' 안주의 위험과 변화의 필요성을 각인하게 되는 것.
뜨거운 여름날처럼 이글이글 모든 잡념들이 한 번에 들끓는 7월이다.
올해는 방황이 유독 더 심했다.
아홉수라는 이슈가 붙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마지막 20대에 첫 회사에서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더욱더 퇴사를 갈망했고,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걸 해봐야 하지 않을까 초조함이 극대화된 것이다.
'새로운 걸 해봐야 하지 않을까?'
당연 구체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막연하게 해보고 싶었던 그림들은 아스라이 있다고 믿었다.
불투명일지라도 마지막 20대인만큼 안갯속에 들어가 빛을 찾아보겠다는 열정이 붙은 7월의 어느 날, 나의 즉흥력이 올라왔다.
퇴사를 입에 달고 살았기에 즉흥이라는 말이 우습지만, 그날의 마음은 정말 '즉흥적'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고된 출장을 마치고 올라오는 날, 이모가 운영하시는 요양원에 있는 엄마와 함께 귀가를 위해 요양원에 들렀던 날이었다.
나에게는 애틋한 조부모의 존재가 없기에 가까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낄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요양원이라는 곳을 처음 갔고, 그곳에서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아기 같은 어르신들. 혼자 거동도, 식사도, 말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분들이 한 공간에 모여있고 요양보호사분들이 하나하나 챙겨주는 광경을 처음 본 것이다.
그날이 내게 죽음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다가왔던 첫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아주 잠깐 있었지만 그곳에서 느낀 우울감과 무력감의 감정이 꽤 오래 내 곁에 머물렀다.
물론 요양원이라는 곳이 우울하고 침울하지만은 않다는 걸, 이후 엄마가 잠시동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새로 느낀 부분도 많다.
혼자 외롭게 집에 있는 것보다 다 같이 있는 공간에서, 놀이도 하고 말동무가 있는 걸 기쁘게 생각하신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지만, 그날 내가 처음으로 눈 앞에 마주한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감정들에 복잡할 무렵 7월이 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29살의 생일을 맞이했고, 생일 이틀 전 입사 4년 차가 된 내게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극대화되었다.
이십 대의 마지막, 죽을 사 년 차라니..
이대로 첫 회사에서 일만 하다 죽는 건 아닐지...
이렇게까지 생각이 확정되었다.
때마침 반복되는 업무에 지침과 배울 점, 성장이 없다는 확신이 든 순간 나는 드디어 퇴사를 외쳤다.
입버릇처럼 혼자 말하는 것이 아닌, 회사에 가슴 속 사직서를 꺼낸 것이다.
그렇게 나의 퇴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