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혁 Jun 23. 2023

구경거리를 대하는 '예의'

영화 <놉> 리뷰 

*이번 리뷰는 영화 <놉>의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겟 아웃> 그리고 <어스>. 단 두 작품만으로도 자신만의 영역을 성공적으로 구축해 낸 감독 조던 필의 작품에는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가장 먼저 흑인 주인공을 페르소나로 사용한다는 것, 미국 사회 전반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다는 것 그리고 이 풍자를 자신만의 독특한 비유법을 통해 전달한다는 점이다. 특히 마지막 특징은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조던 필의 영화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나훔서 3장 6절 

세 번째 작품인 <놉> 역시, 이런 조던 필만의 난해한 비유에서 출발한다. 언뜻 봐서는 전혀 그 의미와 연결성을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한 성경 구절로 시작하는 <놉>의 오프닝은 사실 이 영화를 통해 그가 말하고 싶은 모든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영화는 아주 전형적인, '조던 필'스러운 미스터리한 요소들로 시작한다. 전작 <겟 아웃>이나 <어스>를 감명 깊게 봤던 관객들이라면 이런 유의 영화를 어떻게 대할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의미 없어 보이는 파편들에 담긴 상징성과 의미를 찾아내고, 분석해 내고 그 안에 담긴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 <놉>을 보는 순간 관객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착각의 늪에 빠진다. 여기서 영화의 첫 번째 반전이 시작된다.    


<놉>은 UFO의 뒤를 쫓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영화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이런 대부분의 미스터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정체 모를 '무언가'에서 나오는 공포와 호기심이다. 그 무언가로부터 시작되는 이런 복잡한 감정들은 영화의 서스펜스를 유지하고, 극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중대한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그것'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영화가 공들여 쌓아 올린 모든 서사가 허무하게 드러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놉>은 이런 영화들과는 다르다. <놉>의 진짜는 오히려 '그것'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미 오프닝 씬의 성경 구절에도 드러나 있듯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은 바로 '구경거리'와 그 구경거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놉>에는 수많은 구경거리들이 등장한다. 사람처럼 예쁘장하게 꾸며놓은 원숭이가 등장하는 TV 쇼부터, 촬영장에서 하나의 소품으로 취급되는 말들, 그리고 주인공 OJ와 에메랄드가 그렇게 정체를 담아내려는 하늘에 있는 '그것'까지. 다양한 구경거리들이 등장하는 만큼, 이 구경거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극명하게 나뉜다. 

먼저 OJ와 비즈니스 파트너인 '주프'에게 구경거리의 목적은 당연하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더 나아가 가장 중요한 '돈'을 버는 것. 이미 어린 시절부터 TV쇼의 주연으로서 한차례 스스로 구경거리가 된 전적이 있는 그에게 이 모든 일은 어디까지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실 영화 속 다른 등장인물의 태도도 주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촬영장의 스탭들은 하나의 생명체인 말을 그저 물건처럼 취급하고, OJ가 아무리 말들을 대하는 '예의'를 가르쳐 줘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들에게 구경거리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이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도구 또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대상이다. 결국 스태프의 부주의로 사고를 친 OJ의 말 럭키가 다른 모형 말로 대체된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현장을 총괄하는 촬영 감독 홀스트 역시 이런 사태를 방관할 뿐이며, UFO를 담기 위해 OJ 남매와 합류하는 동기 역시 순전히 그의 커리어와 명예를 위한 사욕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미스터리의 주인공인 OJ와 에메랄드에게 '구경거리'란 무엇인가. 둘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이들에게 말은 단순한 재산이 아닌, 아버지가 남긴 가업이자 유산, 그리고 일생을 같이 살아온 동반자와 마찬가지다. OJ는 영화 속에서 어떤 일들이 몰아닥쳐도 온통 말들의 먹이를 주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에메랄드 역시 그의 판단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한계점은 분명하다. 영화 초반, 에메랄드는 사진작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촬영한 활동 사진 '움직이는 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누구도 말에 탄 흑인 기수에게는 아무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씁쓸한 현실을 고발한다. 어떻게 보면 최초의 무비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OJ와 에메랄드 또한 흑인 기수 외에, 흑인 기수가 타고 있던 말에는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OJ와 에메랄드 역시 '구경거리'에 대한 태도는 다른 등장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 하나의 생명체가 아닌, 인간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도구적 존재. 이 둘의 이런 편협한 의식은 UFO의 정체가 점점 베일을 벗을수록,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목장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UFO를 목격했다는 OJ의 말에 두 남매는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UFO의 정체를 카메라에 담아내기로 결심한다. 이 둘의 구경거리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둘은 부와 명예를 위해, 그동안 등을 지며 살아왔던 다른 사람들과 결국 똑같은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의 정체가 UFO가 아닌 '생명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둘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그것의 습성을 파악하기 시작하고, 그것에게 자신들이 미처 길들이지 못했던 말의 이름 '진 재킷'을 붙여주는 등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구경거리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의 달라진 태도는, 스스로의 목숨마저 구하게 된다. 


OJ 남매와 마찬가지로 '그것'의 정체를 알아낸 주프의 태도는 조금 다르다. 그는 어디까지나 '그것'을 구경거리로만 삼는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돈을 벌기 위해 '그것'을 유인하고 결국 파멸을 맞이한다. 영화는 '그것'을 대하는 상반된 둘의 태도를 통해, 구경거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논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구경거리'라는 것은 충분히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모 연예인의 가십이 될 수 있고, 내가 싫어하는 이들의 치부가 될 수도 있다. 구경거리 자체로는 단순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다.


<놉>은 UFO로 알려진 구경거리를 대하는 인물들의 각기 다른 자세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방식으로만 소비되고 있는지 경고하고 있다. 일례로 후반부 짧게 등장하는 파파라치 기자는 아예 얼굴조차 등장하지 않은 채, 몸 전체가 카메라로 보이는 의상을 입고 있다. 이는 인간적인 존중과 이해는 외면한 채, 오로지 자극적인 볼거리들을 담아내는 미디어들을 나타낸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고프와 그가 어린 시절 출연한 <고디가 왔다> 쇼 역시, 인격적인 대우 없이 그저 볼거리로만 소비되는 수많은 구경거리들을 대변한다. 

영화는 이런 구경거리들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도, 처절하게 살아남는 인물들의 다른 결말들을 보여주며 모두들 자극적인 볼거리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지금의 사태를 풍자하고 있다. 전작 <겟 아웃>과 <어스>가 미국 사회, 특히 미국 사회 속 흑인들의 위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면 이번 작품은 더 나아가 모든 사회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심오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장르적인 재미 또한 빠뜨리지 않는다. 전작들을 통해 충분히 보여줬던 조던 필만의 '호러 쇼'는 여전하며 무엇보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장치들의 나열을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끌어내는 연출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오프닝의 활동사진에서부터 시작해, UFO를 담기 위해 점차 역행하는 카메라의 흐름을 보여주며 영화라는 매체가 걸어온 지난날들에 대한 오마주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영화 또한 이미 하나의 구경거리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조던 필 특유의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거나, 조던 필의 작품을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영화 속 의미들을 파헤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거나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결코 그 메시지들을 파헤치는 시간들이 낭비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영광의 시대는, 바로 지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