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김제선
어머니 이연옥 드림.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의 이름보다는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어머니라고 불리우는 일이 더 많아진다고 합디다. 이름 하나 부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터라, 오랜만에 이름 석 자를 적어봤습니다.
편지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본래 입에 담기도 힘든 것들이 펜이라도 잡으면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이런저런 말들이 술술 나오기 마련입니다.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분명 개구지고, 재롱도 잘 피우던 아들이었는데 세월 덕분인지 말보다는 무소식으로 소식을 전할 때가 더 많습니다.
사실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무탈한 일상들이라, 무슨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동안 받은 편지들의 성의를 봐서라도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 있었던 <연탄길>이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집 안에 연탄가스가 새서 온 가족이 잠든 사이에 다 같이 세상을 떠날까 봐 한 이불을 덮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중 아버지의 부탁에 딸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대목이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옛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략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가서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여담이지만 그때 읽었던 책들 덕분에 이렇게 변변찮은 글재주로 제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갑자기 그 책의 대목이 왜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가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책 한편에 그려져 있던 삽화의 모습이 당시 우리 가족과 쏙 빼닮아 있어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먼 타지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가 있는 두 분에게 썩 유쾌한 예시는 아니겠지만, 불교에서는 자식과 부모의 연이 참 특별한 연이라고 합니다. 그 연이 아주 좋은 연일 경우에는, 부모가 자식의 자식으로 환생한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믿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이 질긴 인연을 어떻게든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아있는 것 같아 어딘가 뭉클했습니다.
아무리 책 수백 권을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지식이 있듯이, 저에겐 가족이라는 존재가 그러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흉흉해도, 가족이라는 존재는 예로부터 늘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같이 굳게 자리를 지키는 존재로 그려져 왔습니다. 아직 가정을 꾸리기에는 턱없이 어린 나이인 터라, 당신들이 주고 가신 사랑이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또 어떤 무게가 담겨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의 손바닥에도 너무 뜨거워 화상을 입는다는 물고기처럼, 때로는 나에게 주어지는 것들이 과분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끄럽지만 그런 사랑이 마치 나를 가둬놓는 멍에처럼 느껴져 몇 번이고 그 정든 외양간을 뛰쳐나오려 했던 적도 더러 있었었습니다.
그래서 그 외양간을 나온 지금, 얄궂게도 나는 길 잃은 강아지처럼, 제 주인을 잃고 헤매는 동물처럼 우왕좌왕하는 꼴이 퍽이나 우스워 보입니다. 그래도 내가 살아갈 이유를 놓지 않는 까닭은, 하나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인 탓이며 또 다른 하나는 마치 철없는 자식의 죽음을 제 죽음처럼 뼈저리게 슬퍼할 당신들의 얼굴을 보기 싫어서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언젠가 나에게 자식이 생기고 또 늙어서 지금의 당신들과 같은 나이가 된다면. 그때쯤 가서야 당신들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나는 이 세상이 참 무섭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흉흉한 소식들은 끊기지 않으며, 때로는 나 자신조차 그 흉흉한 소식이 될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글을 적고 보니 늙은 부모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내용보다는 가슴을 뒤흔드는 내용인 것 같아 미안합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손과 손을 꽉 부둥켜안은 채로 이 편지를 전할 때가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더 밝은 미소로 당신들을 반겨주려고 합니다.
날이 덥습니다. 이제 한국의 여름도 당신들이 있는 곳의 여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코웃음을 칠 당신들의 얼굴이 선합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3.06.24
아들 김인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