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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Oct 24. 2023

어느 날 외할머니가 죽었다

외할머니가 죽었다. 그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이 떠오르는 대목이지만, 애석하게도 이 일은 책 속의 일이 아닌 당장 우리 가족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날은 6월 28일 오전 9시쯤이었다. 이제 막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컴퓨터를 켜고 있던 참이었다.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텍스트로 받아본다는 건 당연하겠지만, 생각보다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무미건조한 검은색 활자들이 우리 할머니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소식을 전하는 순간에도 외할머니의 죽음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살았다. 경상도에 얼마나 오래 사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 말로는 외할머니의 말씨가 강원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뒤섞인 출처 불명의 사투리라고 했다. 서울 촌놈인 내가 그런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경상도 토박이인 친할머니, 일명 '시골 할머니'보다는 덜한 사투리 덕분에 외할머니와는 한결 소통하기 편했다. 하지만 가끔 외할머니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가령 외할머니는 아이스크림을 '하드'라고 부르곤 했다. 언젠가 외할머니가 나를 보며 '카드(하드) 사러 갈래?'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이제 막 9살도 안 된 어린 손자의 귀에는 그 '하드'라는 단어 '카드'로 들렸고, 나는 외할머니가 당시 유행하는 유희왕 카드를 아실 정도로 힙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고 나서 한껏 기대감에 차 외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따라간 곳은 아파트 옆 구멍가게였다. 외할머니는 해맑은 얼굴로 멍해진 내게 메로나를 건네주셨다. 그날부터 외할머니는 내게 메로나가 되었다.  


서울에 있을 때면 집에 있는 게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나는 할머니 집에 가면 유독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많아졌다. 집 앞에 있던 장미 공원, 아파트 놀이터의 흙바닥 등. 우리의 발걸음이 닿는 모든 곳이 우리의 놀이터가 되었고,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장난감이 되었다. 부러진 나뭇가지는 무엇이든 벨 수 있는 멋진 칼이 되었고, 누군가 버리고 간 과일을 싸는 플라스틱 모형은 근사한 모자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유일한 손자였던 내가 장손이 되고, 사촌 동생들이 생겨날 때쯤. 온 가족이 필리핀으로 떠나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오게 됐던쯤. 까까머리로 처음 나온 신병 휴가에서 외할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외할머니는 의자가 아닌 휠체어에 작은 몸뚱이를 얹고 계셨다. 외할머니와 루게릭이라는 지독한 병의 악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 질긴 악연은 그제야 끝이 났다. 


6월 28일, 장례식장 달력에는 빨간색 글씨로 철도의 날이라고 써져 있던 날. 문득 어디선가 사람이 죽으면 저 머나먼 우주의 별이 된다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교회 목사님의 위로보다, 주변인들의 안부를 전하는 메시지보다 우습게도 그 이야기 하나가 퍽 위안이 됐다. 여담이지만 외할머니 앞에 붙는 외(外)라는 수식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히 할머니가 우리 사람이 아닌, 타인처럼 구는 것만 같아서. 어느 집안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지인처럼 대하는 것만 같아서. 외할머니와 나 사이에 엮인 그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고작 그 단어 하나로 마치 아무것도 아닌 한 때의 순간처럼 취급되는 것 같아서 그 단어가 참 싫었다. 나에게 할머니는, 그저 할머니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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