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냐.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
‘나는 문둥이다. 이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 슬프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 한하운
13화 / S#54 - 술집 골방 (밤)
동훈이 울음을 참으며 담담히 말한다.
동훈 아부지가 맨날 하던 말...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말을 나한테 해줄 사람이 없어. 그래서 내가 나한테 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가끔씩 한하운의 시집에 쓰여 있던 글이 떠오른다.
‘나는 문둥이다'라는 문장과
‘아무렇지도 않다. 슬프지도 부끄럽지도 않다'라는 문장 사이에서 멈칫하게 된다.
그 사이에 휘고 굽어 있었을 길들을 떠올려본다.
그가 걸어야만 했을 그 길들.
한센병을 앓던 몸보다 더 많이 문드러졌을
그 마음이 붙든 결론은 결국.
'아무렇지도 않다..'
믈론 정말 아무렇지 않아서는 아닐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결론에 이르러야 살 수 있기 때문에 겨우 붙들게 된 문장일 것이다.
나의 아저씨에서 동훈(이선균)이 했던 말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위협하는 나날들 속에서
그가 붙들 수 있는 말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다'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것에
가까워질 테니까.
이런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힘들 때
아니, 그렇게 힘들 때가 돼서야
겨우 불경하게 신의 존재를 떠올린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변명하지 않아도 입을 열지 않아도
다 아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믿음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되니까.
신이 있다면 내 마음을 다 알아주시겠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지.
요즘 나는..
하루는 괜찮고 또 하루는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마음속에서 아픈 게, 참을 수 없는 허무함이
올라올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혀 끝에 올려두고 천천히 녹여 먹는다.
그런 말이라도 붙들어야
앞으로 걸어갈 수 있으니까.
사랑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으니까.
이렇게 부족하고 약한 나를
아껴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일 수 있으니까.
한 가수가 남긴 말처럼
때론 어린아이처럼 울며 포기하고 싶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인 어른이라는 것.
다 내려놓지 못하고 넘기지도 못하는
이제 그만 울며 포기하고 싶은 어른으로
자라난 것이 참을 수 없이 버겁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지만 무너지는 나를 본다.
지나간다.
다 지나간다.
그때가 되면…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