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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Mar 03. 2024

"그냥, 뚫고 갑시다."

가시밭길이 끝나면 덤불길이 나오고 이어서 진흙탕길이 나오는 게 인생

“한번 그렇게 생각해 보셨습니까? 가시밭길이나, 찔리고 힘든 길이나, 그 어두운 터널이나.. 이런 것들은 앞으로 결코 앞으로도 한 번도 나아지지 않고 앞으로 인생살이 60년 동안 계속 그렇게 가야 된다라고 생각해 보셨어요? 전 생각해 봤거든요.


힘든 일이 있을 때 이게 나아질 거다라고 믿는 것, 그래서 앞으로 상황이 좋아질 거다라고 생각하면 자기가 위안이 되잖아요.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일 텐데 저 같은 경우에는 주로 그런 방법을 자주 써요. 이건 앞으로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 평생 내 주위에 꼬리처럼 날 따라다닐 것이다. 그럼 어떡합니까? 그냥 끌고 다녀야죠, 뭐.


그리고 가시밭길이 끝나면은요, 그럼 이상한 덤불길이 하나 나오고요. 덤불길이 끝나잖아요? 사람이라는 게 꼭 이상한 게 진흙탕길이 꼭 나와요. 인생살이에서. 저는 그거 생각하면 참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세모라는 문제에 너무너무 시달리고 거대한 세모로 시달림을 받고 있잖아요? 주위에 동그라미, 네모 이런 문제는 너무 작아서 문제도 안 돼요. 세모만 없어지면 너무 행복할 거 같은데 세모가 없어지면 인간이 어떻게 되냐면 옆에 있던 조그만 동그라미 있잖아요? 그 세모 다섯 배만큼 커진다? 이번엔 그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돼요. 살다 보면 내 주위에 모든 문제가 다 클리어하게 해결이 되고 '야, 나는 정말 이제는 해피해도 되겠다'라는 순간은 절대로 절대로 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희망 주는 사람들 전 나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일은 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요. 뭐 있긴 있겠지. 그리고 그런 일은 오지도 않고 와도 좋지도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살면서 배워야 될 거는 서른네 살짜리인 제가 지금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 아직 결론은 못 내린 문젠데. 가시밭길일 때도 웃을 수 있는 방법, 뭔가 묘안이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고. 진흙탕 길인데 친구랑 막 데굴데굴 하면서 재밌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그 가시밭길하고 진흙길은 우리 살아가는 이상 평생 눈앞에 계속 끝없이.. ((웃음) 이거 재수 없다, 위로하는 거야 뭐야 이게 ㅎㅎ.)) 끝없이 광활하게 펼쳐질 거라고 포기하면요. 편하잖아요. 그냥, 뚫고 갑시다.


/ 신해철, 라디오 상담 중에서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오고, 터널이 끝나면 빛의 순간이 올 거라고 믿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마흔 즈음이 되어 돌아보니 봄날이라거나 빛을 닮은 순간들은 아주 극도의 찰나에 불과했다. 그런 순간에도 주변에는 늘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기도 했고.


2주 전쯤, 엄마를 모시고 새벽에 응급실에 갔다. 다시 코로나에 걸려 나도 몸이 아픈 상태였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으니 불과 4시간 후면 다시 방송하러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겨우 그 상황을 마무리하고 출근을 했다. 일터에서 그에 걸맞은 행동과 태도를 애써 수행했다. 힘들게 올라오는 순간들도 몇 번을 삼켰다. 며칠 후에 팀원들에게 말했을 때 짐작도 못했다고 하니 그럭저럭 잘 수행해 낸 모양이다.


힘든 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됐다. 어제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번 이후 2주 만에 아침부터 엄마를 모시고 다시 응급실에 갔다. 오전 내내 거기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계속 엉치뼈 주변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너무나 아파하고 있었다. 지켜보는 게 정말 괴로웠다. 그런데 응급실에서는 특별히 골절을 발견하지도 못했고 뚜렷한 원인을 찾지도 못했다. 그래도 골절은 아니라고 하니 한시름 놓고 집으로 모셔왔다. 하지만 다른 병원을 찾아 원인을 찾아야 할 거고, 혹시라도 그 사이에 나아지시길 기도해야겠지.



그래. 이 길의 끝에 봄날이 있을까? 터널의 끝이, 평탄한 길이 과연 있을까?


삶은 언제나 내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들로 가득하고 그 역할들은 내가 준비가 돼 있든 아니든 기습적으로 찾아온다. 인내하는 삶을 인내하는 것도 이젠 지겨워져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조차도 나란 사람은 내가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얼굴들이 떠올라 떠나지 못하는 인간이다. 이런 나라도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 때문에 쓰러지지도 못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역시 버텨내기 위해서다. 힘드니까. 너무 힘드니까. 어차피 가시밭길이 끝나면 덤불길이 나오고 또 이어서 진흙탕길이 나오는 게 인생이라면 최대한 낄낄거리면서 웃으면서 버텨보겠다는 굳은 다짐을 남기기 위해서다. 고난이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냥 주어지는 것이고, 그 순간에 한없이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란 존재가 자기를 지키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능동적인 행동이란 무엇일까. 결국 그 고난들 속에서 그걸 견디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와 인연들에게 다정해지는 것이며 서로에게 그런 순간들을 선사하는 것일지 모른다.


어제 응급실을 나와 엄마를 휠체어에서 내려 택시에 태우는데 어떤 남자분이 오셔서 '아이고, 제가 도와드릴게요. 꼭 저희 어머니 같으셔서' 하며 엄마를 안다시피 해서 도와주셨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돌아보면 지옥 같은 순간들을 버티게 해 준 건 그런 다정함들이었다. 엄마가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소화기 내과의 담당 교수님은 늘 귀여운 땡땡이 나비넥타이를 하고 계신다. 나는 그게 얼어있을 환자들에게 건네는 그분의 작은 다정함이자 미소라고 생각한다. 병원은 병만이 존재하는 무서운 공간이 아니라 작은 웃음도 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걸 그분은 패션으로 보여주고 계신다.


한 번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좋은 기사님을 만났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아버지는 기사들에게 길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거나 길을 무례하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 그 말들을 시비로 받아들이고 차 안이 신경전으로 가득해지는 경우도 많아 나는 곁에서 늘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기사님에게 알츠하이머라 그러신 거라고 말해도 분을 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택시 기사님은 기분 좋게 아버지의 말들을 받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뒷 자석 쪽에 손님들을 위해 커다란 통에 사탕들과 껌 같은 간식까지 마련해 두셨다. 그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들은 그 택시를 타고 단순히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이동한 게 아니었다. 오늘 하루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기사분의 마음을 받은 것이다. 그런 마음이 누군가를 살리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를 살리기 위해 다정해야 한다. 진흙탕길을 웃으면서 데굴데굴 구를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가시밭길에서 가시에 찔리면 피와 고름을 짜내고 대신 가시덤불을 발로 차 주며 상처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서로 호호 불어주며 나아가야 한다.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 세상이란 지옥을 여행하게 된, 그런 길에 놓이게 된 소중한 존재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면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누군가는 어제 새벽 내내 응급실에서 밤을 보내고 겨우 출근한 사람일 수도, 누구에게 말 못 할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일 수도,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사람일 수도, 가족과 몇 달간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일 수도, 내 잘못이 아닌 부채 때문에 생활고를 겪는 사람일 수도, 가장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 인정하자. 여기가 지옥이다. 모두가 자기만의 지옥을 견디며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해야 한다.


어차피 지옥을 살아가야 한다면... 가시밭길 지나 덤불길을 지나 진흙탕길을 걸어가며 살아가야 한다면 이 지옥이 한 번은 끝날까를 생각하기보단 어떻게 더 재밌는 지옥길로 만들까를 고민할 일이다. 어차피 길은 정말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으니까.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 역시 저마다의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과 실패와 고난을 나누며 같이 욕하고 웃었다. 각자의 눈에 잠깐씩 눈물이 고이던 순간에는 휴지를 건네며 또 같이 웃었다. 그래. 끝없이 주어지는 고난을 속수무책으로 맞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 이런 건지 모른다. 웃으며 견디기. 맞고, 맞고, 또 맞아서 다운될 것 같아도 죽을 것 같아도 절대 죽지 않는 것. 백 번 천 번을 더 치고 때려봐라, 강하게 타고나진 못해서 견디는 과정이야 위태 위태하긴 하겠지만 웃으며 견딜 거다. 잠깐은 우울해도, 펑펑 울어도, 아무리 다운 돼도,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소중한 존재들과 조금 울고 더 많이 웃으며 통과하고 싶다.


가시밭길 끝나면 어차피 덤불길 나온다.

그냥, 뚫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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