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을 주는 라디오 PD를 꿈꾸던 마음으로 돌아가자.
몇 달 전 한 청취자가 이런 사연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이 방송 들은 지 12년 차네요. 이 시간에 행복 충전합니다. 제 인생의 은혜 같은 시간이거든요. 사춘기 딸을 잘 키워 시집보내고 미국에서 2년 동안 외로운 시절에도 듣고 지금은 너무 편안한 시간이에요. 치매 초기인 시어머님과 몸이 불편하신 친정 엄마.. 매일 이 시간에 행복 충전해서 양 어머님 케어하는 게 하나도 안 힘들어요.. 그동안 듣기만 하다가 감사 인사드립니다.
생방송 중에 이 문자를 보고 눈물을 삼켰다.
언젠가부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과 부모님 병간호를 언제까지 병행할 수 있을까 고민해 왔다. 현실에서 시작된 '이대로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자주 바뀌기도 했다. 이 사연이 도착했을 때는 엄마가 갓 퇴원하고 돌봄이 많이 필요하던 시기여서 휴직도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원한다고 휴직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그러니 내려놓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돌봐야 할 것들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고, 내 책임인 일들을 내던질 수도 없었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중에 저 사연이 도착했다. 저 사연에서 '시어머님'을 '아버지'로만 바꾸면 나와 저 청취자의 상황은 거의 동일했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알츠하이머 치매이신 아버지...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은 내 손과 케어가 필요하다. 워킹맘이 아이를 돌보듯, 워킹딸(..?)인 나는 퇴근 후와 주말에는 많은 시간을 돌보는 일에 쓴다.
그런데 비슷한 상황의 청취자가 방송 덕분에 두 분의 환자를 케어하는 게 하나도 안 힘들다는 이야기가 도착한 것이다. 사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어떤 응답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내가 만들고 있는 방송이 누군가에게 저런 위로를 준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만들고 있는 방송의 가치를, 나아가서는 내가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응답을 받은 것 같아서. 라디오 사연을 받다 보면 이 세상에 얼마나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또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은지 알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다면.
왜 라디오 PD가 되었나.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자라면서 라디오를 통해 얻은 위로가 그만큼 컸으니까.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같았던 부모님은 의지하기에는 어려운 존재였기에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없었다. 그 자리를 대신해 줄 언니나 오빠도 없었다. 모르는 게 많은데 물을 곳도 기댈 곳도 없는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배운다. 나에겐 그게 라디오였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위안을 건네던 저 너머의 사람과 음악.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해도 됐던 시간. 말과 음악을 듣기만 해도 괜찮아졌던 위로의 시간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쭈뼛거리지 않아도 되는 그 세계에선 혼자여도 부끄럽거나 외롭지 않았다. 삶의 크고 작은 고난들을 두고도 누구나 그런 거라고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던 그 시절의 DJ와 프로그램에는 한참 못 미치겠지만, 그래도 내 일이 누군가에겐 그 하루를 버텨낼 힘을 충전해 준다는 것이 감사하다. 여전히 매일 삶의 무게에 짓눌리며 살아가고 있는 나지만 내게 허락되고 주어진 날들이 언제까지든 힘들어도 잘 걸어가고 싶다. 이런 글을 남기는 건 역시 버티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자세를 바로 하고.
어려움, 불안, 원망과 두려움, 의구심, 공포...
뒤로 하고 다시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