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편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영 Nov 05. 2019

누나의 편지

수능을 앞둔 너에게

사랑하는 동생아, 깨비야, 어느덧 날이 많이 춥다.

누나에겐 24번째 겨울이, 너에겐 20번째 겨울이 이렇게 찾아왔네. 너가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 안방에서 자고 있던 작고 조그맣던 모습을 나는 똑똑히 기억해. 그런데 이젠 아빠보다도 훌쩍 커서 벌써 두 번째 수능을 눈 앞에 두고 있네.

우리, 아가 때

그동안 말썽 한 번 안 부린 동생이라고는 나도, 너도 말 못하겠지만(ㅋㅋㅋ) 참 착하고 밝은 동생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거야.

힘든 친구를 보면 그렇게 도와주려고 하고, 예쁜 짓을 하고선 밤늦도록 누나한테 이야기해줬지.

내가 원주에 가는 날이면 무슨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늦게까지 이야기하다가 엄마 아빠한테 많이 혼났잖아. 기억나지? 그렇게도 정 많고 활발한 너가 누나는 참 고맙고 좋았어.


그렇게 한없이 밝기만 해서 가끔은 걱정됐던 너가 처음으로 정말 많이 우울해 보이고, 진지해 보였던 순간은 작년 겨울이었어.

수능의 여파가 너에게 참 컸던지 우울한 목소리로, 슬픈 목소리로 '누나 나 어떡하지?' 묻던 너.

아주 많이 좌절할 줄 알았어.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는 말, 딱 그 말처럼 너는 긴 여정을 주저 없이 시작하더라고.


1년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깨비야.

너의 한계에 끊임없이 부딪히고 넘어졌겠지만 그만큼 삶에 대해, 너에 대해 많이 알게 된 1년이었겠지?

매일 말하지만 난 너가 성적이 오른 것보다도 공부를 즐거워하게 된 게 기특하고,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게 기특해. 참 많이 성숙해졌더라. 그리고 누군가는 참 스트레스받고 예민할 시기를 특유의 무던함과 활기참으로 잘 이겨낸 게 기특해. 대단해.


대학 가기 싫다고 매일같이 말하던 너가 대학 가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할 거라고 말하게 된 것,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너랑 같이 수학 문제를 의논하게 된 것. 이런 걸 보면 우리는 조금씩 변하고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우리의 경험에 기반해 자꾸만 변화할 거야.

누나는 지금처럼 너가 점점 더 멋진 사람으로 변화했으면 좋겠다. 어떤 대학, 어떤 과에 가던지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에 대해, 너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갔으면 좋겠어. 세상엔 공부보다, 성적보다 중요한 게 너무 많고, 학업 말고도 배워가야 할 게 너무 많잖아. 너가 어느 하나 빼먹지 않고 그런 것들을 다 배워가며 쑥쑥 자랐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누나는 너가 현실에 안주하거나, 순응하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거침없이 도전해보고,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열심히 노력해서 바꾸기도 하면서 너가 꿈꾸는 인생, 너가 바라던 어른의 모습에 자꾸만 가까이 다가갔으면 좋겠다. 어떤 순간에던지 늦었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는 사람, 좌절하고 앉아서 포기하기보다는 잠깐 쉬고 또 일어나서 길을 찾아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 너가 그랬었지? 누나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대해 왜 늦었다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맞아. 누나는 너를 통해 또 하나 배워간다. 너가 누나를 보고 들었던 생각이 너의 인생의 순간마다 들었으면 좋겠다.


깨비야, 수험장에 들어가면 시험이 어떻게 나올까 보다, 등급컷이 어떻게 나올까보다 그동안 너가 어떻게 공부해왔는지를 기억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면 돼. 누나가 항상 문제 푸는 스킬을 아는 것보다 개념을 확실히 아는 게 중요하다고 했던 거, 너가 점점 더 왜 그런지 알겠다고 했었지? 수험장에 들어가면 더 확실히 알게 될 거야. 게다가 인강도 다 꼼꼼히 듣고 문제도 정말 많이 풀었으니까, 모든 문제는 다 너가 알고 있는 내용에 기반해서 나올 거야. 마음 편하게 먹고, 그저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보렴!


그리고 시험이 끝난 후에는 자책보다는 스스로에게 박수를, 자만보다는 겸손을. 알지? 수능은 너가 좌절과 자만을 느끼기엔 인생에서 너무 작은 벽이라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깨비 너가 자꾸만 더 행복해지길, 자꾸만 더 성장하길. 때론 벽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서더라도 여유로운 미소 한 번 짓고 벽을 훌쩍 뛰어넘길. 그 첫 벽에 도달한 것 축하하고, 가뿐히 뛰어넘길 응원할게.

매거진의 이전글 교생선생님의 진심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