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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상어 Jun 29. 2020

전원생활 3. 마당 수확


20살 독립 후 내 한 몸 누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해 왔습니다. 

14년 만에 돌아온 부모님의 전원주택은 너무나 안락하네요. 

어릴 때에는 그토록 싫어하던 농사짓는 시골 생활도 

지금은 평화롭고 너무나 좋습니다. 

언제까지 집에서 지낼지는 모르겠지만,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맛있는 시골밥상을 기록합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족들이 모여 저녁을 먹어도 아직 날이 밝다. 여름이 되면 오후 5시 넘어서의 저녁 시간이 소중하다. 뜨거운 햇빛은 살짝 접어두고 선선한 여름 공기가 느껴진다. 노을이 조금씩 다가오는 이른 초저녁에 마당 수확을 한다. 


마당에 감자를 심었던 곳은 이미 땅 정리를 마쳐 콩을 심었다. 올해 고추는 잘 자라고 있지 못해서 걱정이다. 거의 죽어가는 고추 밭 두 고랑 정도는 배추를 좀 더 많이 심을 예정이다. 큰 농사 구역을 제외하고도 남는 땅에는 소소한 반찬거리를 심는다. 


여름 내 계속 자라는 방울토마토, 내가 좋아하는 꽈리고추, 애호박과 늙은 오이 노각이 자리를 잡았다. 봄에 심은 상추는 여름 상추에 자리를 내어 주었고, 매일 먹던 양상추도 끝물이다. 뒤란에는 뽑아낸 상추를 기다리는 닭 열일곱 마리가 산다. 


시골의 여름 냄새를 맡으며 시골 소쿠리에 간식으로 먹을 토마토, 좀 더 모아야 반찬을 만들 수 있는 꽈리고추, 내일 반찬이 될 노각을 담는다. 닭에게 사료를 주고 계란이 얼마나 나왔나 살핀다. 파는 계란도 먹는데, 친환경 동물복지 앞마당 계란의 맛은 확연히 다르다. 마당 여기저기 뒤지고 다녔더니 한 소쿠리 가득 수확을 했다. 

마당 수확 한 소쿠리 

집 문 앞에 앉아서 마당을 살펴본다. 새소리, 바람 소리가 들리는 우리 집. 강아지가 뛰어다니고 닭들이 자라는 집. 콩 심은 곳에 물을 줘야 하고, 이제 뜨거운 여름이 되면 새벽에 고추를 따야 한다. 매일 마당과 밭을 관리하고, 관리하는 만큼 땅에서 받아서 먹을 수 있는 곳. 새삼 이런 환경을 묵묵하게 유지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우리 집 닭장 - 이것이 친환경 유기농 동물복지

집 앞에는 논과 밭 외에는 없고, 슈퍼를 가려면 차로 10분을 나가야 하는 시골이다. 학창 시절에는 어찌나 부끄럽고 싫던지, 시내에 살고 싶었다. 친구들 만나기도 편하고 늦게까지 놀 수 있고, 필요한 건 바로바로 살 수 있는 곳이 부러웠다. 기를 쓰고 공부해서 도시로 떠나 12년, 해외에서 2년 살고 다시 돌아온 집은 어릴 때의 집과 다르게 다가온다. 


벌레가 많은 건 그만큼 공기가 좋고 자연이랑 가깝게 느껴진다. 편의 시설이 떨어져 있는 만큼 조용한 삶을 살아간다. 뛰어 놀지는 않지만 노을을 보면서 멍하니 앉아 있을 수 있는 마당이 있다. 씨를 뿌리고, 자라고, 수확하고, 식탁으로 올라오는 일련의 과정들이 삶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물론, 이와 같은 평화로움은 빵빵한 와이파이와 더운 여름을 버틸 수 있는 에어컨이 큰 역할을 했다) 


집을 떠나 나의 자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긴 시간이 지금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불편하고 일하기 싫던 기억으로 가득 찬 집이 이렇게 평화롭고 충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니, 글로 정리하면서도 새삼 놀랍다. 


오늘 나의 수확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사회적 기준의 수확들만 생각했다. 예를 들면 나의 능력을 보여줬는가? 성장했는가? 연봉을 더 받을 수 있는가? 지금은 조금 다른 수확들을 생각해 본다. 오늘 나를 위한 운동을 했는가? 부모님과 밥을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했는가?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돈을 벌었는가? (요즘 재택 알바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나를 위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가. 


우리 집 앞에서 부모님의 정직한 노동으로 자란 수확물을 보면서, 나 자신을 위한 오늘의 수확은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덧, 비가 엄청나게 내리는 늦은 밤에 갑자기 물이 안 나온다. 아빠가 모터를 확인하러 나가셨다. 평화롭지만 자급자족이 필요한 우리 집. 



우리집 막둥이 쑥쑥 자라고 있다. (생후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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