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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May 03. 2023

읽지 않아서, '생각하며' 읽지 않아서...

결국은 '스.불.재'였더라고요.

꽤 오랫동안 글에 게을렀습니다.

거의 1년을 아무것도 쓰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잘 써지지 않는다'든가, '생각이 맴돈다'라는 식으로

일종의 푸념 같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글쓰기가 힘들었다는 건,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꽉 막힌 것처럼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생각하려는 것 자체가 억지로 쥐어짜는 느낌.

어쩌다 쓸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도,

어느 순간 뚝 끊겨 이어지지 않거나,

금세 다른 생각이 치고 들어와 흐릿해지는 느낌.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고,

그때마다 한숨을 쉬며 쓰기를 멈추다 보니,

어느 순간 계속 멈춰 있는 꼴이 돼 버리더군요.

쓰지를 못하니 감도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의욕이 떨어져 더 못쓰게 되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악순환에 빠져 살았습니다.


솔직히, 슬펐습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던 마음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 내 마음, 내 상상의 산물들로 빈 종이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기뻤던, 순수한 마음.

평생 뭔가를 쓰며 살고 싶다 했던 단단한 소망.

그 모든 초심이 멀어져 버린 것 같았거든요.


어두운 방에 뜬 눈으로 앉아 고민했었습니다.

울적한 기분에 잠겨 운 적도 있었죠.

뭐라도 쓰고 싶은데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모순.

그걸 이해해 줄 사람이 주위에 있었다면...

조금은 나았을까요?

글쎄, 지나버린 일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는 거겠죠.


.

.

.


도와줄 이는 없으니,

어쨌든 스스로 극복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책을 잡았습니다.

다른 방법은 알지도 못하고,

생각할 여력도 안 됐거든요.

대신 뭘 써야 한다는 강박을 꾹꾹 눌러가며,

그냥 읽었습니다.

읽고 또 읽기만 했습니다.

써야 한다는 생각이 밀고 나오려 할 때마다,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채워 넣으면서요.

그렇게 몇 권의 책을 그냥 읽기만 했습니다.


두어 달 정도 시간이 지나자,

책을 읽는 동안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기존과는 달리 뚝뚝 끊기지 않는, 온전한 생각들이요.


그리고 드디어 얼마 전부터,

어지럽던 머릿속이 맑게 는 기분이 들고 있습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요.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지 거의 6개월 만의 일입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원인은 정말 단순하고도 뻔했던 겁니다.

읽기에 게을러서.

생각하며 읽기에 게을러서.

남의 것을 완전히 등진 채,

내 것을 쓰는 데만 급급해서.


욕심. 아집. 자만. 거기에 (타고난) 게으름.

이 모든 게 합쳐져 빚어낸 수년간의 비극.

세상에나... 그랬던 거였습니다.

결국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빠져있던 거였습니다.

끝없이 깊은 수렁이라 좌절하던 시간이,

얕은 개울에서 허우적거리던 셈이었습니다.


참......

이렇게 낯 뜨거울 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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