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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Oct 13. 2022

쓰지 못하는 이유

들여다보고, 마주하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오늘도 또, 쓰지 못했다.

자괴감이 든다.

스스로에게 '환멸'이라는 단어를 덧붙인다.

내게 꿈이라는 건 고작 이 정도였을까.

절박함이 부족한, 흔한 허세였던 걸까.


뚝.

멈춘다.

관성을 타고 내달리는 부정적인 생각.

그것들이 더 이상 날뛰지 못하도록 고삐를 당긴다.

비난은 쉽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음(-)의 합리화를 부추기고,

스스로를 더 어두운 곳으로 몰아넣을 뿐.


방향을 바꾼다.

생각을 한다.

무엇 때문인가.

펜대를 붙잡고 늘어지는 녀석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제법 시간을 들여 글을 썼던 덕분에,

내 생각을 글로 적는 일을 어렵게 느낀 적은 없다.

다만, 부쩍 자기 검열이 심해졌음을 깨닫는다.

스스로의 아이디어에 습관적으로 반론을 제기해보는 일종의 '완벽 강박'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자아 1'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자아 2'가 반박하고,

다시 '자아 3'이 그것을 옹호하면 '자아 4'가 나타나 판을 뒤엎어버리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렇게 버려진 아이디어만 해도 수백 개다.


요즘 내 머릿속이 이렇다.

또 한 가지.

'공개 강박'이다.

그동안 글을 쓸 때면 항상 따라다녔던 녀석이다.


어딘가에 공개돼야 한다는 의무감.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오만함.

이런 것들이 언젠가부터 늘 머물러 있었다.

스스로 튼튼한 족쇄를 만들어 둔 셈이다.




첫 번째.

'완벽 강박'에 대한 반성.


고작 한 사람이 떠올린 생각 한 조각이 완벽할 수는 없다.

공부와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들조차도 아이디어와 이론을 두고 반박을 거듭한다.

하물며 '일반인 1'에 불과한 내가 무슨 재주로 반론 없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을까.


생각의 불완전함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하늘로부터 재능을 받아 태어났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저 괜찮은 문장을 아주 가끔 뽑아내는 정도일 뿐. 

당연한 객관을 애써 부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순간의 생각이든, 숙고의 결과로 빚어낸 깨달음이든, 반론은 치고 들어올 수 있다. 

언제 어떤 타이밍으로든.

그러니 그저, 자유롭게 쓰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겸손함만 갖추면 될 일이다.


두 번째.

'공개 강박'에 대한 반성.


모든 글을 공개해야 할 필요는 없다.

기왕이면 공개하는 편이 더 많은 이점을 갖는다.

하지만, 권장사항일 뿐 의무가 아니다.

지극히 사적인 하루의 기록을 공개하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일 테니까.


드러내야 마땅하다 싶은 주제일지라도,

그런 목적으로 써 내려간 글일지라도,

당장 공개하고 싶지 않다면 덮어두면 된다.

그것이 비난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실패한 글일 수도, 단순히 조금 부족한 글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그대로 버려지지는 않는다.

생각을 거듭한 결과로 나온 모든 것은 높은 확률로 이미 '나의 것'이기에, 언제든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


그대로 뒀다가 보완돼 나올 수도,

토막토막 나눠지거나 통째로 재활용될 수도,

혹은 아예 해체돼 재구성될 수도 있다.

지금껏 적지 않은 글을 썼다 지워본 경험에 의하면, 한 번 썼던 글은 어떻게든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내게 중요한 것,

늘 잊지 말아야 할 진리는 단 한 가지다.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생각하고 쓰는 것.

그것이면 족한 것이었다.

늘 그래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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