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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Oct 31. 2023

의욕을 위한 마중물

부지런함을 부르는, '사소한 성취' 하나

저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주말 아침 눈을 뜬 채로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깨며 하루종일 보낼 수 있을 정도.


누가 봐도 '저게 무슨 짓인가'라며

혀를 차게 만들 자신(?)이 있을 정도로요.


저런 하루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저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거의 100% 자괴감에 빠지게 되거든요.



그걸 알면서도 왜 이리 게으를까.

생각해 본 끝에 나름의 답을 얻었습니다.

공상과 망상을 즐기는 본능.

도무지 쉴 줄 모르는 머리를,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탓이더군요.


작게 시작한 생각 하나가 무럭무럭 자라,

그럴싸한 결과까지 이어지는 패턴.

한 시간만 생각에 빠진 채 보내면,

머릿속에서는 몇 년이 흘러가기도 합니다.

창작에 관심이 많은 입장에서는,

그럴싸한 세상 하나가 탄생하기도 하죠.

그러다가 문득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동안 머릿속에서 만든 모든 것이

일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그렇게, 허무함에 빠져버리죠.


생각이 많은 편에 속하는 분이라면,

조금은 공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공감 못하신다 해도 어쩔 수 없죠.

그냥 저라는 인간이,

이렇게 생겨먹은 탓이니까요.


이미지 출처 : 네이버웹툰 <용이 산다>


스스로 게으르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대강 알게 된 후로,

그래도 조금씩 애는 써왔습니다.

게을러터진 본성을 이겨내려는 발악.

열에 일곱 정도는 실패하고 마는 좌절.

과연 이런 비루한 타율을 갖고도,

감히 노력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거라도 해온 덕분에

지금껏 사람 구실은 하며

살고 있지 않싶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ㅜㅜ (이미지 출처 : 딱 봐도 위에 그 웹툰)


예~전에 썼던 어떤 글에서,

'근익근 태익태'라는 말을 쓴 적이 있습니다.

뜻은 뭐... 별 거 없습니다.


부지런할수록 부지런해지고,
게으를수록 게을러진다.


부익부 빈익빈을 비틀어서 썼다가,

은근히 마음에 드는 바람에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참 게으른 인간이지만,

어떤 날은 무척 부지런해질 때가 있습니다.

한 번 뭔가를 시작했다가,

"한 김에 이것도 마저 하지, 뭐."라며

다른 무언가를 또 하는 식이죠.

부지런함이 발동한 어느 날이면

게으름으로 미루고 미루던 것들을

한꺼번에 이어서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느 주말 아침, 늦잠 없이 일어납니다.

일찍 눈 뜬 김에 아침 운동을 성공(?)합니다.

땀 낸 김에 방 청소를 하고,

괜히 거슬리는 옷장도 정리합니다.

몸에 열 낸 김에 샤워기 필터도 갈고,

쌓여 있던 커피용품 세척/소독을 하고,

책 한 권 기분 좋게 완독한 ,

독서록과 일기를 쓰며

"아, 오늘 정말 보람찼다"라며

뿌듯함 한 사발 원샷으로 마무리하는 거죠.


각각의 일들에 연결고리는 없습니다.

그냥 '뭔가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연료 삼아,

순간순간 눈에 들어온 다른 무언가를

이어서 시작할 따름입니다.

그게 반복되며 부지런해 보이는 거고요.


어쩌면,

이 아이러니한 성질머리 덕분에

게으름으로 망가질 위기에 처한

삶의 많은 부분들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쓰고 보니 왠지 맞는 것 같다... 젠장...)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웹툰 <내가 키운 S급들>

고로,

천부적 게으름을 좀 뒤집고 싶은 요즘,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시작을 위한 성취'라는 겁니다.


크고 작은 것을 떠나,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그것이 가져오는 '근익근'에 대한 욕심.

즉, 의욕을 퍼올리기 위한

'마중물'이 필요한 겁니다.


이 글을 되새기며,

조금씩 스스로를 바꿔보려 합니다.

마구 떠오르는 생각,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상상

멈추게 할 도리는 없습니다.

미력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생각 속의 세상과

현실의 세상을 분리하는 것이겠죠.


당연한 일을 늦게 깨닫는 바람에

잃어버린 많은 시간을...

이제라도 만회해보려 합니다.


오늘 이 글 한 편도,

또다른 무언가를 이어가기 위한

마중물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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