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쁜 텀블러의 배신, 이제는 제대로 선택해야할 때
시중에 판매되는 텀블러 일부 제품 외부 표면에서 기준치의 최대 880배에 달하는 다량의 '납'이 검출됐다. 한국 소비자원이 밝힌 납 검출 텀블러에는 유명 커피전문점의 제품도 포함되어 있어, 소비자로 하여금 큰 충격을 안겼다.
'납 범벅 텀블러'로 인한 배신감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텀블러라는 제품에 담겨있는 소비가치가 다양하고 심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텀블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텀블러 소비가 증가한 이유는 제품의 편리성이나 매력적인 디자인 때문이 아니었다. 환경보호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확대됨에 따라 텀블러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크게 늘었던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많은 기업들이 환경친화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홍보 및 마케팅 전략에 있어 텀블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을 이해할 수 있다. 즉, 텀블러 소비 트렌드에는 제품의 기능적-심미적 가치 이전에 윤리적 소비가치가 그 기저에 깔려있다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기업의 이익이라는 그늘에 가려져, 텀블러의 윤리적 본질은 점점 잊혀져가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 우리는 이번 '납'쁜 텀블러 이슈로 인해 텀블러의 본질에 대한 의문과 마주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본 글에서는 '납 검출 문제' 외에도 우리가 짚어봐야 할 텀블러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고, 앞으로 펼쳐질 텀블러 소비의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텀블러는 스테인리스 소재로 만들어진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말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말 그대로 '녹이 슬지 않는 강철(Stainless Steel)'로 부식이 잘 되지 않고 안전성과 내구성이 뛰어나 주방 용기 재질로 널리 쓰이는 소재이다. 최근 납이 검출된 텀블러를 살펴보면 납은 모두 표면 코팅 페인트에서 검출된 것으로, 스테인리스 용기 자체는 매우 안전하다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텀블러는 위생과 건강 안전 측면에서 많은 문제들이 나타난다. 텀블러 위생 및 안전 문제의 대부분은 세척 관리가 잘 안되는 것이 그 원인이다. 텀블러는 일반 주방 용기와 달리 휴대용품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세척해야 할 상황이 빈번하다. 그러나 세척 장소나 세척기 등 인프라가 부족해, 외부에서 세척 관리를 잘 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커피 전문점에서 텀블러 세척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물로 대충 헹구는 게 대부분이고 우유나 과일 음료 등을 마신 지저분한 텀블러는 세척을 부탁하기가 쉽지 않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철저한 위생 관리가 안 된 텀블러는 강아지 장난감과 비슷한 수준의 세균이 번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흡한 관리는 내열성 등의 기능 유지에도 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텀블러의 세척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텀블러가 넘쳐나는 것도 큰 문제이다. 필자 또한 생일 선물, 이벤트 당첨, 행사 참여 선물 등을 포함해서 올해에만 벌써 여섯 개의 텀블러를 받았다. 집에 있는 크고 작은 텀블러만 합쳐도 20개 이상은 될 것 같다. 정작 자주 사용하는 텀블러는 한두 개 뿐인데 말이다. 실제 사용률도 많이 떨어진다.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을 가면 시즌마다 새로운 디자인의 텀블러들이 진열되어 있다. 매력적인 디자인과 시즌 한정이라는 카피는 소비 욕구를 자극한다. 이쯤 되면 텀블러의 무분별한 공급이 오히려 환경과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든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흐름이지만, 이를 이익적 목적으로만 이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텀블러는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올바른 텀블러 문화는 어떻게 정착될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기업과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텀블러 사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세척 인프라를 갖춘다면 텀블러 사용 문화가 보다 급진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텀블러에 대한 기업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 텀블러를 판매하거나 이를 활용한 마케팅을 기획함에 있어서 무엇이 진정성 있는 활동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이제는 단순히 텀블러 이용 혜택을 주거나 텀블러를 선물하는 것만으로는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없다. 진정성과 책임감이야말로 기업이 추구해야 할 차별화된 가치이며 텀블러 소비가 추구하는 본래 목적일 것이다. 글로벌 기업 파타고니아는 소비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꼭 필요하지 않다면 제발 우리 옷 사지 마라"라고. 적어도 텀블러를 취급하고 환경과 사회를 위한다고 말하는 기업이라면 이러한 '파타고니아의 진정성과 책임감'을 본 받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미래 소비 시장에서 지속적인 소비자 만족과 충성도를 이끄는 차별화된 강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기업의 움직임은 해당 기업의 이익을 넘어 사회문화적 관점에서도 큰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끝으로, 해외 스타트업 기업들을 시작으로 등장하고 있는 미래형 텀블러를 통해 텀블러 시장의 미래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NOERDEN에서 출시한 스마트 텀블러 LIZ는 단 한 번의 버튼 클릭만으로 내부의 유해 바이러스 및 박테리아를 파괴하는 기능을 갖는다. UV-C를 통한 광기능으로 99.9% 멸균 효과를 보인다. 세척과 관리라는 텀블러의 가장 큰 단점이 버튼 하나로 해소되는 것이다. 온도 제어 기능도 탑재되어 있어, 최대 12시간 동안 뜨겁고 24시간 동안 차가움을 유지할 수 있다. 2시간마다 물을 섭취하라는 알람이 울리는 수분 케어 기능은 사용자의 건강 관리도 돕는다.
LIZ와 같이 스마트 기술이 탑재된 미래형 텀블러의 등장은 텀블러 시장과 문화에 큰 변화를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의 텀블러는 편의성이 크게 부족해, 일회용 컵의 대체품 역할조차도 제대로 못 해내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처럼 텀블러의 기능적 가치가 향상됨에 따라 텀블러 사용 비율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여러 개의 텀블러 대신 제대로 된 하나의 텀블러를 소유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며 그것이 올바른 텀블러 소비문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