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옳은 ep.33
한창 꽃구경을 즐겨야 할 4월이지만 기상이변으로 기후가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햇빛은 회색빛 구름 속에 숨어 다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이런 기후 덕분에 집 밖으로 나가기보다 스마트폰 세상에 더욱 쉽게 접속하는 것 같다.
스마트폰 속 세상에는 가짜뉴스, 부자 되는 법, 연예인 가십, 정치적 대립을 자극하는 영상 등이 넘쳐난다. 우리는 시시각각 관심을 끌기 위해 만든 불필요한 자극에 쉽게 반응한다. 스마트폰 속 화려한 환영은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복잡한 문제 해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또 쉽게 동화되어 비판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사고를 단순하게 만든다. 그래서 스마트폰은 4차산업 시대의 새로운 마약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럴 땐 잠시 스마트폰을 끄고 예술세계로 도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으로 예술이 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 영화, 인생 음악, 인생 작가 등 각자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나만의 예술작품이 있을 것이다. 마음을 깊이 울리던 작품에 빠졌을 때를 생각해 보자. 예술작품에 빠져들어 갈 때 시공간은 사라지고 오로지 나와 작품의 교감만 남는다.
스마트폰과 다르게 예술작품과의 교감 속 다양한 감상과 해석은 일상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만들어 주고 사고를 더욱 깊게 만든다. 또 예술이 주는 감동과 기쁨은 견디기 힘든 상황에 새로운 희망과 꿈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사고를 더욱 깊게 만들고 일상을 새롭게 보게 해줄 4월의 주요 문화예술행사 3개를 소개한다.
대학로 소극장 <코델 아트홀>을 이끌어가고 있는 ‘생이 아름다운 극단’ 은 ‘생(生)의 아름다움을 연극적 모티브로 삼아, ‘연극의 다양성’, ‘연극의 문화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순수공연예술단체이다.
‘생이 아름다운 극단’의 연극 ‘강제결혼’은 17세기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배우인 몰리에르가 쓴 작품이다.
젊은 여자와의 결혼을 꿈꾸지만 남는 건 재산밖에 없는 60대 노인 스가나렐과 가난하고 억압적인 집안 출신의 젊고 아름다운 20대 여자 도리메에느의 사랑없는 결혼 과정을 해학과 풍자로 버무린 코미디 연극이다.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각자 다른 입장을 가진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현대문명에 인간 이성의 “절대성”에 대한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이는 마치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현대사회도 어쩌지 못한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자연재해를 연상케 한다. 전통 있는 프랑스 연극을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는 코믹한 각색과 현대적인 춤과 음악으로 준비한 ‘생이 아름다운 극단’의 ‘강제결혼’. 엔데믹 시대의 큰 웃음을 선사하는 연극으로 기회가 된다면 꼭 보러 가길 추천한다.
공연 기간 : 2023년 3월 31일(금) ~ 2023년 4월 2일(일)
공연 장소 : 대학로 코델 아트홀
이천은 도자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특히 조선시대 때 흙, 도자기를 굽기 위한 나무, 도자기의 색을 내는 유약을 얻기가 쉬웠던 곳이기도 하다. 또 한양과도 가까웠던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도자기의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현재까지도 이천 곳곳에 조선시대 도자기를 생산하는 가마터 유적이 남아있다.
도자기의 고장 이천의 고즈넉한 가마터를 따라 산책하면서 커피와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갤러리카페 코유(coyu)를 소개한다.
코유(coyu)는 한국어로 ‘독창적임’을 뜻하는 ‘고유’ + 영어로 ‘함께함’을 뜻하는 접두어 ‘co’의 합성어다. 광주요에서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문화예술공간을 꾸리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꾸려나가고 있다.
코유 주변에 국가등록문화재 제657호, 이천 수광리 오름가마가 눈길을 끈다. 전체 길이가 27m라고 하는데 오늘날 불을 땔 수 있는 장작가마 중 가장 오래된12칸 계단식 가마다. 매년 도자축제가 있기 전 이 가마에 도자기를 넣고 소성하는 등요제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오름가마에 작품이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을 보며 전통 도자의 보존을 위한 감동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행사로 올해도 5월 중에 진행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게 가마를 구경하며 코유에 발을 들이면 순백의 화사함에 톡톡 튀는 컬러로 포인트를 준 전시공간과 카페공간, 아트숍 그리고 코요를 운영하는 도자 브랜드 광주요의 전시공간 및 도자기 숍을 만날 수 있다.
카페에서 주문한 특별히 엄선한 원두로 내린 커피는 묵직한 바디감과 향, 단맛, 신맛, 쓴맛의 적절한 밸런스가 매력적이다. 같이 간 동행자와 함께 한창 맛있는 라떼를 마시며 수다를 떨던 중 카페 공간 한편에 마련된 갤러리에서 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시는 매번 다른 전시로 공간을 꾸린다고 한다. 현재는 호로로 작가의 pork Folk 전시 중이다.
호로로는 작가의 예명이자 작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귀여운 돼지 캐릭터다. 야근을 하다 키보드를 부숴버리는 호로로, 요리에 실패하고 준비하던 식사를 태워버리는 호로로, 커피를 내리다 실수로 흘려버리는 호로로 등을 다양한 호로로를 만날 수 있다.
일상생활 속 유머러스하고 낙천적인 호로로의 모습에 왠지 웃음이 나온다. 예술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외부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일상을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편 내 일상생활과 호로로의 일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공감과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호로로를 통해 스트레스 많은 일상생활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코유의 또 다른 매력은 자연이 둘러싼 풍경이다. 그래서 날이 좋은 날엔 마당에서 자리잡고 햇빛을 즐길 수 있다. 빌딩이 우거진 도시 정글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하며 힐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추천한다.
영업시간 : 월 ~ 일, 오전 9시 ~ 오후 6시
주소 :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경충대로 3234 A동
Pork folk 展 전시 기간 : 2023년 3월 27일(월) ~ 2023년 05월 28일(일)
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 초 현대인 고독과 단절, 냉소와 외로움을 담아낸 대표적인 미국의 현대미술작가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호퍼가 활동하는 시기에는 세계1차대전이 끝나고 경제 대공황이 왔을 때라고 한다.
당시 미국의 상황은 엄청난 우울감과 좌절감이 일상에 서려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주로 미국 사회의 암울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많은 사람이 호퍼의 작품을 보면서 코로나로 모든 활동이 좌절되어 일자리를 잃거나 사람들과 단절이 되었던 때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만큼 호퍼는 팬대믹시대의 화가로 떠오르고 있다.
“위대한 예술이란 예술가의 내면의 삶을 밖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호퍼의 말처럼, 과묵했던 그에게 그림은 세상과의 소통 그 자체였다. 그는 일상적인 것을 관찰하여 특유의 빛과 그림자, 단순하지만 대담한 구도로 표현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호퍼의 전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국 휘트니 미술관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되는 전시다. 대표작인 밤샘하는 사람들을 볼수 없지만 밤샘하는 사람들의 목탄 드로잉이 전시되어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호퍼의 대표작이 많지 않다. 대신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 온전히 호퍼를 이해할 수 있는 교양 있는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호퍼라고 하면 현대인의 고독을 다룬 작품을 떠올리지만, 그의 예술을 향한 여정은 다양하다. 전시는 안정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로 살던 작가의 인생 초반, 프랑스 체류 기간에 영향받은 인상주의풍의 그림과 빛 연구, 본격적으로 미국인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을 제작하던 시기, 풍경화 작품과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호퍼의 또 다른 모습, 그리고 뮤즈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던 조세핀 호퍼와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호퍼는 일생에 몇 차례 프랑스에서 체류하고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인상주의 특유의 생동감과 다채로운 빛의 표현과 감정선, 그리고 돈을 쫓는 미국인들과 달리 현실을 즐기려는 파리지앵들의 일상생활에 영감을 받아 작업을 이어간다. 하지만 미국의 독자적인 미술 세계를 만들려는 시도로 그의 관심사도 자연스럽게 미국적 풍경으로 옮겼다. 그는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인상주의의 화풍을 이어가지만, 인상주의의 주류였던 프랑스 파리와 완전히 다른 미국의 독자적 정서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번 전시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그의 에칭판화 작품들이다. 실제로 호퍼도 에칭 작업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여기서 에칭이란 동판 위에, 질산에 부식되지 않는 용액을 바르고 그 표면에 바늘같이 뾰족한 것으로 그림이나 글을 새긴 다음 질산으로 부식해서 만드는 판화의 한 기법이다.
호퍼는 에칭 작업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따로 에칭 프레스기를 들여놓을 정도였다. 특히 에칭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라고 한 호퍼의 한마디가 생각났다.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와 날카로운 바늘이 지나가면서 만든 거친 터치는 경제 대공황을 겪은 우울한 미국 사회에 대한 그의 소리 없는 외침처럼 보였다.
전시는 1층에서 3층까지 구성되어있다. 2층과 3층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2층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1층에 전시된 작품 ‘햇빛 속의 여인’이 되어볼 수 있다. 1층에서는 에드워드 호퍼의 다큐멘터리가 상영 중이며 그의 뮤즈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조세핀 호퍼와의 관계를 볼 수 있는 여러 작품과 그의 삽화, 엽서, 메모, 스케치 등이 전시되어 있다. 1층 역시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유지태 배우의 목소리로 녹음한 전시가이드를 3000원에 대여하고 있으니 더 풍부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전시 기간 : 2023년 4월 20일 ~ 2023년 8월 20일
전시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 3층
관람료 : 성인 17000원, 청소년 15000원, 어린이 12000원
카카오 예약하기로 예매하면 따로 티켓발권을 하지 않아도 큐알코드만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티켓으로는 교환되지 않으니 티켓이 필요한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애매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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