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Apr 06. 2024

단 10점의 차이였는데.....

며칠 전 고2 둘째 학교 설명회에 다녀왔다. 이 행사는 고1, 2, 3학년 학부모들을 모시고 전년도 학교의 입시 결과 상황과 전반적인 학교생활 설명 그리고 학교생활기록부를 잘 채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교육 과정과 진학 설명회였다. 처음 그 가정통지문을 받고 든 첫 생각은 ‘고1, 고2, 고3 학생들의 교육 과정은 각각 다를 텐데 왜 이 학교는 같이 설명회를 할까?’였다. 그런 의아심도 잠시, 둘째 학교에서 대학 입시를 위해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해 아이 아빠와 함께 참석했다.


 설명회가 진행된 시간은 단 3시간이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 없이 쉴 새 없이 휘몰아친 행사의 시간이 끝나고 난 뒤 마음 깊이 가라앉은 감정은 허탈함이었다. 물론 프로그램을 진행한 3분의 선생님들은 정말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 힘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또 그런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의 입시를 위해서는 부모님들의 노력이 매우 필요하니 도와달라는 당부 역시 진실되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대보다 훨씬 못 미치는 작년 고3 선배들의 대학 입시 결과를 보고 나니 걱정이 밀려왔다. 3년 뒤 ‘내 아이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무척 불안했다.


 솔직히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교육과정은  ‘대학 입시’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입시에 관심이 없더라도 대학을 진학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입시,’ 그리고 ‘수능’이라는 단어를 무겁고 절실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대외적으로 ‘학생 인권’을 강조하고 ‘혁신학교’를 표방하는 둘째의 학교조차도 이번 설명회의 제일 첫 번째 화두로 고3의 커리큘럼과 작년 1~3등급의 아이들의 입시 결과 결과를 먼저 발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이 지역의 일반고에서는 ‘인 경기’만 해도 잘한 거라고 자축하기에도 마음이 너무 쓰렸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해도 이 정도밖에 결과밖에 안 나온다고? 이렇게까지 내 마음이 요동치는 것은 작년 고3 큰 애의 입시를 막 치른 비교 대상이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공부를 꽤 잘했던 큰 애는 다른 지역의 비평준화 일반고에 진학했다. 이 학교는 매스컴에서 자립형 고등학교도 아니고, 영재고, 과학고도 아닌데 ‘어떻게 일반고가 정시로 명문대를 많이 보낼 수 있을까?’라는 의아한 시선을 받는 곳이었다. 그 학교에서 3년을 성실히 버틴 큰 애는 이후, 정시로 합격한 학교 중에서 원하는 학교와 학과로 진학했다. 과연 큰 애가 다닌 학교와 둘째가 다닌 학교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이는 큰 애가 다닌 학교가 중학교에서 날고 긴다는 아이들만 골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그 학교가 워낙 잘하는 선생님들을 초빙한 탓이라고 했다. 어쩌면 혹자는 사립고등학교와 공립고등학교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두 학교를 보내 본 학부모로서 내가 느낀 가장 큰 차이는 학교 분위기였다. 알다시피, 중학교를 졸업하고 치르는 고등학교의 첫 중간고사는 학교 내신에서 본인의 위치를 자각하게 되는 좌절과 고통의 표지판이다. 큰 애 역시 첫 시험을 치고 난 후 엄청 놀라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아들은 큰 첫 중간고사를 보고 난 후 "너희는 1등부터 꼴등부터 다 가능성이 있으니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지금부터 하면 된다"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고 금방 좌절감을 털어 버렸다. 실제로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난생처음 국어 6등급이라는 결과를 받고 괴로워했던 아들은 응원하는 학교 분위기에 힘을 냈다. 그리고 3년 동안 악착같이 공부해서 작년 2023년 11월, 역대 불수능이라 평가받던 시험 중에서도 그 어렵다던 국어에서 기어이 1등급을 받았다.


 그에 반해,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를 치른 둘째의 등급은 씁쓸한 첫 결과를 받은 후부터 꽁꽁 얼은 얼음판을 디디는 것처럼 계속 미끄러지기만 했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끙끙대던 둘째는 항상 피곤해했고 무기력한 표정을 지었다. 급기야 학교일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아이로 변했다. 어쩌다 학교생활이 어떤지를 물어도 잘 대답하지 않고 ‘학교에 가기 싫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내심 '꼼꼼하고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 힘든가 보다'라고 짐작하기만 했다. 하긴 겨우 4%밖에 안 되는 1등급 안에 들어가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다고 해도 나날이 무기력해지는 둘째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학교 모두, 학생들이 1등급을 받기는 엄청나게 어렵다. 한정된 자리 중에서도 가장 피 터지게 다투는 싸움판이 바로 최상위권들의 내신 전쟁이 아닌가? 입시 경쟁은 고3 실전에서 더욱 치열해진다. 전국에서도 각 학교의 1등급들과 겨루는 입시가 바로 수시전형의 '교과과정'이다. 무조건 교과점수가 좋아야 지원할 자격이 생긴다. 꼼꼼하고 똘똘한 학생들의 경쟁에서 항상 덤벙대고 악바리처럼 공부하지 않은 둘째가 좋은 성적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면 “'교과과정'이 아니라 학교 활동들을 다양하게 평가하는 '종합 전형'으로 대학에 가면 되잖아요.”라고 누군가 반문할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우리 둘째 녀석은 악착같이 학교 활동을 잘 챙기지도 못한다. 아직 가고 싶은 대학의 전공을 정하지 못했다. 게다가 좋아하는  동아리조차 서둘러 들지 못하고 친구 따라 남아 있는 자리를 선택하는 녀석이다. 그런 아들에게 수시모집에서 ‘종합 전형’, ‘교과과정’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마지막 남은 카드, 수능 점수로 가는 ‘정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고에서는 ‘전혀’ 정시대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상하게도 일반고에서의 졸업식 날짜는 항상 1월 초 정시 전형 기간이 시작되기 전인 12월 말로 고정되어 있다. 수시 지원만 우선으로 하는 탓이다. 이처럼 일반고는 정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바로 겨울 방학에 돌입한다. 한마디로 정시는 학생과 학부모가 알아서 준비하라는 이야기다. 그에 반해, 수시와 정시를 모두 목표로 하는 학교의 졸업식은 항상 정시 원서 기간이 끝나고 정시 발표가 나오기 전인 2월 초다. 정시형 학교에서는 1월 정시 원서 기간을 일 년 중 가장 바쁜 기간이라고 규정한다. 실제로 올해 정시 원서를 썼던 1월 초, 큰 애는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으로 엄청 바빴다. 남편과 나는 함께 동행했는데, 학교 교무실은 재수생, n 수생들, 현역 고등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상담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남은 입시 기회 ‘정시’를 잡기 위해 학교, 학생, 선생님, 학부모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우리 둘째는 꼼꼼하지도, 악착같이 공부를 하는 편이 아니라 똘똘한 학생들과의 내신 경쟁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는 너무 어렵다. 그렇다면 정시전형도 고려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둘째 학교의 학사 일정에는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가 없다. 12월 말에 졸업식을 마치고 ‘끝’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 설명회를 듣고 난 뒤 더 혼란스러웠다. 어떤 점이 이렇게 다른 입시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다. 큰 애 학교와 둘째 학교의 차이는 비단 잘하고 못하는 학생들의 수준 때문일까? 아니면 학교 분위기의 차이일까? 혹은 학교 시스템의 차이? 아이들이 각자의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시작되었던 작은 빈틈은 3년이 지날 무렵에는 도저히 메우지 못할 정도로 커져 버렸다.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큰 애와 둘째의 총점수는 단 10점 차이였다. 둘째는 단 10점이 부족해서 큰 애의 학교에 지원을 못 하고 ‘뺑뺑이’라는 불리는 입시 룰렛을 돌렸고 지망 학교 5순위로 이 학교에 진학했다. 1년이 지난 후 그 녀석은 매일 무기력한 표정으로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나선다. 이런 둘째가 내년 대입 입시 경쟁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설명회를 다녀온 후 걱정만 가득 쌓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4년 입시제도의 끝자락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