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개봉한 영국의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영화 ‘예스터데이’는 무명 가수 ‘잭’의 성공담을 그렸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영화에는 전설적인 영국 밴드 ‘비틀즈’의 노래가 주로 나온다. 하지만 그곳에서 ‘비틀즈’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밴드이다. 전 세계에서 갑자기 12초간 정전이 일어나는 날, 밴드 비틀즈에 대한 기억은 지구인들의 머릿속에서 모두 사라졌다. 그 사실을 안 무명 가수 잭은 비틀즈의 명곡들을 자신의 곡인 양 연주하고 점점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예스터데이’는 관객들이 영화 중간중간 잭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비틀즈의 명곡들을 들으며 다시금 음미하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평행세계와도 같은 그 세계 사람들이 ‘감히’ 비틀즈의 노래를 표절한 주인공에게 ‘천재’ 호칭을 붙여준다는 점이다. 그 유명한 영국 가수 ‘에드 시런’조차도 즉석 작곡 대결 이후 잭을 향해 “넌 모차르트고, 난 살리에르다.”라고 말한다. 그저 잭은 예전에 들었던 비틀즈의 곡들을 ‘잘’ 수집하고, ‘잘’ 기억하고, ‘잘’ 전달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벅찬 찬사를 보냈다.
마냥 잭이 눈앞의 찬란한 유명세에 만족할 수만 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기에, 그것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기에 화려한 조명에 휩싸일수록 괴로워한다. 그렇다고 눈앞의 영광된 순간을 놓지 못한다. 짝사랑하는 여자친구와는 이별하고 밀어붙이는 주변 상황에 끌려다니며 고민하고 괴로워할 뿐이다. 그런 혼란의 시간을 보낸 후, 마침내 잭은 엄청난 결정을 내린다.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나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것이다. 과연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만약 본인이 잭의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등등, 많은 물음표가 머릿속을 맴돌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잭이 비틀즈의 명곡을 계속 표절하는 것에 최소한의 죄책감을 느꼈다는 점이다. 그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기에, 그 세계 사람들이 그 표절 사실을 알지 못해도 괴로워했고 힘겨워했다.
사실, 현실 속 사람들은 창작인들의 ‘표절’에 무척 엄격한 편이다. 특히 문학인들의 경우,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기존의 작품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면 몇 년이 지나서라도 꼭 밝혀내고 시시비비를 따진다. 2015년 소설가 신경숙의 소설 <전설>의 한 단락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문장들과 유사하다면 표절 시비에 휩싸였다. 이 사건은 꽤 긴 시간 동안 작가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고, 결국 신경숙이 머리 숙여 사과하면서 마무리되었다. 2024년 소설가 김영하 역시 표절 시비에 불을 붙였다. 그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 '롱블랙' 측이 본인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의 구절을 무단으로 표절해 뉴스레터 소개 문구로 사용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한동안 시끄러운 의견들이 오간 후, 결국 '롱블랙' 측이 "작가님을 포함해 불편함을 느끼신 모든 분께 죄송하다"라며 공식으로 사과하며 일단락되었다.
‘표절’은 다른 사람이 창작한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도용하여 사용하여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발표하는 행위이다. 원문을 재창조하는 ‘패러디’와 특정한 장면과 대사를 ‘오마주’하는 것과는 다르다. 표절 시비를 가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도권을 누구에게 두느냐에 있다. 앞서 언급한 ‘패러디’와 ‘오마주’는 모든 이들이 원본을 알고 있지만, ‘표절’은 원작자를 누구도 알 수 없게 감추고 숨긴다. 한마디로 창작자의 노력과 시간을 한순간에 빼앗는 도둑질이다. 이런 표절 시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요즘, 새로운 기술을 발맞춰 가야 한다는 강박감에 ‘챗GPT를 활용한 글쓰기 수업’을 신청해 듣고 있다. 얼마 전 강사는 AI 서비스를 이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다며 몇 가지 프롬프트(지시어)를 입력해 꽤 근사한 글 한 편을 뚝딱 완성했다.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만약 현실에서 저런 글을 쓴다면 한참을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 바라봤을 그 시간에, AI는 금방 멋진 글을 완성했다. 괜히 심통이 나서 “결국 이건 표절이 아니냐”라고 불만을 말했지만, 강사는 본인의 프롬프트들로 작업하는 거라 ‘표절’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AI 발달이 급속히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신기술이 만든 결과물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제기하고 딴지를 거는 것은 19세기 영국에서 있었던 ‘러다이트(기계파괴운동)’의 역사를 반복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산업화, 자동화, 컴퓨터화’와 같은 기술발전에 반대하며 기계를 때려 부쉈다. 하지만 거대한 신기술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기술발전에 적응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비록 그 결과물이 혹독한 기후 위기로 다가왔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발전된 기술이 준 편리함을 누리면 누릴수록 포기할 수 없었고, 위험성을 인식하면서도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례를 미루어, 결국 AI가 만든 작품에 대한 표절 시비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편리’와 ‘효율’의 명목 속에 묻힐 가능성이 크다. 인간들의 표절 시비와 다르게 말이다. 문제는 앞으로 AI 표절에서 창작자들과 원작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최소한의 제어 장치와 제도를 마련하느냐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편리하다는 이유로 무시한다면 앞으로 인간들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갈지 모른다. AI는 무단으로 긁어오는 사람들이 구축한 데이터와 내용에 대해 ‘예스터데이’의 잭처럼 양심의 가책 따위를 느끼지 않는다. 차갑고 냉정한 AI를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뿐이다. AI 개발이 이루어지는 요즘, 많은 논란이 야기되는 현재, 지금이야말로 AI와의 표절 시비에 대해 이야기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