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학교 안에서의 체벌이 ‘사랑의 매’로 통하는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혈기 왕성한 체육 선생님으로, 반 성적에 남다른 경쟁심을 가진 분이었다. ‘1등 반’이라는 이름을 뺏기기 싫었던 선생님은 길고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반 아이들이 항상 높은 점수를 유지하기 강요했다. 대체로 그런 공포 분위기가 통했는지 우리는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잘 풀리면 좋으련만, 딱 한 번 ‘1등 반’이라는 타이틀을 놓치고 ‘2등 반’이 된 적이 있었다.
그 시험 결과가 나온 날, 담임 선생님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거칠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30명이 넘는 여자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반장, 부반장을 비롯해서 지난 학기 점수보다 1점이라도 내려간 사람은 모두 나와 칠판을 잡아라.”라고 외쳤다. 순간 교실 분위기는 냉랭한 한파에 휩싸였다. 반장을 선두로 우리는 한 명씩 나와 칠판을 붙들었고, 거세게 내리치는 선생님의 몽둥이를 견뎌야 했다.
퍽, 퍽, 퍽
당시 부반장이었던 나는 앞에서 맞고 있는 반장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선생님은 반장과 부반장이 반 아이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며 받은 점수와 상관없이 더 많이 때렸다. 그렇게 맞은 7대의 매였다. 그 몽둥이찜질은 허벅지와 엉덩이에 시퍼런 뱀 모양의 커다란 줄기를 여러 군데 새겨 넣었고, 몇 달 동안 목욕탕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학창 시절은 학교 선생님들의 체벌과 교복 및 머리카락의 단속 그리고 야간자율학습이 당연시되던 시간이었다. 그 당시 선생님들은 미성년인 학생들을 ‘아직 인격이 완성되지 않’고 무조건 ‘바른길’로 계도해야 할 부류로 취급했다. 그랬기에 여린 여중생들의 피멍 자국을 남긴 담임 선생님은 몽둥이가 여러 차례 부러지는 체벌을 하고도 떳떳했다. 단지 이렇게 덧붙였을 뿐이다. “너희들이 부모에게 일러도 소용없는 것 알지? 어차피 난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다.” 학생 체벌이 너무도 당연시되어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절망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들이 학생인권조례를 발표했다. 압도적인 교권으로 학생들을 무섭게 짓누르던 체벌의 시간이 끝나고 자율의 순간이 찾아왔다. 학생들은 이 조례 이후 자유롭게 본인의 의사를 밝히며 더 강하게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 강한 훈육과 처벌로 아이들을 대하던 선생님들은 도무지 통제되지 않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혼란에 휩싸였다. 이미 폭력적인 분위기의 학창 시절을 겪은 어른들마저 ‘이래서야 학생들이 대학을 잘 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걱정스럽게 이런 상황을 바라봤다.
얼마 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시사IN>(2024.5.28)의 이은기 기자가 취재한 기사에 따르면, 2023년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서이초' 교사의 사건 이후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찬반 여론에 휩싸였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모든 학생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2년 제정되었다. 이 내용에는 ‘성별, 종교, 장애 등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과중한 학습 부담에서 벗어나 적절한 휴식을 누릴 권리’,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 침해되거나 감시받지 않을 권리’를 담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보수 여론은 이 조례 때문에 미성년자 학생의 권리가 지나치게 두드러져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조례에 있는 “휴식권 보장이나, 두발과 복장에 개성의 자유 부여, 소지품 검사를 못 하게 하는 조항”은 권리만 부각되어 지켜야 할 의무가 없어 학생들이 “교사의 생활지도에 거부하거나 반항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조례 폐지를 반대하는 교사 모임은 교육부와 정부가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를 엉뚱한 데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이상 이렇게 학생인권조례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고 함께하려는 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모든 선생님이 조례 폐지를 찬성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오히려 교사들을 보호해 주지 않는 불안한 학교 안전망을 탓하며 좀 더 교권을 굳건히 세울 수 있는 방향을 연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둘러싼 논란을 보며 학생 인권과 교권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소를 잘 타려면 몇 가지 규칙이 필요하다. 몸이 무거운 사람이 있을 때는 앞쪽에 앉아야 하고 가벼운 사람이 탈 경우에는 뒤쪽에 앉아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원활한 시소게임을 진행할 수 없다.
나의 학창 시절의 시소는 교권에 더 무게가 실렸다. 학생들의 인권을 주장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권력이 상대편에 자리 잡고 있어 학교 안에 있던 아이들은 매일 공포에 떨며 하늘 위로 솟구쳐 있어야 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신기하게도 시소의 무게는 학생들에게 더 무겁게 실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뒤바뀐 시소 방향 탓에 아이들은 인권의 무게추를 강하게 누르며 자유롭게 개성을 발산했다. 정반대의 위치인 하늘에서 끙끙거리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나 몰라라 한 채 말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시소는 온전히 작동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교육 현장에서의 교권을 확립하기 위해 한 조직의 인권을 눌러야만 해결될 수 있는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학교라는 시소를 잘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거운 것은 앞으로 보내고 가벼운 일은 뒤로 보내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교사와 학생들의 파워게임으로만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학교에서의 선생님의 역할을 믿지 못하고, 학생들의 가능성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섣부른 불신 때문에 이 모든 비극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이제는 무게추를 쥐고 있는 양쪽 모두가 한 걸음씩 물러나 균형 있는 해답을 찾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