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4>, 사람들의 관심에는 다 이유가 있다.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니?”
영화 <범죄도시 4> 대사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 ‘마석도’(마동석 분)는 마약 창고로 쓰였던 옥탑방의 떼버린 철창 앞에서 마약 배달원이 “왜 철창이 떨어져 있지?” 하고 의아해할 때 이렇게 툭 내뱉는다. 이 문장의 어감은 청자와 화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접하며 듣는 사람은 당황스럽지만, 미리 ‘이유 있는 상황’을 만들고 말하는 사람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라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이 한 줄의 대사는 고작 극초반에 한 번, 그리고 영화 중간에 한 번 등장했다. 하지만 <범죄도시 4>를 본 몇몇 관객들은 이 말을 계속 곱씹으며 생각할 것이다. ‘무식하게 범인들을 때려잡는 <범죄도시> 영화 시리즈가 이토록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가 뭘까?’라고 말이다. 올해 역시 마동석 주연의 영화 <범죄도시 4>가 관객들 곁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최강 빌런을 물리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괴물 형사 ‘마석도’의 영웅담이 주요 내용이다. 신종 마약 사건 3년 뒤, ‘마석도’(마동석)와 서울 광수대는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맡는다. 그들은 수배했던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한 후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이 그 죽음의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한편 필리핀에서 온라인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빌런 ‘백창기’(김무열)는 한국에 있는 IT업계 CEO ‘장동철’(이동휘)과 손잡아 대한민국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다. 특수부대 용병 출신인 그는 다른 도박사이트의 사람들을 납치, 감금, 폭행, 살인 등의 방식으로 독점적인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유지한다. ‘마석도’는 이들을 잡기 위해 ‘장이수’(박지환)에게 협력을 제안하고, 광역수사대와 사이버수사대는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작전을 세우는데…
이번 <범죄도시 4> 역시 기존 시리즈의 ‘잘 팔리는 영화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영화 초반에 최강빌런인 백창기가 등장해 무자비하게 극 중 피해자들을 고통스러운 상황에 밀어 넣으며 눈도장을 강하게 찍는다. 날카로운 칼을 쓰는 그의 잔인한 손속은 관객들의 공포심을 소름 끼치게 자극한다. 백창기는 마석도와 영화 중간중간 부딪치지만,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의 악행이 최고조에 이른 후 필리핀으로 도망가는 상황에서 둘은 드디어 맞붙는다. ‘퍽퍽’하는 커다란 주먹질 소리가 오가는 액션 장면 끝에 결국 악인 백창기는 마석도의 손에 잡힌다. ‘악이 패배하고 선이 승리한다’라는 해피엔딩의 결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배우들의 개그 요소와 마석도가 쏟아내는 시원한 액션은 관객들이 현실 속 답답한 상황들을 잊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범죄도시 4>를 그저 ‘심심풀이 땅콩’처럼 즐기기에는 극 곳곳에 펼쳐지는 폭력성이 심각하다. 특히 백창기가 저지른 몇몇 장면들은 15세 관람가인 이 영화를 ‘19세 관람 불가’로 다시 고쳐야 할 정도로 끔찍했다. 그는 영화 내내 사이코패스처럼 무표정한 표정으로 쉴 새 없이 날카로운 칼을 휘두른다. 약자든 강자든 백창기의 표적이 된 사람들은 고깃덩어리처럼 시뻘겋게 잘려 나갔고, 고통스러운 신음과 비명을 질렀다. 허명행 감독이 마석도의 영웅적인 행동을 더욱 돋보이려고 이 악당의 폭력성을 이렇게 부각했다면 성공이다. 이번 빌런의 잔인성은 독보적이다.
영화의 이런 잔인한 표현과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범죄도시 4’와 같은 영화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몇몇 평론가들과 네티즌들은 마석도의 시원하고 호쾌한 액션과 권선징악의 통쾌한 결말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그런 보편적인 이유 외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다양한 장점들이 있다. 그중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시리즈 영화들의 배경이 대부분 현실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번에 개봉한 <범죄도시 4>는 필리핀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 일화와 태국 파타야 한 고급 리조트에서 임동진 씨가 피살된 일을 각색해 만들어졌다. 첫 번째는 필리핀·마닐라 등 해외 호텔의 카지노 온라인 영상을 실시간 송출하며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불법 운영했던 사건(출처 : 데일리 한국(https://daily.hankooki.com)이다. 두 번째는 태국에서 두 달간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개발자로 일하던 20대 프로그래머 임동진 씨가 감금되어 상습 폭행을 당하다 끝내 숨진 사건이다. (출처: 뉴스 1, https://www.news1.kr/articles/5400600)
나날이 지능화되어 가는 사이버 범죄와 일하기를 원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취업 사기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현실 세계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영화 초반에 백창기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초라한 모습의 청년 역시 취업 사기를 당한 인물이다. 그는 영화 초반 백창기의 잔인성과 온라인 불법 사이트의 존재를 알리는 엑스트라였다. 하지만 극 중에서 이 인물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진하다. 마석도와 그의 어머니가 나눈 대화내용에서 유추해 본다면, 청년은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공부하며 한국의 한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 그는 졸업했지만,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 필리핀에 있는 무역회사까지 발품을 넓혔다. 청년뿐만 아니라 극 중에서의 다른 젊은이들의 모습도 눈여겨봐야 한다. 영화 속 카메라는 꾀죄죄한 속옷 차림의 청년들이 악당들에게 구박당하며 일하는 장면을 종종 비춘다. 그들은 항상 겁에 질린 얼굴로 필리핀의 더럽고 더운 창고에 감금되어 하루 종일 온라인 불법 사이트를 조작하고 있다. 어쩌면 멍들고 야윈 청춘들의 모습 뒤에 자본주의의 뒷 그림자가 만들어 낸 취업 사기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반면 자본주의의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또 다른 악인 IT 천재 장동철의 모습은 빛나고 화려하다. 그는 비싼 외제 차와 커다란 집을 소유하고 특수부대 용병 출신 백창기에게 자연스레 하대할 만큼 자신만만하다. 장동철은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젊은 청년들처럼 똑같이 컴퓨터를 다루지만, 삶의 색깔은 전혀 딴판이다. 그는 타고난 천재성 탓에 힘겨운 고난과 가난을 겪지 않았고,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만들고 비트코인을 론칭하며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돈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장동철이 사는 집에는 노란 현금다발들이 가득하고 그가 운영하는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는 매일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물론 장동철은 백창기와 같은 잔인한 살인과 폭행을 직접적으로 저지르는 악당은 아니다. 하지만, 취업을 원하는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갈취해서 돈을 버는 또 하나의 약탈자이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다.
<범죄도시 4>를 보고 나면 페퍼민트 잎과 같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마석도의 호쾌하고 시원한 액션에 박수를 보내다가도, 영화 속 범죄와 연관된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영화 속 현실은 마석도처럼 힘이 없고, 장동철처럼 천재성을 지니지 못하면 평범한 약자들이 떵떵거리며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이런 일은 비단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는 영화 못지않은 서글픈 상황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 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현실의 불공정한 사회 요소를 망각과 웃음의 힘으로 잊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도 오를 수 없는 현실의 벽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다 어떤 이들은 사회안전망의 약해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검은손의 유혹을 접하기도 한다. 그렇게 취업의 꿈을 찾아 해외로 떠난 곳이 온라인 도박장이라면, 그 상황을 죽어서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이런 범죄는 하얀 김이 서린 창 너머의 흐릿한 풍경처럼 종종 느껴진다. 하지만, 창문을 열고 보면 범죄자들의 거미손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즐길 것이다. 눈을 현혹하는 범죄들은 언제나 가까이 있지만, 공권력은 모든 약자를 신경 쓰기 힘들다. 세상 속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라는 절박함 때문에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다. 현실 속에서는 비빌 곳이 없지만, 영화에서만큼은 멋진 판타지를 이뤄주는 마석도 형사가 있다. 세상 속 약한 자들의 소망과 연대가 항상 정의가 승리하는 현실 속 판타지를 꿈꾸고 있다. <범죄도시 4>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