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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pr 16. 2024

그날을 다시금 기억하며

 황사 섞인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화요일 아침이다. 일기예보에서는 황사에 이어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을 기록할 수 있으니 건강관리에 유의하라고 전한다. 그 말에 유심히 창문을 쳐다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창문 너머의 풍경이다. 생각했던 황사라는 글자에서 연상되는 누런 빛이 아니라 흐릿한 안개로 감싸인 하얀빛이다. 순간 당황스럽다. 때때로 마음속에 품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른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하지만 상관없다.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이런 날씨쯤은 멍하니 바라보아도 괜찮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맑은 하늘을 불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니까 말이다. 바뀔 수 있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을 보내고 친한 사람들과 만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비가 왔는지, 해가 쨍쨍했는지, 오늘처럼 흐릿한 안개비가 내리는 날이었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일상의 평온함에 취해 있을 때였다. 갑자기 인터넷 뉴스에 짧은 속보가 떴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나를 둘러싼 평범한 시간이 깨졌다.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고 두 눈은 뉴스에 고정되었다. 카페 사람들 사이에서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곧바로 날아온 ‘무사 구출’이라는 속보에 모두 멋쩍은 듯 웃으며 일상의 평온한 시간으로 다시 돌아갔다. ‘노란색 리본’만 봐도, ‘4월 16일’만 봐도, ‘수학여행’이라는 글자라 봐도 슬프고 불안에 젖을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 배를 탄 사람들의 사연을 읽고 보면서 많이 울고 울었던 세월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할 만큼 긴 시간이라는데, 왜 그때의 감정들은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오늘 또다시 “그날 왜 ‘가만히 있으라’ 했는지 엄마는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한겨레 신문, 2024.04.16.)라는 제목의 단원고 2학년 어머니의 사연을 읽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엄마의 아이는 ‘이모가 사준 기타 둘러메고 수학여행 가서 친구들 앞에서 연주할 생각에 부풀어 있’었던 고2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수학여행 당일 아빠가 챙겨준 10만 원을 들고서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제주도 기념품을 살 생각에 들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이 사연의 가족의 평범한 일상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일로 떠나간 아이들은 고2, 영원한 청춘이다. 하지만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우리 아이들이 고2에 접어들 때마다 매번 불안한지 모르겠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고2의 나이가 그날 이후 나에게는 마음속 상처를 톡톡 건드리는 안타까운 대명사가 되었다. 게다가 작년부터 꽁꽁 묶였던 ‘수학여행 금지령’도 풀리기 시작하니 더 걱정스럽다. 올해 고2인 둘째도 역시 올해 가을이면 수학여행을 간다. 그날 참사 이후 고등학교마다 ‘배를 타고 가는 제주도행’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가는 부산행’이 유행이라고 한다. 망망대해의 바닷길이 아니라 남쪽 지방으로의 육지길이니 다행이라고 할까.


 그날 이후 10년이 되는 동안 비극을 둘러싼 온갖 희로애락을 다 겪은 듯싶다. 그동안 온전히 슬픔에만 빠질 수도 없었고, 이승을 떠난 희생자들의 평온을 마냥 축복할 수도 없었다. 항상 그렇듯이 불시에 벌어진 비극을 둘러싼 사람들의 다툼들은 지저분했고, ‘책임자’들만 운운한 채 급하게 마무리되었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매번 벌어지는 일들이다. 항상 비극이 일어나면 책임자 ‘색출’이 첫 번째로, ‘사고 예방’을 연신 말하다가 더는 그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싫어한다. 입을 다물고 다시는 그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싫어하는 ‘입꾹막’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희생자들과 둘러싼 가족들, 그들과 그들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본인들의 평범하고 소중한 시간과 감정을 온전히 그 비극에만 할애하기를 꺼린다.


 “이제는 그 일은 안 듣고 싶어.”, 혹은 “그만 이야기할 때도 되지 않았어?”라는 반응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 지금까지 많은 커다란 비극들이 우리나라에 일어났지만, 여전히 그 일들은 제대로 수습되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X 주기’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뿐이다. 흔히들 ‘기억은 힘이 세다’라고들 한다.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다면 현재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는 일들이 미래에는 해결될 수 있을까? 후손들에게, 아이들에게 짐을 물려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 그날처럼 안개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세월호 참사 10주기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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