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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23. 2024

한 달간의 의대 광풍,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이까?

"당신들은 어떤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습니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만 전념한 의사인가요, 아니면 실력은 한참 모자라지만 추천에 의해 공공병원 의사가 된 의사인가요."


 몇 년 전 문재인 정부가 의대 정원을 1년에 400명씩 늘린다고 발표했을 때, 한 의사단체가 발표한 홍보물이다. 그 당시 의료인들은 지금처럼 거세게 반발했고,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지 않고 거리로 나서는 통에 건강염려증에 걸려있던 대한민국 국민을 불안에 밀어 넣었다. 특히나 그때는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시기였기에 무엇보다 의료인들의 역할과 도움이 절실했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의사들의 파업은 그 어떤 공포보다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처음 이 글을 봤을 때 ‘의사 직군’들이 가진 오만한 엘리트주의에 불편해하고 분노했지만, 그저 정부가 얼른 ‘의사님들’의 분노를 풀어 주기만을 바랐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실력은 한참 모자라고 추천에 의해 공공병원 의사가 된’ 사람들에게는 진료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내심 숨어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예전의 일상과 같은 평화를 되찾았다. 정부가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의대 2,000명 증원’ 공약을 내밀면서 또다시 의사들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대부분 국민이 그들을 일제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총파업’ 카드를 내세우는 의사들의 오만함에 질렸던 탓이다. 게다가 뚜렷한 이유 없이 매번 ‘국민의 목숨줄’을 볼모로 이리저리 휘두르는 인텔리층들의 모습이 ‘가진 자들’의 이기심으로만 비쳤다. 정부 역시 그런 여론을 ‘공격 동력’ 삼아 더 힘차게 의대 증원 공약을 밀어붙였고, 드디어 지방의대 중심으로 2,000명 증원이라는 목표를 이루어 냈다.


 어쩌면 이는 이미 정해진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국민 건강권 보장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위해 ‘정부 공격수’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기소’와 ‘구속’이라는 카드를 무한정으로 휘둘려 대며 공격할 수 있었지만, ‘의사 방어군’은 가장 중요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본업’을 외면했기에 ‘모 아니면 도’라는 배수진을 치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책임져야 할 환자들이 많은 의사 집단에는 불리한 싸움이었다. 특히나 그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민의 공감을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었다. 의사들을 옹호하는 지원군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드디어 이루어 낸 거점 지방대학과 수도권 대학에서의 의대 2,000명 증원은 그동안 의사들을 향해 지녔던 막대한 연봉에 대한 시기심과 ‘의사들이라면 당연히 이래야 해’라는 국민의 높은 기대감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대한민국 교육계는 정부가 풀어놓은 ‘의대 증원’이라는 달콤한 물줄기로 마구 들썩이고 있다. 전국의 ‘전교 1등’만 갈 수 있는 의대의 좁은 문이 이제 그 밑의 상위권 학생들에게도 활짝 열렸다. 구직이 어렵고 사회가 불안한 시기에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직종이 바로 전문직이다. 특히나 의사는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정년이 길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꿈의 직종이다. 인제야 열린 판도라의 상자로 많은 학생이, 직장인들이, 학원가들이 입시 광풍에 휩싸이고 있다. 의사들은 그토록 강경하게 지키고 싶었던 그들만의 안락한 리그에서 이제는 수많은 경쟁자와 경쟁할 위기에 처했다.


 한 달 남짓 지속되고 있는 지루한 싸움이었다. 결국 대한민국에서의 양대 인텔리 계층, ‘검사 정부’와 ‘의사 집단’의 2차전 싸움은 정부의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그다음부터가 문제이다. 과연 정부는 패잔병처럼 보이는 의사 집단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비록 의사들이 고귀한 히포크라테스의 맹세를 저버리고 차가운 길거리에 나가 있을지라도, 그들이 우리나라 사회에서 무척 중요한 직군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동안 의사들이 다른 직군보다 높은 연봉을 받아도, 종종 총파업으로 국민의 마음에 대못을 박아도 무조건 용서하고 받아들였던 것이 아닌가.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대한민국의 화타 중 한 명이다.


 여러 언론에서는 실망한 전공의들이 해외로 나간다는 둥, 혹은 다른 직종을 알아본다는 이야기를 기사로 내보내고 있다. 이미 국민에게 미운털이 박힐 대로 박힌 의사들이다. 그들은 처음 총파업을 나섰을 때부터 ‘본인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주의자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나 역시도 그들의 총파업을 비난했고, 분노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파업 이후 한 달이 된 지금, 정부의 일방적 공세에 휘청이는 그들을 보며 이제는 분노보다는 다른 감정이 솟아오른다. 만일 의사가 아닌 다른 직종이 본인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면 어떻게 바라봤을까? 누구보다 그들이 ‘똑똑’ 해 보였기에 말투 하나, 행동 하나에 ‘오만’하다는 프레임을 뒤집어씌웠고, 애타는 주장들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정부의 입김대로 이루어진 현재, 그들의 피맺힌 외침처럼, 현재 갑자기 의대 정원을 늘리면 학교에서는 좋은 교육 여건이 잘 마련될 수 있을까? 한 달간의 뜨거운 광풍이 서서히 물러나고 지금부터는 마음 깊이 스산함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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