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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16. 2024

우울하고 존재감 없는 비스킷들에게 희망을

세상에는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존재감이 사라지며 모두에게 소외된 사람. 나는 그들을 ‘비스킷’이라고 부른다.”


 김선미의 소설 <비스킷>의 첫 부분이다. 작가는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인 ‘비스킷’을 3단계로 구분한다. ‘보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딱히 존재감이 있는 것도 아닌 1단계’, ‘조각난 상태, 존재감이 불안정하고 자신을 지키는 힘이 약해서 열 명 중 다섯 명이 바로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2단계’, 마지막 3단계는 부스러기 상태, 투명 인간과 비슷할 정도로 잘 보이지 않아 세상에서 사라지기 직전인 상황이다. ‘비스킷’을 보는 소년의 특별한 성장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100% 청소년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아 판타지 청소년 문학상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과연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이 작품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경쟁이 치열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존재감’의 의미를 애타게 찾고 있는 어린 청춘들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깝다.


 하루에도 쉴 새 없이 뉴스거리가 넘쳐나는 2024년 대한민국의 봄이다. ‘2,000명 의대 증원’을 시작된 정부와 의사들 사이의 갈등은 감정의 절벽 끝자락까지 치달아서 3월 현재는 정부에서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의 취업 문마저 막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반면에 교대에서는 '임용고시 경쟁률 심화로 4학년 교육과정이 무너지고 교직관 고민보다 임용고시에 집중하게 된다'라는 점을 이유로 교대 입학 인원 감축 카드를 들고 나섰다.


  요즘 정치판 역시 빨간색과 파란색 싸움으로 현란하다. 4월 총선을 눈앞에 둔 여당과 야당은 저마다 배수진을 치며 여론을 시끄럽게 메우고 있다. 그뿐인가, 걸어가기만 해도 이슈가 된다는 화려한 유명인들의 소소한 일상은 시시각각으로 SNS를 채우고 있다. 이처럼 매일 언론에서 떠들어 대고 있는 거대한 고래들의 싸움과 정치, 일상들을 보고 있자니 불안하다 못해 허탈하다.


 한 칼럼니스트가 쓴 '요즘엔 아파도 치료할 의사가 없고 건강을 위해 사과를 먹고 싶어도 비싸서 사기 어렵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구구절절 현 상황을 비판한 글을 읽으며 '어쩌면 이렇게 내 생각과 똑같을까?'라며 감탄했다. 그의 말처럼 현재 우리나라는 아파도 병원에 가기 두렵고, 한 알에 5천 원이 넘는 사과도 사 먹기 어려운 곳이다. 한 마디로 기이한 이상기류가 흐르는 나라이다.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날마다 문제들 위에 또 다른 문제가 쌓일 뿐이다.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드러나지만, 대다수 국민의 애처로운 호소는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드는 거대한 고래들의 기싸움 속에 소리 없이 묻히고 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한 채 답답함과 울화로 마음이 부스러기 일보 직전이다.


 물론, 지금에야 도래한 이런 문제들이 꼭 '물욕'에 어두운 사람들의 이기심, 총선 전 국민을 환심을 사기 위한 선심 싸움 때문이라고만 보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 있듯이 보이지 않는 곳에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원인이 숨어 있다.


 '신경 끄기 기술'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맨슨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서 느낀 내용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찍었다. 그는 ‘최고를 탄생시키기 위한 압력과 경쟁’이 대한민국의 문화가 전 세계에 퍼지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경쟁에서 버티지 못한 사람들을 심리적 우울감의 바다에 퐁당 빠뜨리 부작용을 만들었다고 표현한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제 강점기와 북한과의 이념 전쟁을 거쳤던 대한민국의 특수한 역사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전한다. 작가 맨슨은 과거 한국 사람들이 ‘야망’이나 ‘선택’이 아니라 오로지 ‘생존’하기 20세기 경제 기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어린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부담과 기대를 부담시키는 ‘절대적으로 잔인’하고 경쟁 위주의 교육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울증을 설명하기 위해 5가지 원인을 들고 있다. 그중에서 ‘신체적 건강’,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와 같은 3가지 이유는 대부분 국가가 지닌 우울증의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우울한 나라’로 만들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 2가지에는 가족 중심의 ‘유교주의’와, ‘돈’에 집착하는 ‘자본주의’라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작가 맨손은 "한국인들은 깊은 우울증과 외로움을 앓고 있”는 이유가 바로 “한국이 유교 문화의 나쁜 점과 자본주의의 단점을 극대화한 결과"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한 우리 사회에 팽배한 우울증과 소외감이 "자본주의 최악의 면인 현란한 물질주의와 돈벌이에 대한 노력은 채택하면서 자기표현 능력과 개인주의는 무시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우열 경쟁에서 누락되고 특권을 가지지 못한 대다수 국민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우울하고 존재감 없는 비스킷'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특히 1등 만을 바라보는 비틀린 경쟁체제와 완벽주의, 개인의 견해보다는 가족과 집단, 더 나아가 권위를 우선시하는 기이한 유교주의는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지나친 경쟁은 누구보다 앞서고 싶은 엘리트주의를 형성했고 소수만이 돈과 명예를 쥐며 질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의사 집단이 '2,000명 증원'을 반대하는 것도 교대에서 증원 감축을 주장하는 이유도 한정된 파이 싸움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다. 정부 역시 '지역 의료 활성화'와 '환자들의 생명 구하기'라는 사명을 담은 고귀한 목적이 의사들의 반발로 무산되자 이제는  '네가 감히 내 말을 안 들어?'라는 괘씸죄를 묻는 싸움으로 가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어둡고 칙칙한 진흙탕 같은 사회 굴레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소설 <비스킷>에서 주인공이 '비스킷'이 되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한 방식은 '관심'을 주고 사회 편견에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였다. 미국 작가 맨슨 역시 유튜브 끝자리에서 "한국인은 위험한 지평선에서 벗어나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는 숱한 고난과 역경에서 벗어난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고 특별한 회복력이 있기에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 희망의 태양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순간에 가장 찬란하게 떠오를 수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완벽주의, 소수만이 행복한 일등체제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다. 한 개의 도미노가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키듯, 눈앞의 상황에 좌절하고 피하기보다는 조금씩 바꾸려는 노력을 이제부터는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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