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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꼽슬 Curlywavy Jang Nov 18. 2019

[바벨페스티벌 #2] 루마니아에서 만난 사람들

블라드(Vlad), 아디나(Adina) 그리고 스테판(Stefan)

 1) 길바닥에서 만난 친구, 블라드 잠삐르(Vlad Zamfir)

           부쿠레슈티에서의 두 번째 인터뷰는 조금의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순간에 시작되었다. 루마니아 수도인 부쿠레슈티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고 하는 인민궁전이 있다. 김일성과도 절친이었다고 하는 이 루마니아의 독재자는 결국 국민들 손에 이끌려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총살로 비극적으로 사라진 인물이다. 이 곳에서 텐트를 치고 사람들과 얘기나누는 게 가능할지 상욱(영상감독)이와 태윤이(조연출)과 함께 답사를 갔다. 상욱이는 목감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선글라스까지 끼니 상당히 수상한 느낌도 많이 들었지만 우리는 각자의 패션 스타일을 존중하며 인민궁전을 돌아다녔다. 뭔가 압도하는 외형의 건물, 웃음기 없이 행인들을 주시하는 직원들을 보며 여기서 괜히 나댔다가는 공연이고 뭐고 한국에서 온 반동인물로 오해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셋은 오늘도 다시 우니리 공원으로 가야하나, 아니면 보드카 사들고 다른 공원을 뚫어봐야 하나 고민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코너를 돌아 우리 어딘지 모르는 어딘가로 향하고 있던 때에 한 중년 남성이 뙤약볕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상욱이를 보며 대뜸 말을 건냈다. “May I ask you something….?” 이건 뭔가 싶어서 얘기를 들어보니 이 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게 부쿠레슈티 공기가 나빠서 그런건지, 아니면 어떤 종교적인 이유가 있는건지 궁금하다는 거였다. ‘이 아저씨도 어지간히 심심이인가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누구인지, 여기 왜 왔는지 소개하게 됐고 자신도 씹을거리 텐트에 와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부쿠레슈티의 두 번째 만남이 시작되었다. 

블라드(우)와 대화 중인 영상감독 상욱이(좌), 조연출 태윤이(가운데)

          그런데 그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 저녁에 비가 세차게 내렸다. 오늘은 아쉽지만 텐트를 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루마니아 식당으로 안내하며 그 곳에서 얘기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우리는 “콜!”을 외쳤고 그가 안내한 식당에서 루마니아 전통 음식인 미치와 루마니아 와인과 함께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그의 이름은 블라드 잠삐르(Vlad Zamfir), 루마니아에서 다른 직원 한 명과 함께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나서 우리의 씹을거리를 가져오세요 리플렛 디자인을 보며 “구.리.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는 참 솔직한 사람이었다. 대화를 나누며 그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들을 했다. 남북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식민지 역사, 위안부 역사를 대하는 일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기본적으로 그는 아시아 문화, 특히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가지에 대해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해줬다. 그러면서 우리도 Vlad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졌고, 그의 씹을거리는 어떤건지 물어봤다. 여러 차례 “너의 씹을거리는 어떤거야?”라는 질문을 해봤지만 루마니아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자신의 씹을거리에 대해서는 꺼내놓지 않았다. 더 이상 집요하게 물어보는 건 강요이자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 그 이후로는 그가 하고 싶은 루마니아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고, 한국 사회에 대한 그의 질문들에 답해주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루마니아의 현재 정치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가지는 생각, 현 경제 상황에 대해서 가지는 아쉬움 등에 대해서는 많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블라드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지 못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이야기 나누지 못한 것은 대화 끝에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는 우리 공연에 꼭 오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연장에서 그를 보지는 못했다.


 2) 수체아바 에어비앤비 주인장, 아디나

            부쿠레슈티 다음으로 방문했던 도시는 루마니아의 동북쪽에 위치한 수체아바라는 곳이다. 우리는 루마니아로 떠나기 전 주 루마니아 한국대사관을 통해 우리의 공연 소식을 알렸고, 그 공지를 보고 루마니아의 수체아바에 살고 있는 알렉사(Alexa)라는 친구가 이번 씹을거리 in 루마니아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친구는 한국어를 상당히 잘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그리고 예전에 한국에도 와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루마니아로 출발하기 전 여러 차례에 걸쳐서 문자와 페이스타임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영상통화의 한계인지, 한국어를 할 줄은 알지만 언어의 벽을 뛰어넘는 소통을 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씹을거리에 대해서 아직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만큼 가까워지지 못해서 그런지 영상통화를 하는 내내 뭔가 대화가 겉도는 느낌을 다소 받았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알렉사를 만나러 부쿠레슈티에서 수체아바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수체아바는 부쿠레슈티에서 차로는 8시간 정도 떨어진 꽤나 먼 곳이었다. 아직은 잘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어떤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지에 대한 궁금함에 설레는 기분도 많이 들었다. 수체아바에 가서 Alexa를 통해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났고 고마운 점들이 많다. 그곳에서 알렉사와 어린 시절을 함깨해 온 절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바라보는 알렉사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체아바에서 보냈던 3일의 시간 중 마지막 하루는 알렉사네 집에서 묵었는데 그 곳에서 알렉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만나 96도에 육박하는 루마니아 술을 마시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수체아바라는 도시는 작고 소박한 마을이었지만 사람들은 이방인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함께 대화 나눌 수 있는 여유와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96도짜리 루마니아 술

          알렉사네 집에 가기 전 이틀간은 근처에 있는 에어비앤비에서 묵었는데 여기서도 감사한 인연을 만났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방이 2개 딸린 아파트였는데 좋은 건물은 아니었지만 집 안은 아주 깔끔하고 훌륭하게 관리되어 있었고 곳곳에 주인의 애정이 묻어있었다. 현재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영상감독 상욱이가 예전에 자신의 집을 에어비앤비를 통해 운영하다가 만났던 별의별 사람들에 관해 얘기를 하던 중, 이 집의 주인과도 함께 이야기해 보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에어비앤비 메신저를 통해 집 주인 아디나(Adina)에게 연락해서 우리가 루마니아에 온 이유와 씹을거리를 가져오세요라는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가 떠나는 마지막 날 이야기를 잠시 나눌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자신의 영어가 원활하지 못해서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이해해줄 수 있다면 함께 이야기 나누어보고 싶다고 했다. 체크아웃하는 날 우리는 방을 최대한 깨끗이 치워놓고 아디나를 기다렸다. 이윽고 아디나가 도착했고 우리는 그녀의 집 거실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이집은 부모님이 살고 계시던 지금의 집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아들 둘과 살았던 곳이고 곳곳에 추억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이 집이 왜 관리가 남달랐는지 알 수 있었다. 이야기 나누던 중 아디나는 우리가 머물렀던 집을 다음 손님을 위해 청소해야 하는데 1~2시간 정도 기다려줄 수 있다면 자신의 집으로 가서 와인이나 맥주를 한잔을 하며 함께 이야기하는 건 어떠냐고 했다.

          아디나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우리가 묵었던 에어비앤비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디나는 집 안을 구석구석 안내해주며 자신의 부모님의 이곳에서 살았던 흔적들, 자신의 남편이 새롭게 고친 곳, 그리고 자신과 가족들이 일구고 있는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호박, 고추, 딸기 등등의 작물들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그리고 정원 가운데에 만들어 둔 정자에서 아디나가 만들어놓은 루마니아식 요리와 와인을 한잔 들이켰다. 아디나는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데 아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느껴졌다. 큰 아들은 현재 의과 대학에서 공부 중이고 둘째 아들은 지금 중학생이었다. 큰 아들의 학비를 계속해서 지원해주는 중이어서 돈이 많이 들어가고, 에어비앤비를 하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루마니아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자신의 주변 사람들도 자식들 키우는 데 다들 고생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아디나가 내어준 루마니아식 계란 요리

            그러면서 자연스레 에어비앤비를 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기억에 남는 손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예전에 본인의 집에 묵었던 몰도바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루마니아는 예전에 몰도바와 같은 나라여서 자신은 두 나라가 아직도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같은 나라 사람인 몰도바 게스트가 우리처럼 아시아나 미국 같이 전혀 다른 대륙에서 온 사람보다 더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당시의 몰도바 게스트는 에어비앤비를 다른 사람의 집을 잠시 빌려쓴다는 공유 경제의 개념이 아니라, 내 돈 내고 호텔 방에서 서비스를 돈으로 산다는 개념으로 방도 엄청나게 더럽게 쓰고 기물을 파손하고 변상도 안 하고 떠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디나는 이 한 사람으로 몰도바 사람들 전체를 평가하면 안 되겠지만 그 이후로 그런 안 좋은 선입견이 생긴 것도 사실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 이후 두런두런 더 이야기를 나누며 단순히 에어비앤비의 주인장과 손님이 아니라 한 도시에서 인연을 맺게 된 사람으로서 편안하고 감사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외국인을 만났을 때 누군가를 이렇게 따뜻하게 맞이하고 내가 사는 곳의 일부를 열어서 내어줬던 적이 있는가라는 생각도 들면서 아디나의 따뜻한 마음이 특히나 고맙게 느껴졌다.


3) 함께 하고 싶었던 스테판

트르고비슈테 거리 인터뷰에서 만난 학생들

            우리의 공연이 올라가는 바벨페스티벌의 본거지, 트르고비슈테(Targoviste). 그 곳에서의 인터뷰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바벨 페스티벌 축제 측에서 도시 중심에 있는 광장 관리소에 미리 우리 공연과 텐트 설치에 대해 협조를 요청해주었고, 또한 마을 전체가 축제에 호의적이었으며 다같이 즐기는 분위기였다. 우리가 텐트를 치면 많은 사람들이 “이건 뭐 하는 거에요?”라고 먼저 와서 물어보기도 하고, 텐트 안에 들어와서도 동양에서 온 이방인들과 이야기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지나가는 행인들 중 일부는 텐트 안에 들어와서는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먼저 청하기도 하고, 같이 놀다가 주변에 있는 자신의 친구를 부르기도 했다. 그곳에서 우리 팀 멤버들은 셀럽이었다. 트르고비슈테에서는 다른 도시에서 텐트를 칠 때 가졌던 “여기에 텐트를 세워도 되나 안되나…?!”하는 고민없이 편안하게 사람들과 이야기나눌 수 있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친구는 트르고비슈테에서 텐트를 쳤던 첫 날, 광장에서 만났던 스테판이라는 친구이다. 남자 아이들 세 명이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우리 텐트 앞에서 멈춰서는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중학교 1~2학년 정도로 보이던 친구들 중 한 명이 유독 우리에 대해서 궁금해하며 이런 저런 질문을 건넸다. 그 친구는 영어를 상당히 잘했다. 그래서 시간이 괜찮다면 안에 들어가서 스프라이트나 한잔 하면서 얘기하자고 했으나 집에서 부모님이 기다리셔서 지금은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일 낮에 학교 마치고 나서는 시간이 괜찮으니 내일 또 텐트를 치면 다시 이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자전거 삼총사의 대장으로 보이던 스테판은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남기고 친구들과 함께 재빠르게 사라졌다.

            그 다음날 우리는 어제의 광장이 아닌 바와 펍이 많이 밀집해있는 골목으로 자리를 옮겨 텐트를 쳤다. 옮긴 장소에 대해 알려주고자 스테판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자신도 잘 아는 곳이라며 금방 오겠다는 답장이 왔다. 스테판이 곧 도착했고 텐트로 들어와 스프라이트를 한 잔 들이키며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스테판은 오늘 이곳에 오는 것도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셔서 오래있기는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 아마도 ‘학원이나 방과 후 과제가 많아서 부모님이 엄하게 관리하는 집안인가보다…’라는 생각을 하고 가야할 때는 언제든지 말하고 편히 가면 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보니 스테판의 속사정에는 내가 생각지 못한 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스테판은 나중에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영어 경시대회에도 나갔다고 얘기를 들려주며 영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길게 나누다 보니 최근 엄마, 아빠 때문에 고민이 많이 된다고 자신의 속내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예전에 바람을 피워서 그 일 때문에 집안이 엉망이 되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일도 열심히 안 하는 것 같고 술만 마시면 집에 와서 난동을 피워 너무 무섭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스테판이 우리 텐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도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뭔가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해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트르고비슈테 미하이 광장(Piata Mihai)

            그런데 이야기 중간에 스테판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들은 비밀로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알고보니 멀리서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제 광장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오늘 이곳에서 얘기 나눈다고 말씀드렸지만 이 텐트가 뭐하는 곳인지 걱정이 되서 나오신 것 같았다. 우리가 아버지에게 이 텐트는 뭔지, 그리고 전후 상황을 설명드리는 게 좋을지 스테판에게 물어봤지만 스테판은 자기가 하는게 나을 것 같다고 하며 짧게 전화 통화를 한 뒤 이제 괜찮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스테판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여러 차례 왔고, 결국은 스테판은 아무래도 집에 가봐야 할 것 같다며 텐트를 떠났다.

            스테판이 떠나고 나서도 스테판에 대해서 생각이 많이 났다. 그래서 다음 날 저녁 스테판에게 텐트와 더불어 조만간 있을 공연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한 뒤, 한국에서 온 우리 멤버들과 같이 워크샵도 하고 무대 위에서 자기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생각을 물어봤다. 스테판은 자신은 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엄마, 아빠의 허락을 받아야한다며 가족들과 이야기해본 뒤 내일 전화주겠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가 도대체 뭔지 정체를 몰라서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는 거라면 바벨 페스티벌 관계자를 통해서 전화를 한번 드리고 설명을 드려보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건넸는데 스테판은 이런 이야기를 부모님과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부담이자 두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멤버 중에도 스테판과 비슷한 고민을 가졌던 멤버가 있었고, 그리고 한국에서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멤버가 있기에 조심스럽게 스테판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우리 공연의 과정 안에서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스테판은 자신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스테판이 부모님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어려움을 터놓고 이야기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설득하는건 오히려 실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테판에게 어려운 이야기 마음을 열고 나누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와 함께 스테판과 비슷한 고민을 했던 멤버가 우리 팀에도 있으니 나중에 시간이 되거든 꼭 공연을 보러 와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트르고비슈테 미하이 광장(Piata Mihai)

            위에 얘기한 분들 외에도 여러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동시에 나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연을 올리기 전까지 부쿠레슈티->수체아바->트르고비슈테, 루마니아의 세 도시를 탐험했던 이유는 이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그 곳을 경험하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각자의 씹을거리에 대해 이야기나누며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같이 욕할 것이 있다며 함께 욕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게 있다면 조심스럽게 보듬어주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여정을 통해 한국에서 루마니아까지 날아온 우리 멤버들과 함께 무대를 채울 참여자도 섭외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길거리의 인연들이 그렇게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1년 여에 걸쳐 인터뷰하고 섭외를 했던 과정이 루마니아라는 낯선 나라에서는 기적처럼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봤으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공연 전의 여정이 이러한 다큐멘터리 씨어터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단단한 기둥을 만들어주고 방향성을 잡아주는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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