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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꼽슬 Curlywavy Jang Nov 18. 2019

[바벨페스티벌 #3] 공연을 올리며 느낀 것들

소통, 약속 그리고 고마움

1) 소통의 어려움

씹을거리 루마니아 현지 워크샵

            바벨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올리는 과정에서 즐거운 추억도 많았고, 동시에 해결하기 어려운 점도 많이 있었다. 이번 공연을 올리는 데에 있어서는 서울연극협회가 가장 큰 역할을 해주었고, 그 중에 바벨 페스티벌의 주최인 토니불란드라 극장과 서울연극협회 간의 그간의 교류를 통해 쌓아온 돈독한 관계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루마니아와 현지에 도착하기 전 공연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우선은 소통의 문제였다. 두 달 전에 보낸 테크라이더와 파트별 체크리스트에 대한 회신은 출국 일주일 전까지도 받지 못했다. 배우이자 토니불란드라 극장의 부회장 격인 리비유 첼로유라는 친구가 한국 공연과 관련된 무대, 계약, 숙소, 식사 등 다양한 것들을 직접 담당했는데 한국에서 가는 두 공연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관계도 담당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다보니 조명, 음향, 영상 파트에서 사전에 알아야만 세밀하게 준비할 수 있는 현지 보유 장비리스트와 같은 것들에 대한 회신이 출발 직전까지 오지 않아 우리팀 스탭들이 파트별로 공연에 대한 준비를 더 세밀하게 하기는 어려웠다. 결국은 출국 전날 서울연극협회 담당피디와 바벨 페스티벌 리비유(Liviu)와 다자간 통화를 통해 테크라이더에 적힌 것들을 확인하고, 이 사항들은 현지에서 어떻게든 같이 만들어내자는 약속을 한 뒤 출국했다. 

            현장에 도착해서는 기획팀의 베라(Vera)와 코스미나(Cosmina), 기술팀의 알렉스(Alex)와 안드레이(Andrei), 무대제작 팀의 많은 스탭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다. 그리고 현장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서울에서부터 바벨 페스티벌이 시작되는 트르고비슈테로는 서울연극협회 송형종 회장, 나유진 피디, 그리고 극단 가치가의 첫 공연 장소인 바이아 마레에는 지춘성 부회장이 같이 이동하여 준비 과정을 함께 했다. 다양한 위치의 공연장에서 각국의 공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인력이나 장비 면에서 준비되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현지 담당 스탭들이 대부분의 요청을 세심하게 잘 들어주었고, 실무자 선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은 서울연극협회 분들이 바벨 페스티벌 축제 측 예술감독을 통해 대화의 물꼬를 다시금 잘 열어주었다. 공연이 가장 좋은 형태로 루마니아 관객들과 만날 수 있도록 모두가 진심으로 고민하고 노력해준 점은 지금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느꼈던 소통의 문제는 루마니아 현지 극장 내부의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내년에도 한국팀이 바벨 페스티벌에 가게 된다면 공연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은 부회장인 리비유와 공유하되 극장 컨디션, 기술 파트별 체크리스트와 같은 세부적인 사항들은 파트별 담당자와 직접 긴밀하게 소통하는 것이 원활한 준비를 위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2) 약속과 계약의 중요성 - 바이아마레 공연 취소

바이아 마레 축제로부터 받은 공연 취소 통보

           이번 투어에서 루마니아 측을 대표하는 토니불란드라 극장은 직접 주최하는 바벨 페스티벌 외에도 바이아 마레에서 진행되는 아틀리에 페스티벌, 콘스탄챠에서 진행되는 콘스탄챠 페스티벌까지 연계해 투어를 할 수 있도록 소개를 해주었다. 하지만 이번 투어에서 우리 팀은 일정상 아틀리에 페스티벌과 바벨 페스티벌만 소화할 수 있었기에, 루마니아 측에서 제시한 6/6(수) 아틀리에 페스티벌 공연, 6/10(일) 바벨 페스티벌 공연의 일정에 맞춰 출연자, 스탭 일정을 조율하고 그에 맞게 항공권까지 모두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출국 2주전 서울연극협회 담당 피디를 통해 페이스북 메시지로 

            “hey. the manager told me there has appeared a problem in the festival and we can only bring one show from you guys and that show is requiem for antigona(헤이. 매니저가 그러는데 축제측에 문제가 생겨서 한국 팀 중에 한팀만 올 수 있대. 그리고 그 쇼는 레퀴엠 포 안티고네라고 하네” 라며 우리 공연의 취소를 알려왔다. 단체간의 교류에 대한 약속을 이런 방식으로 쉽게 취소하고 가볍게 전달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서울연극협회 측과 우리가 이런 무례한 운영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항의 공문을 발송하자 그제서야 당초에 약속되었던 공연장은 안전상의 문제로 시의 허가가 나지 않아 이렇게 되었다는 자세한 상황 설명이 왔다. 일정을 바꾸는 경우와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봤지만 우리팀 출연자들과 스탭 일정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결국 우리는 바이아 마레 공연을 취소하고 바벨 페스티벌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도 바벨 페스티벌 측에서 1회의 공연을 더 마련하고, 변경된 일정에 맞춰서 숙소와 다른 문제들을 공연에 지장없이 준비해줘서 더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겪다보니 해외 공연의 경우 구두로 진행한 약속 이외에 계약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느꼈다. 처음 해외 공연을 가다보니 절차상 꼭 필요한 지점들에 대한 파악도 부족했고, 단순히 우리 팀과 바이아마레 축제 측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 <해보카 프로젝트-서울연극협회-바벨페스티벌-바이아마레 아틀리에 페스티벌>이런 복잡한 관계 안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다 보니 일일이 절차상의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 제기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계약이라는 것이 단순히 못 믿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잘잘못을 따지는 기준이라는 점을 넘어서 서로가 약속한 바를 성실히 이행하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3) 공연 일정 변화, 극장 컨디션 변화

공연을 올린 담보비타 역사 박물관(Dambovita History Museum)

           공연을 만들다보면 주어진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그 상황에 맞게 반응하며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현장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매순간 바뀌었다. 바이아 마레 공연 취소 이후 6/7(목), 6/10(일) 2회에 걸쳐서 올리기로 했던 공연은 최종적으로는 6/9(토), 6/10(일)의 일정으로 바뀌었는데 루마니아에 가기 전에는 이러한 사항들이 왜 이렇게 변동이 많은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짐작되는 것들이 있었다. 우리가 공연을 올리기로 한 담보비타 역사 박물관(Dambovita History Museum)에 가보니 박물관의 실무 담당자는 우리 공연이 6/7(목)에 추가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축제와 박물관 측의 팀장들끼리 내용을 공유하고 실무자 선까지 이 내용이 공유되지 않았던 것이고, 그 일정에는 박물관에도 예정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불청객 아닌 불청객이 되어버렸고 박물관 직원들과는 별로 유쾌하지 못한 상태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박물관 내에는 도자기, 칼, 성서, 동전과 같은 루마니아 고대 유물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 유물들이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 있는 박물관에서 대여해온 것들이었다. 그 쪽에서 이 유물들을 치우기 전까지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 유물들을 공간에 둔 채로 유물들을 피해서 공연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극장에서 급하게 무대 셋트, 객석 의자 배치를 수정하느라 시간을 써야했고, 또한 관객들과 그다지 편하지않은 거리 안에서 공연을 진행해야만 했다.


4) 힘들었던 만큼이나 따뜻했던 축제와 여정

바벨 페스티벌 개막 당일 함께한 시내 퍼레이드

           위에 이야기한 데로 한국에서 사전 준비를 하는 과정이나 공연을 만드는 과정 모두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축제의 경험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다른 공연 팀들에게도 추천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 축제 특유의 따뜻함과 그 과정에서 만난 고마움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트르고비슈테는 오래 전 루마니아 이전 왈라키아 공국의 수도였던 역사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작지만 멋진 도시이다. 도시 자체가 크지 않고, 인구도 9만명 정도 밖에 되지 않다. 그러다보니 이 축제는 이 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나와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작지만 따뜻한 축제였다. 시민들과 함께 축제를 시작하는 퍼레이드를 하고, 축제 참여 단체들과는 낮에는 다양한 종류의 워크샵, 밤에는 페스티벌 바에서의 사람냄새 나는 만남들. 서울에서도 열두달 내내 여러 축제가 있지만 무슨 축제가 있는지, 그 축제에는 어떤 공연이 있는지도 모르고 스쳐 지나가버릴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축제에서만큼은 도시의 도로를 가로질러가며 모두가 함께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퍼레이드를 하고, 공연을 사랑하는 중고등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진심으로 축제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 걷어붙이고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공연을 만들고 대화 나누는 즐거움”을 깊이 느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루마니아에서 머무르는 동안 미처 생각치 못했던 어려움과 즐거움을 짧은 시간 안에 너무 강하게 경험했다. 그 과정 안에서 함께 갔던 우리 멤버들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던 순간이 많다. 서울에서 공연을 할 때는 낮에 잠깐 만나서 연습을 하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지만, 이 곳에서는 일주일의 시간을 항상 함께하다보니 진짜 식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연의 경험도 소중하지만 이 과정과 시간 안에서 진짜 동료들,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씹을거리 in Romania 커튼콜

            국내 무대에 소개되는 해외 극단들의 공연을 보면서 ‘우리는 매번 해외 작품을 수입만 하고 있는건 아닌가?’,  ‘우리의 작품들은 과연 해외 무대에 어떻게 소개되고,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다. 이번 여정을 통해 우리의 작품을 다른 문화권의 관객에서 소개하는 데에 필요한 노력들과 그 안의 관계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런 결과를 이끌어내기까지 중간의 다리 역할을 해주고 있는 단체들의 역할과, 앞서 이 과정을 지나간 연극계 선배들의 그간의 노력에 대해 알게 되어 느낀 고마움 또한 크다.

            기억을 더듬어 이 점들을 글로 기록하는 것은 진행 과정에서의 공연을 올리기까지 부족했던 점들을 꼬집으려 함이 아니라, 최대한 자세히 기록을 남기고 이 기록들이 다음에 우리 팀과 같은 한국 공연 단체들이 바벨 페스티벌 혹은 루마니아와 문화, 환경이 비슷한 동유럽 어느 국가에서 공연을 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마음에서이다. 공연을 준비하고 올리는 과정에서 느꼈던 아쉬움과 고마운 감정들, 그리고 짧은 경험들이 우리 팀과 이 글을 읽는 창작자들의 향후 다른 곳에서의 공연에서 더 좋은 발자취로 이어지길 바라며 짧은 기록을 마친다.

함께 했던 출연자, 스탭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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